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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자까 Mar 31. 2021

구린 게 맞나...

                                                                     

 지금까지 투고한 내역을 뽑아 보면 이렇다.


2020.10.13 ㅡ 출판사 4곳

2020.10.23 ㅡ 5곳

2020.11.30 ㅡ 2곳

2020.12.01 ㅡ 3곳

2020.12.02 ㅡ 5곳

2020.12.03 ㅡ 3곳

2020.12.06 ㅡ 2곳


 10월부터 12월까지 총 24개의 출판사에 투고했다. 혹자는 많지 않은 숫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출판사 별로 모든 메일을 새로 쓰느라 시간이 걸렸다.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의 감상평과 작가를 언급하고, 내가 그 출판사에서 왜 책을 내고 싶은지를 분명히 밝혔다. 와중에 브런치북 『지금은 비행기 모드』를 발간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12월 21일 브런치북 대상이 발표나기 전까지 출판사로부터 반려 메일을 받을 때마다 '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로 책 내려고 그러나 보다'라고 믿었다(그렇게라도 믿고 살아야 했어요). 그리고 바로 똑 떨어졌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수상자에겐 미리 연락이 온대서 발표 일주일 전부터 휴대전화를 쥐고 살았다. 수상작 명단을 확인하고는 며칠 간 브런치에 들어가지도 않고, 틈만 나면 열어보곤 했던 메일함도 잊어버렸다.


 나름대로 가열찬 세 달을 보냈지만 계속되는 외면에 일순간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마음이 굳어갔다. 그렇게 싸늘해진 가슴으로 새해를 맞았다. 비행 수당(착륙비며 교통비)은 이미 수개월째 밀렸고, 월급도 한 달씩 밀리는 실정이었다. 우리 비행기에 탔던 승객이 나중에 코로나 확진자로 판정받으면 그날 비행한 사무장과 승무원도 곧바로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했고, 검사 결과가 나오기 하루 이틀 전까진 내가 대타 비행을 뛰었다. 비행을 다녀온 날이면 피로했고, 나는 그걸 또 핑계 삼았다. 출간기획서를 수정하고 원고를 더 손본 다음 계속 투고를 이어가야 하는데 피곤하다며 차일피일 뒤로 미뤘다. 그러면서 두 달이 훌쩍 지나갔다.


 고작 몇 개의 출판사에서 반려당했다고,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좀 떨어졌다고, 출판사에게 거절당한 원고를 나조차도 외면하고 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 원고들에게 좀 미안하다. 주인인 내가 자주 들여다보고 먼지도 털어줘야 하는 것을...


 어느새 3월이 되었고 비행을 마친 나를 데리러 온 뚱목이와 밥이나 먹을 겸 김포공항 롯데몰을 갔다. 몰에 가면 으레 그렇듯 밥 먹고 옷 구경을 하다가 영풍문고로 갔다. 책에 관심 없는 뚱목이는 옆 팬시점에서 잡화 구경에 삼매경이었고, 나는 에세이 코너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러게 이거, 이 에세이 코너에 내 책 한 권 좀 보태고 싶었는데.'


 그곳에선 특히 귀여운 일러스트 표지가 눈에 띄었고, 제목도 문장형으로 기깔나게 잘 뽑았다 싶은 책이 많았다. 그렇게 신작들을 이리저리 들춰보는데 살살 열이 올랐다. 나도 보태고 싶었는데...→보태고 싶었다니까?→내 기어코 보태고 만다! 식으로 가슴 한구석이 뜨끈하게 달구어졌다. 나는 비장한 눈빛으로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이 책, 저 책 빠른 속도로 책을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책의 앞장, 뒷장에서 출판사 메일 주소를 마구 찍었다.

 집에 돌아와 출간기획서를 조금 손 보고 다시 투고를 시작한 게 3월 5일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독자님들을 위해서라도 드디어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드라마틱한 전개가 펼쳐져야 하는데, 내 인생에 드라마는 없었다. 하긴... 내가 쉽게 되면 그게 이상하지. 나는 뭘 해도 여러 번 도전해야 겨우 손에 잡을 수 있었으니까. 친구 따라갔다가, 그냥 해봤는데 한 번에... 이런 소리는 드라마에 나오는 드라마틱한 외모의 배우나 모델이 하는 말이고.


 다시 몇 개의 반려 메일이 도착했고 조용한 나날이 이어졌다. 마음은 소란스러운 반면 별일 없는 일상이었다. 소일거리로 공원 산책을 자주 나갔다. 나무 아래를 거닐며 그간 쓴 글들을 읽어 나갔다. 한창 추울 때는 지났지만 아직 3월이라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 많았고,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쏴-하고 바람에 스치는 소리내 마음도 시원하게 쓸어주는 기분이었다. 하루는 그 나무들 아래에서 전화를 받았다.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책을 출간한 박세열 작가님의 전화였다. 내 원고를 읽고 피드백을 주려던 작가님은 혹여나 내 기분이 상할까 싶어 입을 떼기도 전부터 무척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괜찮다고, 글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작가님이 말하는 것만 들어봐도 내 글을 얼마나 꼼꼼하게 읽어줬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날돼 작가님 글에서... '사람'을 느꼈어요. 비행 에피소드에 담겨있는 웃음이나 감동 포인트가 다 사람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지금 글들도 너무 좋은데, 아직 출판사에서 연락이 없다고 하니까 드리는 말씀이지만... 그 포인트를 더 잘 살려서 수정해보는 건 어떨까요? 사람, 타인을 향한 마음이 더 드러나게요."


 감사한 피드백이었다. 출간기획서에서 나는 기내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강조했지, 그 이야기 속의 '사람'에 초점을 맞추진 못 했던 것이다. 후자가 더 와닿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작가님 덕분에 알게 되었다. 조금 더 고민했더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열심히 했다고는 하지만 나도 게을렀던 거다. 감사하다 거듭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빨리 노트북 앞에 앉아 출간기획서와 샘플 원고를 고치고 싶었다.


 그리고 그전에 해야 할 일도 있었다. 내가 먼저 내 글을 우습게 보지 않아야 하는 마음.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더라도, 독자에게 선택받지 못하더라도, 나만큼은 내가 쓴 글을 아끼는 마음으로 살펴야 했다.


 반려 메일을 받을 때마다 네이버나 브런치에 [원고 투고]를 검색했다. 몇 군데 돌리지도 않았는데 바로 연락이 왔다는 글보다 "또 떨어졌어요, 대체 출판사에서 말하는 그 방향이 뭔데요!"라고 낙담하는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출간 작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들을 보며 외로움을 덜어냈다. 여기에도 있구나. 내가 쓴 글 그래도 읽을만 하지 않냐고, 한번 제대로 좀 봐달라고 외치면서 그 마음조차 다시 글로 쓴 사람들이.


 그래서 나도 이렇게 쓴다. 출간하기까지 내가 겪은 이 자질구레한 시간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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