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한참 ‘짝피구’가 인기 있던 적이 있었다. 이름부터 설레던 짝피구는 두 명이 짝을 지어 진행하는 피구다. 남녀 한 명씩 2인 1조로 짝을 정하고, 두 짝은 서로 떨어지면 안 됐다. 경기 내내 손을 잡고 있어야 하며 놓치면 바로 아웃이었다. 그 규칙이 바로 아이들을 미쳐버리게 만든 설렘 포인트였다. 남녀공학 학교라도 이성교제를 들키면 선생님께 혼이 나던 시절. 체육시간을 핑계로 남학생 여학생이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건 혁명에 가까웠다. 제비 뽑기로 짝을 정하는 과정도 설렘을 증폭시켰다. 누가 내 짝이 될까, 평소 관심 있던 친구가 뽑히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귀에 청진기를 꽂은 것처럼 서로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새로 입사한 인턴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짝피구 제비 뽑기 때 못지않았다. 긴장감의 진원지는 회사가 야심 차게 준비했다는 ‘멘토링 프로그램’. 인턴의 회사 적응을 돕고 업무 역량도 점검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대리급 사원과 한 명씩 짝지어 한 달 동안 합동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과제 점수는 정규직 전환에도 영향을 줄 테니 인턴들 입장에선 능력 있는 멘토와 짝이 되어야 했다. 설렘보단 생존 욕구가 담긴 두근거림이었다. 멘토랍시고 끌려 나온 대리들도 어딘가 들떠 보였다. 빠릿한 친구를 멘티 삼아 자신의 업무를 조금 떠넘길 심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그랬다.
내 게으른 심보를 눈치챘는지 하늘에선 삭은 동아줄을 내려주었다. 아니 조금 유난스러운 동아줄이라 해야 맞겠다. 나와 멘토링 파트너가 된 인턴은 유독 눈에 띄었다. 여성임에도 180cm는 가뿐히 넘을 키, 까무잡잡한 피부, 인사말에서 전해지는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모두가 그 인턴을 흘끔거렸다. 체구가 작은 내 옆에 있으니 더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고목나무와 매미’라 부르며 웃기도 했다. 방금 전의 게으른 심보는 금세 사라지고 저 웃음이 쏙 들어가도록 과제를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의지가 불끈거렸다.
우리는 점심시간마다 만나 합동과제를 준비했다. 하지만 보름이 다 되어가도록 과제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나와 짝이 된 인턴의 지나친 과묵함 때문이었다.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아야 과제를 할 텐데 우리의 대화는 침묵이 익숙했다. “예”, “아니요” 말고는 인턴의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뭔가 의견을 말하려다가도 입술만 달싹거리다 끝내 얘기하지 않았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자료를 주고받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정규직 전환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면서 왜 이리 소극적인 건지. 답답한 마음에 동료 직원들 앞에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내 짝은 내가 멘토링 파트너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라고. 동료들 사이에 인사팀 직원이 껴있었단 사실도 잊은 채 말이다.
다음날 멘토링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회식 자리가 있었다. 내 짝꿍 인턴은 남들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인사팀과 따로 면담을 가진 모양이었다. 혹시 내가 한 푸념 때문인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인턴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너무 밝아지다 못해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인턴은 회식자리를 휘젓고 다녔다. 시키지도 않은 건배사를 하고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아가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상사들에겐 팔뚝에 힘줄이 멋지시다는 둥의 요상한 칭찬을 건넸다. 어찌나 말을 많이 했는지 가뜩이나 허스키한 목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보름 동안 매일 점심을 함께 한 나로서는 본 적 없는 모습에 혼란스러웠다. 보아하니 당황한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술을 권하는 회식이 아니었기에 인턴의 행동은 취기라 볼 수도 없었다. 갑자기 변한 거다.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연극배우처럼 말이다.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집 방향이 비슷했던 인턴과 나는 버스정류장에 단둘이 앉게 되었다. 가까이 있어도 술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턴의 이상행동은 계속되었다. 내게 귀 모양이 예쁘시다는 따위의 칭찬을 건네면서 남은 과제도 잘 부탁드린다며 내 어깨를 주물렀다. 나는 어깨 위의 손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말했다. 원래 모습도 괜찮으니까 억지로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말을 들은 인턴은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동그래진 눈동자에 조금씩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당황스러웠지만 눈물이 멈출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이번엔 내 손이 인턴의 어깨를 다독였다.
우리는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눴다. 인턴은 여기저기서 들리는 조언에 휘둘렸다고 고백했다. 주변 친구들은 말했다. 넌 여자애 치고 덩치가 크니 가만히 있어도 선배들이 무서워할 것이다, 걸걸한 목소리가 거슬릴 수 있으니 함부로 말 걸지 말아라. 그래서 인턴은 과묵한 사람이 되었다. 내게 전하고픈 말이 있어도 삼켰다. 그랬더니 이제 인사팀이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안 그래도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인데 말까지 안 하면 어떡하냐, 하기 싫어도 회사 사람들에게 살갑게 구는 것까지 다 사회생활이라 했다. 그래서 인턴은 살가운 사람이 되었다.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포장했다. 그동안 인턴의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혼자서 발버둥 쳤던 시간들을 알아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난 자격 미달인 파트너였다.
짝피구를 함께하는 두 사람에겐 각각의 역할이 있었다. 한 명은 방패, 한 명은 창. 방패 역할의 짝은 공을 직접 던질 순 없지만 공에 맞아도 아웃이 되지 않는다. 창 역할의 짝은 상대팀에 공을 던져 공격할 수 있지만 공에 맞으면 짝까지 한꺼번에 아웃된다. 그래서 방패는 움직임의 반경이 넓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창이 공에 맞지 않고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인턴과 내가 짝피구 경기장에서 만났다면 우리는 서로 어긋난 역할을 맡은 꼴이었다.
처음엔 적극적으로 과제를 주도하는 건 인턴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평가를 받는 입장이니 말이다. 나는 인턴의 뒤에서 평가에 도움이 되게끔 적절한 조언을 던져주는 것만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의견을 펼치라고 강요하기만 했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헤아리지도 않고 말이다. 조언이랍시고 날아드는 비수를 조금이라도 더 맞아본, 사회의 쓴맛에 그나마 내성이 있는 내가 방패를 맡는 것이 옳았다. 내 짝이 주위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멋진 공격을 날릴 수 있도록 말이다.
한 달 뒤 사내에는 정규직 전환 사원 명단이 공지되었다. 짝의 이름 석 자가 유독 밝게 빛났다. 합동과제에서 최고점을 받은 보람이 있었다. 그녀는 내 덕이라 했지만 오히려 고마운 건 나였다. 함께한 시간들을 통해 배운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방패가 되어주는 법을 알게 되었고, 타인을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서툰 시작이라도 언젠가 그 관심과 애정이 내게도 닿기를 소망하면서. 그렇게 서로를 구원하고 싶다. 진정한 내 짝일지 모르는 낯선 이들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