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사무실 책상 위에 작은 상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은 상자였다. 지난주 결혼한 동료 직원의 답례품인 모양이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축의금만 대충 전달했었는데 뜻밖의 답례를 받았다. 미안한 마음으로 슬쩍 상자를 열어보니 예쁜 떡이 들어있었다. 하트 모양으로 빚은 증편과 알록달록 송편이었다. 이게 웬 떡이야. 턱 구석에서부터 침샘이 팡 터졌다. 좀 전에 먹은 끼니는 진작 잊어버렸다. 얼른 입안 가득 저 찰기를 머금고 싶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떡을 참 좋아했다. 명절만 되면 제사상에 차려진 떡을 다 주워 먹는 통에 친척들은 나만 보면 ‘떡 귀신’이라 불렀다. 조상님이 따로 없다고 한소리 하시면서도 다들 내 앞에 슬쩍 떡 접시를 밀어주었다. 집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떡이 먹고 싶어서 매 학기의 끝자락마다 ‘책거리’를 기다렸다. 책 한 권을 다 배우면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우리만의 잔치를 했는데 그날은 책상마다 떡이 잔뜩 놓였었다. 짝꿍과 누가 누가 입안에 떡을 더 많이 넣나 시합하며 깔깔거리곤 했다.
놀림거리가 되는 순간에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었다. 어느 날은 점심 급식에 백설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달에 생일인 아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매달 한 번씩 나오는 특별 메뉴였다. 미리 받는 생일상에 들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앞니 하나가 빠져버린 것이다. 혹시나 하고 뱉어낸 백설기에는 앞니가 콕 박혀있었다. 한참 이갈이를 하면서 흔들리던 치아가 떡의 찰기에 못 이겨 뽑혀 나온 모양이었다. 친구들은 이 빠진 나를 보며 웃느라 먹던 음식을 뿜어댔다. 그 광경에 나 역시도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떡 하나로 교실 가득 웃음소리가 퍼졌다.
생각해 보면 맛도 맛이지만 떡을 먹는 풍경 자체가 좋았다. 명절이든 잔치든 생일이든 밥상에 떡이 오르는 날은 항상 뜻깊은 자리였다. 소중한 사람들과도 함께였다. 가족, 친구에 둘러싸여 은은한 달콤함을 나누던 기억. 그 기억이 떠올라 떡을 먹을 때마다 특별한 온기가 배속 가득 퍼졌다. 요즘엔 떡을 대신할 간식거리가 널려있다지만, 작은 떡 속엔 늘 즐거움과 행복의 순간이 가득 담겨있었다. 거기에 담긴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아 부지런히 떡을 삼켰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상자에서 꺼낸 분홍색 송편을 입에 넣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달달한 꿀맛이 촥 퍼지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떡을 선물한 동료도 결혼식에서 이렇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을지 궁금해졌다.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결혼식장에서 직접 축하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럼에도 삶의 귀중한 추억을 나눠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다음 결혼식 때는 꼭 와달라’며 농담 섞인 답장을 보내왔다. ‘자신의 귀중한 추억을 나눠주었으니 이제 우리는 귀중한 사이가 되었다’는 말로 한 번 더 나를 미소 짓게 했다. 떡 하나로 기분 좋은 달콤함이 나를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