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유기 Aug 13. 2024

어머님이 누구니

팬케이크 하나, 프렌치토스트 하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사이즈 여섯 잔.


평일 오전 10시가 되면 부리나케 메뉴 준비를 시작한다.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브런치 가게에는 그 시간만 되면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있었다. 일명 ‘6인의 열사’다. 아르바이트생 모두 그들을 뭉뚱그려 그렇게 이름 붙였다. ‘열 시가 되면 찾아오는 여섯 명의 여사님’이란 뜻이다. 옆 건물 영어유치원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매일 은밀한 회동을 여는 무리였다. 열사들은 늘 같은 시간에 만나 같은 자리에 앉고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다. 여섯 명이 먹기엔 부족한 양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브런치는 그저 모임을 위한 수단일 뿐. 열사들에겐 보다 큰 뜻이 있었다.


궁극적인 대의는 서로의 기밀을 교류하는 것이다. 중국어 학원은 어디가 좋은지, 의대 가려면 논술은 몇 살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등의 자녀 교육 정보를 풀어놓아야 했다. 정보가 치밀할수록 리더로 칭송받았다. 줄넘기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 개인 연락처나, 영국에서 유학한 리코더 선생님 인스타그램 계정 정도는 가볍게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입까지 가벼워선 안 된다. 열사들은 내뱉는 문장마다 “여기서만 얘기하는 건데”란 말을 말버릇처럼 달았다. 브런치 회동에서 주고받은 정보는 철저히 발설 금지였다.


발설 금지 조항 외에도 꼭 지키는 철칙이 있다. 바로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누구 엄마’란 호칭으로만 불렀다. 설마 이름도 모르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단호한 부름 앞에 의심은 무의미했다. 호칭뿐만 아니라 대화 주제도 엄격히 통제했다.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빼면 사적인 대화는 전혀 없었다. 민수 엄마가 유난히 어두운 표정이어도, 전에 없던 멍이 이마에 푸르스름 내려앉아도 관심 밖이었다. 엄마라는 자아 외에 모든 것이 대화에서 배제되었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엄마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자녀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사이 리필한 아메리카노까지 모두 동난 듯했다. 마지막 한 모금을 삼키고 나면 언제나처럼 시간을 살핀다. 낮 12시 반. 이제 유치원에서 하원하는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열사들은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도원결의를 다진다. 비록 이름도 모르나 서로 의를 맺어 형제가 되었으니.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 못했어도, 한 날 한 시에 자녀의 의대 입학을 꿈꾸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하늘과 땅을 대신해 결의의 증인이 되었다.


열사들이 떠난 자리를 치우는 건 내 몫이었다. 테이블 위의 팬케이크는 차갑게 식어버린 지 오래다. 프렌치토스트도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졌다. 그들의 브런치는 정보 교류를 위한 도구에 그쳤다. 새삼 그들의 열정에 탄복하며 식기를 정리하는 사이 가게 문이 열렸다. 열사들 중 하나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마에 푸른 멍이 든 그 사람이다. 물건이라도 두고 갔나 싶었는데, 털썩 테이블에 앉고는 메뉴를 또 주문한다. 아침에 본 모습과 기시감이 느껴져 눈을 비볐다. 차이점이라면 이번엔 자신을 닮은 어린아이와 함께라는 것이었다. 다른 엄마들은 보이지 않았다.


초코와플 하나, 베이컨 치즈 토스트 하나, 밀크셰이크 점보 사이즈 한 잔. 새로 주문한 음식은 둘이 먹기엔 제법 많았다. 심지어 이미 브런치 회동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고독한 열사의 눈에는 허기가 서려있다. 정보가 넘친다고 해서 배 속까지 든든히 채우진 못했다. 허겁지겁 와플을 집어삼키는 동안 멍든 곳을 더듬거린다. 그리곤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의대 갈 아이를 품에 안았다고 해서 뼛속까지 행복한 건 아니었다 보다.


그녀는 치즈가 늘어진 토스트를 우물거리며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은 영어유치원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아이는 우렁차게 말한다.

“What is your mother’s name?”  

가족의 이름에 대해 묻는 법을 배운 모양이었다. 푸른 멍 열사는 제법 상기된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그래서 뭐라 대답했는지, 엄마의 이름은 무엇인지. 하지만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거대한 밀크셰이크를 빨대로 쪽쪽거리는 데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결국 열사는 원하던 답을 듣지 못했다. 그저 옅은 한숨 사이로 음식만 집어넣으며 공허함을 달랬다. 끝내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엄마’에 가려진 진짜 이름을. 그녀의 배 속 사정도.

이전 22화 환장의 짝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