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무래도 미움받고 있는 것 같아."
맥주잔에 레드 와인을 따르며 무심한 톤으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효만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너는 미움받을 만한 아이가 아니야..."라고 말하며 급기야 눈물까지 흘렸다.
"미움받는다고 느끼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은빈이 네가 그렇게 얘기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흐엉..."
얘가 벌써 취했나 싶었지만 어떻게든 눈물은 멈추게 하려고 나는 오히려 "근데 네가 왜 우냐"라며 깔깔 웃어댔다. "맞아, 난 미움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지."라고도 덧붙이며 괜히 우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알고 있다. 누군가는 날 죽도록 미워할 수도 있음을. 효만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널 좋아할 순 없다는 다독임의 말은 흔해 빠졌기도 하지만 자명한 사실이어서 머리로는 우리도 알고 있다. 그럼, 모두가 날 좋아할 수는 없지. 그럼에도 정작 날 싫어하고 적대시하는 사람과 대면하는 건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다.
힘든 시기를 통과하며 고마운 사람들의 존재를 더 크게 실감했다. 한 친구는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까지 인용하며, 내게 괴로움을 안기는 사람의 이름을 딱 대라고 했다. 이름은 알아서 뭐 할 거냐고 되물으니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오은영 박사가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할 때엔 부모가 나서서 얘기해야 한다고 했어.
그 학생은 가볍게 그럴지 몰라도 누군가는 진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그게 내 아이라면 더더욱 부모가 나서야 한대.
한 번 더 우리 아이를 괴롭히면 나도 너에게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고, 우리 아이랑 친하게 지낼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따끔히 얘기해 주래.
그니까 이름 불러."
친구의 비장한 마음이 담긴 카톡을 읽는데 피식 웃음이 지어졌다.
그런 그들 앞에서 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과 동시에 내가 미워하게 된 사람의 험담을 더 하는 대신 그저 속이 물렁물렁하게 풀어짐을 느꼈다.
"엄마! 쟤가 나 때렸어!" 엄마에게 이르면 엄마가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지켜줄 것만 같아 엄마 품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아이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겐 나쁜 일 하나 생기지 않고, 평온한 나날만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하지만 근래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터뜨리는 분노와 화를, 그들이 내뱉는 찰진 욕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분노와 화는 꼭 필요한 감정이었다.
곁에 있는 사람이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하는 것도 큰 위안이 되지만, 나를 대신해 나보다 더 크게 열받아하는 상대의 모습이 훨씬 큰 위안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빡치는 일에 더 크고 깊게 빡치기. 딥빡. 좋은 친구의 기본자세였음을 나의 좋은 친구들이 또 한 번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