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기 그지없다. 밥은 한 숟갈도 못 뜨고 한의원 신세다. 고작 재채기 한번 때문이다. 구내식당 점심 메뉴로 나온 설렁탕에 후추를 뿌렸을 뿐이다. 그러다 후춧가루가 코를 간지럽혔는지 참을 수 없는 재채기가 났다. 에취! 그리고 삐끗. 재채기를 하자마자 허리에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당장 병원에 가야겠다 싶어 이를 악물고 식당을 나섰다. 설렁탕 국물은 맛보지도 못하고 말이다.
어쩐지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아침 출근길부터 행운이 따랐다. 평소 서 있기도 힘들던 만원 버스에 내가 타자마자 앉을자리가 났다. 부서 회의에서도 아이디어 칭찬이 이어졌다. 잔소리로 시작해 잔소리로 끝났던 날들과 비교하면 꽤 훈훈한 분위기였다. 결정적인 건 오늘 발표된 근무 평가 결과였다. 입사 이래 처음으로 A등급을 받았다. 회사 욕하면서도 밤낮없이 초과근무한 보람이 있었다. 구내식당 메뉴마저 내가 좋아하는 설렁탕이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웬만해선 생기지 않던 일할 의욕이 샘솟는 날이었다. 이런 꼴이 될 줄도 모르고.
엉금엉금 가까운 한의원으로 향했다. 진단은 급성 요추염좌. 재채기 한 번에 척추뼈를 둘러싼 근육과 인대가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등 위로 잔뜩 침을 꽂은 모습이 영락없는 고슴도치였다.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무거운 짐을 들었다든가 격한 운동이라도 했으면 모를까. 찰나의 숨 때문에 이 지경이 될 수 있느냐며 푸념했다. 한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허리 긴장 상태가 누적되면 작은 충격에도 아플 수 있어요. 되도록 오래 앉아있지 마시고요. 당분간 일보다 가벼운 산책이나 하면서 쉬세요.”
직장인에게 앉아있지 말고 산책하라는 건 일을 하지 말란 소리 아닌가. 오래 앉아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한가로운 산책의 여유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일을 만류하는 그 한 마디가 유독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오래간만에 칭찬받은 아이디어를, 야근으로 일궈낸 근무 평가 등급을 다 무용하게 한 것 같아서다. 내게 일의 즐거움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내 운수를 망치고 말겠다는 듯 날카로운 침으로 쿡쿡 찔러 고통을 주었다.
치료실 침대에 엎드려 생각한다. 일이 주는 만족감과 운수는 닮아있다. 좀처럼 찾아오지 않으면서 겨우 만나면 사소한 계기 하나로도 무너진다. 재채기 한 번에 파열음을 내버린 내 허리처럼 말이다. 내가 만족감을 누릴 만한 사람인지, 운수를 손에 쥘 자격이 있는지 끝없이 확인하려는 듯하다. 잡히지 않으니 더 붙잡고 싶어 진다. 언제쯤 만끽할 수 있을지 아득하다.
고민이 꼬리를 무는 사이 침대맡에서 알람이 울렸다. 치료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다. 상태를 다시 확인하러 온 한의사는 내 등에 잔뜩 꽂힌 침을 빼주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사람 몸은 사소한 이유로 아프기도 하고 사소한 이유로 좋아지기도 해요. 그러니까 치료받으러 꾸준히 오시고요.”
별 뜻 없이 뱉었을 그 말에 머릿속 아득함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시무룩할 땐 언제고 또 기대하게 된다. 지금까지 그랬듯 사소한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면 일의 보람이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작은 간절함을 하나씩 보태면 언젠가 운수를 온전히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여기고 나니 입맛이 돌기 시작했다. 차마 먹지 못한 설렁탕이 아른거렸다. 뽀얀 국물에 밥을 말고 아삭한 섞박지 하나 척 얹어 입속으로 넣고 싶어졌다.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나면 손에 잡히지 않던 것들을 위해 다시 나아갈 기운이 생길 것만 같다. 어쩐지 운수가 좋아질 것만 같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