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끔은 마음의 양식도 채워야 한다니까요! “
밥 한 숟갈 삼키다 말고 동료 손에 이끌려 구내식당을 빠져나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회사 근처 성당에서 열리는 ‘정오 음악회’를 보러 가자는 거였다. 점심시간만이라도 클래식 연주를 감상하며 일상의 여유를 찾자는 취지의 공연이었다. 처음에는 성당 신도들과 인근 주민 정도만 알음알음 찾아갔었는데, 이제는 인근 직장인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그날도 성당 안은 먼저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상의 여유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다. 겨우 자리를 비집고 앉아 음악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에 잠시 시선을 뺏긴 사이 건반 선율이 울렸다. 순식간에 오르간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멜로디다. 바흐다. 클래식 문외한인 내가 바흐의 곡임을 한 번에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머리보다는 몸이 기억하는 곡임에 분명했다. 오르간 소리를 뒤로 한 채 기억 속을 더듬었다. 기억 저 멀리 작은 피아노 학원이 보였다. 바흐의 곡을 온몸으로 배웠던 그곳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피아노 학원에 다녔었다. 딱히 소질은 없었지만 매일 출석도장을 찍었다. 맞벌이였던 부모님께서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 방과 후 시간을 보낼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니 하루는 원장 선생님께서 따로 나를 불러냈다. 학원을 대표해 피아노 콩쿠르를 나가보자는 것이었다. 오래 배운 아이들 위주로 몇 명 모아 지역 콩쿠르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러겠다고 답한 뒤 콩쿠르 지원서를 썼다. 이러나저러나 학원에서 시간을 보낼 테니 아무래도 좋았다. 원장 선생님은 콩쿠르를 위한 곡과 특훈 선생님까지 다 준비해 뒀다며 한껏 신난 표정이었다.
내가 연습할 곡은 바흐의 <인벤션(Invention)>이었다. 성당에서 들었던 그 곡이다. 제목만 들으면 생소하지만 피아노 좀 친다는 어린이들이라면 너도나도 연주해 본 곡이었다. 나도 한 번쯤 쳐봤던 터라 곡을 배우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특훈 선생님이었다. 천장에 닿을 듯 거대한 덩치와 험악한 인상으로 ‘고릴라쌤’이라 불렸던 선생님이 배정된 것이다. 학원에 오래 다닌 만큼 고릴라쌤의 악명은 익히 알고 있었다. 가르치는 아이들마다 눈물을 쏙 빼놓는 탓에 성인반 위주로만 수업했던 선생님이었다. 콩쿠르 시즌에 맞춰 아이들을 엄격히 지도하게 된 모양이었다. 울면서 학원을 뛰쳐나오는 내 모습이 그려졌지만 이미 소용없었다. 콩쿠르 지원서를 쓰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걱정은 곧 현실이 됐다. 특훈이란 이름의 고문이 시작됐다. 고릴라쌤은 연주하다가 음이 틀리면 손등을 때렸다. 30cm 자를 세로로 세워서 말이다. 뼈까지 아릿한 감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수업 끝무렵에는 손등 위로 붉은 자국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역이었던 건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고릴라쌤은 음악에 심취한 듯 몸을 흔들거리라고 지시했다. 그래야만 콩쿠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손등 맞기 무서워서 음을 틀리지 않는 데에만 온 정신이 쏠려있는데 음악에 심취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마음이 동하지 않았으니 몸은 어색하게 움직였다. 오뚝이 마냥 앞으로 휙 뒤로 휙. 고릴라가 조종하는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 이렇게 해야 좋은 연주라고 하니 그저 따를 뿐이었다.
특훈 덕분인지 나는 콩쿠르 당일 아주 인상 깊은 무대를 펼쳤다. 너무 인상 깊어서 문제였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음악에 따라 몸을 휘청이다가 의자 뒤로 발라당 넘어진 것이다. 황급히 다시 앉았지만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연주를 이어갈 수 없었다. 평소에 안 틀리던 부분까지 건반을 잘못짚었다. 객석에 앉아있던 고릴라쌤은 나를 한껏 노려보고 있었다. 이젠 어떻게 해도 고릴라의 포효를 피하지 못했다. 수상은 진작에 물 건너갔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연주를 이어갔다. 틀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건반을 뚱땅거렸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양쪽으로 움직였다. 내 맘대로 피아노를 치고 있자니 꽤나 즐거웠다. 음악에 심취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얻은 즐거움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콩쿠르가 끝나자마자 고릴라쌤의 눈총을 피해 후다닥 집으로 향했다. 쓸데없이 치장한 리본을 가방에 넣다가 악보집과 눈이 마주쳤다. 이것도 이제 안녕이다 싶어 악보집을 슬쩍 펼쳐보았다. <인벤션> 교본 첫 장엔 바흐가 기록했다는 연주방법이 번역되어 있었다. 그중 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단순한 테크닉을 익히는 것은 중요치 않다. 노래하듯이 마음으로 느끼면서 연주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문제집의 답지를 훔쳐본 기분이었다. 손등을 맞지 않아도, 엉덩방아를 찧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결국 마음을 따르는 것이 정답이었다.
오랫동안 피아노 학원을 다녔건만 지금은 악보 보는 법도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이 곡만큼은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다. 물론 음계는 여전히 제멋대로다. 성당 오르간 연주자의 멋진 연주를 있자니 내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치는 사람인지 실감 났다. 한 가지 다행인 건 그날의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음 가는 대로 해버리는 순간의 즐거움을 말이다. 서툴러도, 어색해도, 가장 아름다운 선율은 내 마음이 내는 소리였다. 한 시간 남짓한 음악회에서 일상의 여유를 구걸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그 사실만큼은 잊지 않아 다행이다. 기억 속 멜로디에 절로 고개가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