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가는 아이 손님과 함께한 비행

by 우자까

1. 아까부터 귀가 아파요. 윙윙대는 소리가 귓구멍을 세게 때리는 것 같고... 귀는 아픈데 자꾸 흔들려서 토할 것도 같아요. 시끄럽고, 움직여대고... 지금 있는 이곳이 너무 싫어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아니 엄마가 낯선 아줌마랑 아저씨한테 인사를 하고 저를 넘길 때부터 불안했어요.


엄마는 오늘 아침 특히 이상했어요. 방긋방긋 웃으시던 엄마가 요 며칠 저만 보면 눈가가 빨개졌는데요. 엄마 눈에는 금방이지 맑고도 굵은 눈물방울이 생겼고 저는 그게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맘을 졸였어요. 그래서 일부러 엄마 앞에서 까불거렸거든요. 오늘 아침에는 엄마를 웃게 만들려고 촐랑댔는데 엄마는 그런 저를 안고 어르면서 버스를 탔어요. 아침부터 꽤 오랫동안 먼 곳으로 이동했지요.


도착한 곳은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였어요. 너무 많은 발걸음과 험하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를 불안하게 했어요. 엄마는 제 손을 꼭 잡고 사람들 사이를 재바르게 걸어갔어요. 걸음 폭이 좁은 저는 급하게 걸어야 했고요. 잠시 엄마 걸음이 느려질 때에는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어요. 피로한 얼굴의 사람들이 커다란 짐을 둘러메기도 하고, 끌기도 하면서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 혼잡한 틈바구니에서 엄마는 두리번대며 누군가를 찾는 듯했죠.


엄마가 낯선 사람과 인사를 나누어요. 엄마 품에 안겨 따라간 곳에서 몇 번인가 봤던 얼굴이에요. 엄마는 낯선 아저씨랑 아줌마 손을 꼬옥 붙잡고는 연신 꾸벅거리며 말했어요.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너무 커서 뭐라고 하는지는 들을 수 없었죠.


엄마는 저를 향해 고개를 돌려 두 팔을 크게 벌리더니 여느 때보다 세게 안아주었어요. 엄마 품에 쏙 잠기듯이 안기자 엄마 냄새가 한층 짙게 콧구멍을 통해 들어왔어요. 아, 이 냄새. 이 냄새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냄새에요. 저는 엄마 냄새가 너무 좋아서 있는 힘껏 크게 숨을 들이마셨어요. 불안했던 마음이 이내 진정되는 기분이었죠. 한 번 더 크게 숨을 들이마시려는데 엄마가 저를 떼어냈어요. 그리고 그 맑고 굵은 눈물방울,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했던 그 방울이 결국 또르르 떨어지고 있었어요.


엄마는 삐죽빼죽 닫힌 입을 힘겹게 열어서 제게 무어라 말했어요. 그러더니 저를 번쩍 들어 올려 낯선 사람 품으로 몰았죠. 낯선 아저씨랑 아줌마가 저를 자꾸 끌어안으려고 했어요. 저는 엄마 품이 좋은데... 엄마 품에서 나는 냄새가 좋은데 말이에요. 엄마에게서 떨어지기 싫은 저는 있는 힘껏 울어댔어요. 저는 악을 쓰고 울어대면서 엄마 옷깃을 꽉 잡고 놓지 않았어요. 엄마는 주저하더니 단호하게 힘을 주어 엄마 옷깃을 잡은 제 손을 떼어냈어요.


낯선 아줌마는 어쭙잖게 저를 어르며 달래려고 했어요. 저를 안심시킬 수 있는 건 엄마 품뿐인데... 저는 더 크게 울 수밖에 없었고, 아줌마는 저를 안은 채 엄마로부터 몸을 돌리더니 걷기 시작했어요. 발걸음 소리를 크게 내며 어딘가로 걷고 또 걷고만 있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처럼요.

몸을 비틀고 꼬면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엄마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엄마한테 가야 하는데... 가야 하는데.


2. 여느 날처럼 특별할 것 없는 아침이었다. 일어나서 씻고 화장을 한 뒤 비행 나갈 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권과 아이디카드는 으레 있어야 할 곳인 가방 속 안주머니에 놓여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스카프를 매기 위해 거울 앞에 섰는데 비행으로 건조하고 푸석해진 피부 탓에 얼굴에 생기가 없어 보였다. 애꿎은 입술에 분홍빛 립스틱을 덧발랐다. 그러자 오히려 칙칙한 얼굴에 입술만 동동 떠있는 꼴로 보였다. 못 봐주겠지만 애써 한번 웃어 보이고는 거울 앞에서 돌아섰다.


답답한 호텔에서 빠져나와 공항 사무실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공항으로 가는 여행객들로 이미 만원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다들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무연히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착할 공항도 사람들로 북적일 터였고 오늘 내 비행도 만석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득한 기분이 들어 잠시 눈을 감았다.


회사에 도착해 곧장 브리핑 데스크로 향했다. 오늘 함께할 비행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뒤 탑승 승객 정보를 확인했다. 신체장애를 가진 승객, 유달리 까탈스러운 승객, 새우 알레르기 승객.. 오랜만에 만나는 UM 승객...


UM(Unaccompanied Minor)이란 보호자 비동반 소아를 일컫는다. UM은 항공사 직원들이 비행기 탑승부터 시작해 도착지에서 보호자 인계까지 비행의 전 일정 동안 소아를 인솔하는 서비스다. 만 5세 이상부터 만 11세 미만의 소아 혼자 항공기 이용 시 의무적으로 신청해야만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국내 항공사들을 비롯한 전 세계 항공사들이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별도의 서비스 비용 없이 성인 운임을 발권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만 5세 미만 유아는 단독 이용이 불가하며 UM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된다.


(참고로 대한항공은 비동반 소아 승객과 보호자를 위해 플라잉 맘이라는 서비스도 갖추고 있다. 보호자 없이 홀로 탑승한 어린이 승객을 걱정하는 부모를 위한 서비스로, 담당 승무원이 서비스명 그대로 엄마처럼 어린이 승객의 식음료 섭취 내역, 수면, 휴식, 기분, 건강 상태 등 기내 생활 전반을 세심하게 보살핀 후 편지를 작성하여 도착지의 보호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다. 비행시간 5시간 이상의 중/장거리 항공편에 탑승하는 비동반 소아 승객에게 제공되고 있으며, 매년 평균 1만 명 이상의 승객들에게 제공 중이다.)


나는 다시 한번 우리 항공사의 UM 승객 대응 절차를 확인한 뒤 브리핑 준비를 마쳤다. 브리핑을 끝내고 동료들과 함께 공항 게이트로 향했다. 공항은 언제나처럼 여행객들이 풍기는 특유의 분주함과 활기로 가득했다. 화장품 코너에는 들떠 보이는 여성들로 바글바글했고, 운동복 바람에 벌써부터 목에 목베개를 두르고 카페 한구석에 늘어진 청년들도 보였다. 일하러 가는 나와는 동떨어진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나는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을 지나쳤다.


이내 도착한 게이트 앞에서 지상 직원을 만나 가장 최신의 승객 정보가 담긴 종이를 건네받았다. 사무장은 UM 승객 관련 봉투 및 서류를 받았고, 지상 직원은 UM 승객에 대한 추가 정보를 우리에게 전했다. 오늘 UM은 입양아였다.

지금까지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를 몇 번인가 태운 적은 있었다. 대개 입양하는 양부모나 입양센터 직원과 동행했었는데, 오늘 아이는 보호자가 없었다. 지상 직원은 도착지 공항에 관계자가 나와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내 탑승까지는 다른 지상 직원이 인도해 준다고 했다. 비행은 인천발 엘에이행이었다.


UM 승객은 절차대로 가장 먼저 탑승했다. 아이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코는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고, 가는 속눈썹에는 말간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지상 직원으로부터 아이 손을 건네받았다.

아이는 내 손을 잡지 못했고 그렇다고 놓지도 못하는 모양새로 어정쩡하게 손을 내주기만 했다. 내 손바닥 위에 얹힌 아이 손이 작았다. 아직 연약하고 부드러운 아이라는 존재를 증명하듯 너무 작았다. 이 작은 손으로 오늘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낯선 사람들 손에 이끌려 다녔을까 생각했다.

비행 중 아이는 연신 울어댔다. 그쳤다 싶으면 숨을 씩씩 거리며 몰아쉬다가 다시 울었다. 길고 질긴 울음이었다. 동료들과 번갈아가며 장난감을 보여주다 초콜릿과 사탕을 들이밀고 새콤달콤한 주스를 먹이려 해도 소용없었다. 아이 사정을 모르는 주위 승객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귀마개를 요청했고, 좌석 변경까지 원했다. 몇몇 승객은 애 보호자는 대체 어디 있냐며 성화를 내기도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사무장은 전담 승무원을 아이 옆에 배치하기로 했다. 아이가 울 때마다 승무원들이 교대로 가서 달래는 것보다는 옆에서 한 승무원이 내내 있어주는 게 아이에게도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이 좌석이 내가 맡은 서비스 구역이었기에 그나마 비행 동안 아이에게 자주 얼굴을 비춘 내가 전담 승무원이 되었다.

나는 승객들 눈을 피해 스카프를 푸르고 개인용 카디건 앞부분을 여며 유니폼을 가렸다. 그리고 우는 아이를 담요로 감싼 다음 안아올려 맨 끝 좌석으로 옮겨가 앉았다. 아이를 안은 채로 자리에 털썩 앉아 무릎 위에 앉은 아이를 살펴보니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살며시 끌어안았고 아이는 작게 우는 듯했다. 아이는 따뜻했고 나는 그 온기를 느끼며 아이 등을 한 손으로 살살 쓸어내렸다. 아이는 점점 더 내 품에 파묻혔다. 얼마간이 지나자 아이와 나의 호흡이 같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륙부터 세 시간을 연신 울어대던 아이도 결국에는 지쳤는지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소리였다. 아이 얼굴을 살짝 내려다보자 말간 뺨에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아이 등을 이따금씩 토닥토닥하며 몰려오는 피로에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푹 숙이자 아이 머리에 얼굴을 박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아이 머리카락에서 여리고 비린 향기가 몸속으로 번졌다. 낮고 멀리 퍼지는, 정처 없는 냄새였다.


깜빡 잠이 들었는지 서비스를 마친 동료 승무원이 교대해 주겠다며 다가와서 깨웠다. 고개를 들자 허리랑 목이 뻐근했다. 아이는 내 품에 폭 안긴 채로 자고 있었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동료에게 건네다가 깨기라도 하면 안 될 터였다. 나는 동료 승무원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하려고 살짝 팔을 들어 올렸다. 목소리를 냈다가 아이가 깰까 봐 손짓을 하려던 거였는데... 순간 내 어깨 부분에 얹혀있던 아이의 작은 손에 힘이 가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흠칫하며 내려다보니 자면서도 내 옷깃을 꼭 잡고 있는 아이의 작은 손이 보였다. 나는 그 이상 팔을 들어 올리지 않고 괜찮다는 고갯짓만을 하고는 다시 가만가만 아이 호흡에 숨결을 맞춰갔다. 아이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었다. 손은 계속 내 옷깃을 부여잡고 있었다. 작은 손에는 버거워 보였다.



3.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모국인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날이거든요. 해외로 입양된 아동들이 성장하면서 한국을 방문하는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국을 다녀간 경험과 친부모와의 재상봉이 입양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데요. 저도 어렸을 때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됐습니다.

양부모님은 좋은 분들입니다. 다정한 양부모님에게 사랑을 담뿍 받으며 자란 저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던 직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첫 출근을 하기까지 한 달 정도 여유 시간이 남아 저는 제가 태어난 곳인 한국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양부모님도 지지해 주었고요. 친어머니를 딱히 찾아보고 싶다거나 만나고 싶은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때부터도 친어머니에 대한 환상이나 막연한 그리움 같은 마음이 크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태어난 나라, 저와 같은 생김새의 사람들로 그득한 나라에 대한 기대는 갈수록 커져갔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할 줄 모르지만 한국 드라마와 영화, 케이팝까지 모두 좋아합니다. 요즘엔 한국 걸그룹에 빠져있고요.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도착한 공항은 붐볐습니다. 어머님은 잘 다녀오라며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어머니 품은 언제 안겨도 참 포근하지요. 저는 잘 다녀오겠다며 씩씩하게 말하고는 이를 크게 보이며 씨익 웃어 보였습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로 향했습니다. 아직 탑승 전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어 게이트 앞에 앉아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을 바라봤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이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들을 말이에요. 이제 곧 저 비행기를 타고 모국을 방문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비행기만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인데... 살아오면서 참 멀게만 느껴진 모국이었습니다.

어느덧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승무원들의 사탕 같은 미소를 받으며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엘에이발 인천행 비행이었습니다.


귓전을 때리는 엔진 소리와 몸을 울려대는 진동이 느껴졌고 비행기는 곧 이륙했습니다. 이륙하자마자 한 아이가 울어대더군요. 어찌나 크게 우는지 조용한 기내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기내에 깔린 고요함을 무색하게 찢어버리는 울음이었습니다. 승무원들이 번갈아 아이에게 장난감을 가져다주고 안아보며 진땀을 빼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습니다. 아이에게나 승무원에게나 긴 비행이 될 것 같았어요.


저는 잠이나 자려고 좌석 깊숙이 엉덩이를 파묻었습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낮게 틀었죠. 간밤에 잠자리를 설친 탓에 졸음이 밀려오더군요. 저는 곧바로 잠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꿈과 현실의 희미한 경계 속에서 여러 가지 꿈을 꾼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처럼 웅웅거리는 엔진 소리, 조금씩 흔들리는 기내, 아이의 처연한 울음소리... 현실과 꿈이 서로 뒤섞인 공간인 것 같았죠. 묘하게 낯설지 않은 이 기분, 이 어설픈 기시감은 어디서부터 올라오는 것일까요.


갈증이 일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갤리에 있는 승무원에게 다가가 물 한 잔을 요청했습니다. 물을 받고 돌아섰는데 아이를 업고 달래는 승무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이의 빨갛게 부은 코가 퍽 귀여워 얼마간 아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 아이를 업고 있는 승무원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먼저 살짝 웃어 보였고, 승무원도 제게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시 좌석으로 돌아온 저는 음악 볼륨을 더 크게 높였습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아이가 우는소리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파묻혀 점차 작아져갔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앞으로 얼마나 있어야 도착할지를 가늠해보았습니다. 그러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면과 장면들이 모두 꿈같이 느껴졌습니다.



공항과 비행기에서 비롯되는 장면들. 생각들. 그 속에서 쌓여가는 이해.

제가 비행을 사랑해 마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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