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스타벅스나 가서 원고 작업을 하려다가 날씨가 어제와 달리 화창해 동네 공원 카페로 향했다. 가끔씩 공원에서 걷기 운동을 하며 오가다가 봤던 곳인데, 공원 잔디 옆으로 펼쳐진 테라스 자리가 한 번쯤 앉아보고 싶게 만드는 곳이었다.
평일 오후 2시라 그런가 카페는 중년의 여성과 할머니로 그득했다. 역시 스벅으로 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햇살이 너무 따뜻해 발목 잡혀버렸다. 노트북과 책을 꺼내고 헤이즐넛 아메리카노(헤이즐넛 향이 너무 좋아유ㅠ)를 테이블에 놓으니 갑자기 모든 게 완벽한 기분이었다! 테라스 자리에서 햇살을 받으며 이따금 커피를 홀짝이다가 원고를 수정하는 모습이라니. 나는 뭔가 그 작가스러운 모습에 심취한, 진짜 작가도 아니면서 빨리 출간 작가는 되고 싶은, 한마디로 겉멋만 잔뜩 오른 상태였다.
글을 쓰기 전 예열 작업이 필요한 편이다. 쓰려고 앉아서는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명목으로 잠시 책을 읽는다던가, 어떤 정보를 글에 추가할지 검색도 좀 하는데 그러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글쓰기 전에 읽는 책은 또 얼마나 재밌는지. 검색하기 위한 인터넷 서핑은 또 어느 사이에 쇼핑으로까지 이어졌는지.
그러니 사진에서 보다시피 저 따사로운 햇살 아래, 푸르른 풍경을 앞에 둔 글쓰기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 음악에 맞춰 발이나 까딱까딱 리듬을 탔고, 책 한 문단을 읽고 고개 들어 펼쳐진 풍경을 만끽했다. 할머니들의 수다 소리가 들려오는 건 덤이었다. 한 할머니는 언뜻 보기에 내 테이블 위로 놓인 책이나 노트, 인쇄물과 노트북을 보고 내가 무언가에 무척이나 열심이라고 생각했는지 "젊은 처자가 많이 바쁜 갑네"라 말했고, 곧이어 다른 할머니가 "팔자 좋아 보이네"란 소리로 받아쳤다. 또 다른 할머니는 자기 딸도 한시를 가만있지 못한다며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구구절절 읊기 시작했다. 할머니들끼리의 대화인 것임은 분명한데, 내게도 들려오는데다 내 얘기까지 들어있기에 나는 대꾸를 해야 할지 못 들은 척해야 할지 잠시 주저했다.
옆 테이블로는 할아버지 두 명도 왔다 갔는데, 혼자 와서 음료를 마시고 갔다. 할아버지들끼리 같이 어울려서 온 테이블은 없었다. 한 할아버지는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계셨고, 다른 할아버지는 허리춤에 트로트가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착용하고 계셨다. 우리는 서로 흘끔거리면서도 눈이라도 마주칠라치면 금세 못 본 척을 했다.
나는 2시부터 6시 반까지 거의 4시간 반을 머물렀기에, 다른 테이블이 비워지고 채워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마와 아빠, 반려견 목줄을 쥔 딸이 쿠키를 사들고 앉아 필라테스는 4:1 수업이 딱 좋다는 얘기를 들었으며, 카페 음악 소리에 맞춰 잔디에서 까불까불 춤을 추는 남자아이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는 여자의 모습도 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원고에 눈을 돌리다가도 불어오는 바람에 다시 고개를 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분명히 알았다고 해야 할까. 지금 이 시기는 가장 설레고 행복한 시기 중 하나일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직 아이가 없어 자유로웠고, 아직 책이 나오지 않아 마음껏 꿈꿀 수 있었고(책이 나온 후엔 우울할 수도^^;), 아직 편집자님이 재촉하지 않아 여유롭게 작업할 수 있음에. 승무원으로 비행만 해온 내가 승무원 직업 에세이로 그간 쌓아온 모든 걸 담아낼 수 있음에.
모든 사람에겐 분명 전성기라고 불리는 시절이 있을 텐데, 자기 인생의 전성기를 모르는 사람과 전성기임을 알고 반갑게 맞이하며 즐기는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그건 아마도 하루를 더 촘촘하게 살아내며 순간을 곱씹고 만끽하는 사람과 정신없이 지나가는 하루를 그저 아쉬워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책 원고는 보지 않고 이런 글이나 쓰면서 내 인생의 좋은 순간을 곱씹고 만끽하고 있단 소리다.
그러다 오늘 읽은 책에서 만난 글귀... 책이 나오고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안 달라집니다. 음, 역시 책이 나오기 전에 한껏 꿈꾸며 이 좋은 순간을 즐겨야겠다... 책이 잘 팔리고, 더 많은 독자를 만나며, 그렇게 좋아하던 도서 팟캐스트에도 나가고! 상상 속에선 이미 저어기까지 나갔으니까, 꿈꾸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황홀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