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 나타난 바퀴벌레 손님

반갑지 않은 손님 2탄

by 우자까

곤충과 벌레를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다리가 여섯 개든 여덟 개든, 기어 다니든 날아다니든, 검은색이든 하얀색이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모기를 한 번도 손으로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벌레나 곤충의 몸에서 가장 징그러워하는 부분이 바로 다리거든요. 모기가 다른 곤충보다 유별나게 혐오스러운 모습은 아니지만... 그 가느다란 다리가 손바닥 사이에서 으깨지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맨손으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모기도 전자채 아니면 휴지를 둘둘 말아서 때려잡습니다.

파리는 또 어떻고요.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뒤로 마구 비벼대는 발과 퍼렇고 초록 빛깔의 눈은 꼴 보기도 싫습니다. 음식에 파리가 꼬일 때도 저는 더러워서라기보다 모양새부터가 싫어 짜증이 치솟습니다. 꼬물거리는 구더기나 애벌레는 뭐 말할 것도 없지요.


한여름에는 땅바닥에 지천으로 깔린 개미 탓에 스텝이 엉킬 때도 있습니다. 저는 개미를 밟는 게 또 그렇게 싫습니다. 제가 잘못 발을 내디뎌 개미의 까만 몸뚱어리가 터진다면 토도독 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발끝에서부터 오소소 소름이 돋아요. 이 정도면 병적이라고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입니다. 통나무집에 사는 큰아빠네로 놀러 갔지요. 어른들끼리 성묘하러 나가서 사촌 언니와 저는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탱탱한 면을 빨아들일 때 드문드문 보이는 검은깨들이 고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면을 다 건져 먹고 국물을 들이켜기 위해 그릇을 들어 입 가까이 가져다 댔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검은깨의 정체가 제대로 보였습니다. 그것은 깨가 아니라 개미였던 겁니다. 통나무집이라 벌레가 많았던 큰아빠네는 당연히 개미도 많았던 거지요. 개미들이 라면 봉지를 뚫고 그 안에서 서식하고 있었음을 모르고 봉지를 탈탈 털어 라면을 끓였던 겁니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며 씹히던 것이 검은깨가 아니라 개미였음을 알게 된 저는, 바로 구토를 했습니다.


그 후로 검고 작은 점이 바닥이나 침대나 벽에 또는 국물 위로 보이기라도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봅니다. 집에 크기가 꽤 큰 벌레가 등장하면 소리부터 지르고 마는데요. 덕분에 같이 사는 가족들만 깜짝깜짝 놀랍니다. 저는 빨리 치우거나 죽여버리라며 도망갔죠.


하루는 집에 혼자 있는 날이었습니다. 소파 위 쿠션을 살짝 들었는데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지네 같은 벌레가 쿠션 밑에 숨어있었습니다. 저는 쿠션을 슬며시 내려놓고 바로 일어나서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뭐 하고 있느냐 묻기에 다리가 몇 개인지 셀 수도 없는 지네 때문에 짐을 싸서 집 근처 모텔로 갈 거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이 년아, 부터 시작해서 미친~으로 끝나는 욕을 했습니다(저는 원래 엄마에게 이름보다 이 년아~로 더 많이 불립니다). 그래도 욕만 할 수 없던 엄마는 묘안을 냈는데요. 청소기로 지네를 빨아들이라는 거였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지 않고 전화기 너머 엄마에게 으으으으어어 소리를 지르면서 청소기를 지네에게 갖다 댔습니다. 청소기는 지네를 쏙 먹어치웠지요. 저는 청소기를 현관 앞에 세워두고 문을 닫았습니다. 온몸이 근지러웠습니다. 청소기 안에서 꾸물거리고 있을 지네의 움직임이 느껴졌거든요. 아무쪼록 다음 날 엄마 보고 청소기 먼지통 필터를 깨끗이 비우라고 시킬 작정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싫어하더라도 벌레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정말이지 어디든 은밀하게 숨어있는 게 벌레이지요. 저는 결코 벗어날 수 없겠죠. 그저 제 눈에만 요행히 안 보이길 바랄 뿐입니다.


비행으로 해외에 나가면 호텔에서 묵는다. 회사에서 선정한 호텔은 대개 깔끔하고 안락하다. 그럼에도 역시 벌레는 있다. 특히 동남아 호텔에는 개미나 바퀴벌레가 많아서 캐리어를 열어놓지 않는다. 캐리어 안으로 바퀴벌레가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바퀴벌레가 숨어들어간 캐리어를 한국의 내 방까지 고이 모셔오고 싶지 않다. 캐리어를 잘 닫아두는 건 승무원 생활 팁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비행이었다. 그날따라 꽤 좋은 방을 배정받았다. 보통 원룸에 화장실이 딸려 있는데, 그날 방은 방의 방의 방이 있었고 화장실도 입구와 침실 옆으로 하나씩 두 개나 있었다. 큰 방은 기장이나 사무장이 묵는데 운 좋게 내게도 떨어진 모양이었다. 침실 옆에는 삼면이 거울로 된 화장대도 있어서 그럴싸했다. 나는 자기 전에 화장대 위로 다음날 사용할 화장품과 소품들을 늘어놓았다. 새로 산 브러시들을 차례로 펼쳐서 보니 뿌듯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쇼업이었으니 일어나자마자 바로 화장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뻗었다.


기상해서 룸서비스를 시켜 먹고 화장을 시작했다. 비비크림을 옅게 바르고 파우더 브러시로 복숭아 향이 나는 분홍빛 블러셔에 문댔다. 향이 좋고 색도 이뻐 내가 좋아하는 블러셔였다. 살짝 찍어 바르면 얼굴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여느 때처럼 브러시를 얼굴에 문대는데 뭔가가 후드득 떨어져 나왔다. 나는 무엇인지 살펴보기도 전에 직감으로 알았다. 이런 ㅆ..!!! 브러시 결을 타고 내 얼굴 위로 흩뿌려진 그것들은 개미였다. 단내 나는 브러시 모 사이에서 놀고 있던 게 분명했다. 개미들이 내 뺨 위로 올라와 꼼지락댔다. 나는 기겁하며 내 뺨을 털어대고 후려치다 뒤로 넘어졌다.


밴쿠버 비행이었다. 기내식 서비스가 끝나고 모두가 영화를 보거나 잠을 청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한숨 돌리며 갤리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호로록호로록 커피를 들이키자 살 것 같았다. 잠깐의 여유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기내가 소란스러웠다. 나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무슨 일이 났나 싶어 기내로 뛰쳐나갔다. 두세 명의 승객들이 아예 좌석에서 일어나 통로 쪽으로 나와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 입을 떼기도 전에 승객들이 나를 보고는 일제히 외쳤다.


"바퀴벌레!!!"


벌레는 어디에나 존재하겠지만, 비행기에도 있을 수 있었다. 지긋지긋했다. 그나저나 벌레 중에서도 하필이면 바퀴벌레!!! 바퀴벌레가 내 비행에 나타나다니... 승객들은 유니폼을 입은 내가 단번에 처치해 주리라 기대하는 눈치였다. 창가 쪽에 앉은 승객이 내게 말했다. 영화를 보다가 무심코 바닥을 봤는데 바퀴벌레가 지나가고 있었다고. 그녀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손가락 검지와 중지를 합친 다음 들이대면서 크기가 이렇게나 됐다고 덧붙였다. 이 소리를 들은 맨발인 아저씨 승객이 갑자기 신발을 찾아서 신었다. 바퀴벌레가 바닥에 기어 다닌다는데 맨발로 바닥을 쓸고 싶지는 않을 터였다. 나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승객 앞에서는 짐짓 침착한 척 말했다.


"네^^;;; 손님 여러분~! 기내는 항상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바퀴벌레가 나타났다고 하니 착륙 후 클리닝 센터에 보고해 기내 위생 상태를 더 철저히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비행 중이니 혹시라도 또 바퀴벌레가 보이면 바로 저희 승무원에게 말씀해 주십시오(말해도 난 어쩔 수가 없으니 제발 나타나지 말아라)."


승객들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수군댔다. "아니 진짜로 이만했다니까?" "어후~ 이게 무슨 난리람, 괜히 찝찝하네"


나는 승객들의 볼멘소리를 뒤로하고 돌아섰다. 곧바로 사무장에게 보고를 했고, 사무장도 벌레라면 질색하는 기색이었다. 우리는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를 바퀴벌레 등장에 대비해 장갑을 끼고 휴지를 두툼하게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과연 내가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이가 나를 보며 "바퀴벌레!!!"라고 외쳤으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폼이라도 잡아야 했다. 바퀴벌레를 잡으려는 시늉을 보이면 된다. 그것들은 인간의 눈치까지 살필 줄 알아서 잽싸게 튀어 다니니 내가 살짝만 다가가도 도망갈 것이다. 그럼 나는 최소한, 잡으려고 시도는 한 승무원으로 보일 테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바퀴벌레가 구석진 곳으로만 숨죽여 피해 다니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눈에 안 띄어서 승객들이 나를 부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내 바람대로 한동안 고요한 시간이 이어졌다. 갤리에서 다음 서비스를 준비하고 앉아있는데 잠이 쏟아졌다. 한국 시각으로는 한밤을 지나 새벽이었다. 전혀 거절할 수 없는 티없는 잠이 왔다. 밤새우는 직업을 가진 사람만이 겪을 수 있는 순수한 졸음이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오독오독 씹어먹으며 졸음이 달아나도록 애썼다.

다시 한번 기내가 술렁거렸다. 올게 왔구나 싶었다. 한 손에 기내 잡지를 들고 주머니에 넣어둔 휴지뭉치를 꺼내며 달려나갔다. 승객들 시선이 한 방향으로 쏠려있었다. 나도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벽에는 바퀴벌레가 붙어있었다.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나 됐다.


나는 속으로 이런 쌰아아ㅇ... 욕을 하며 기내 잡지를 돌돌 말았다. 동료 승무원은 신문을 길쭉하게 말아서 바퀴들에게 다가갔다. 승객 모두 앉아서 우리를 주시했다. 나는 잡지로 절대 내려치지 못할 테니 바퀴가 알아서 도망가길 바랐다. 그런데 원래 잘만 도망 다니는 것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 내가 한발 한발 다가가도 꼼짝하지 않았다(제발 도망가! 기꺼이 살려줄 테니까!).


한 발짝씩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퀴들의 반짝이는 등껍질과 살아있는 더듬이와 움직이는 다리 모양새가 뚜렷이 보였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소름이 돋았다. 이제 우리 사이의 거리는 일 미터도 안 됐다. 동료 승무원은 더 가까이 오지 못하고 내 뒤에서 등을 떠밀었다. 동료에게 떠밀려 한 발짝 더 내딛자 한 녀석이 움찔거렸고 다른 한 녀석은 더듬이를 사방으로 휘저었다.


나는 꺅!도 아니고 꺽!도 아닌 이상한 신음을 내며 뒷걸음질 쳤다. 몇 승객이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보다 못한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건장한 체격의 외국인이었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표정으로 그에게 잡지를 건넸다. 쿠쥬 플리즈...? 하는 간절한 눈빛이었으리라. 그는 반팔 소매가 꽉 낄만큼의 우람한 팔뚝 근육을 자랑하며 잡지를 말았고 성킁성큼 다가가 팔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죽음의 낌새를 느낀 눈치 빠른 한 놈이 최후의 수단을 썼다.


한 녀석이 날은 것이다! 날고야 말았다! 놈은 날개를 활짝 펴고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힘차게 날갯짓을 했고, 그 날갯짓에 따른 파장은 실로 대단했다. 저마다 기괴한 소리를 내질렀다. 꾸악! 뀩!! 왓떠..!!! 승객들은 몸을 한껏 웅크리거나 담요를 뒤집어썼다. 재빠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갔다. 근육질 남자는 어느 틈에 내 등 뒤로 왔는지도 모르겠다.


날아간 놈은 승무원 좌석 모서리에 착륙했다. 동료에게는 미안하지만 다행히 내가 착륙 때 앉아야 할 좌석은 아니었다. 이내 벽에 가만히 붙어있던 녀석도 움직일 기척을 보이며 꼼질대자 주변에 앉아있던 승객들이 우르르 일어나 통로로 나왔다. 근육질 승객은 바퀴벌레 날갯짓에 사기가 꺾였는지 다시 잡아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내 뒤에 서서 왓더헬 어쩌고 하며 욕을 읊조릴 뿐이었다. 내가 속으로 내지르고 있는 한국 욕과 외국 욕이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그때였다. 한 승객이 근육맨 손에 들려있는 잡지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곧바로 승무원 좌석에 붙어있는 바퀴벌레에 달려가듯이 다가가서 날쌘 동작으로 정확하게 놈을 가격했다. 방금 전까지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존재가 허망하게 으깨져 떨어졌다. 사람들은 다시 한번 꾸악! 뀩!! 왓떠!!! 비명을 지르면서 환호했다.


그러는 사이 벽에 붙어있던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승객들이 바퀴를 놓칠세라 부릅뜬 눈으로 좇으며 여기요! 여기도요!!라고 외쳤다. 이미 한 마리를 때려잡은 승객은 두 마리쯤이야 문제도 아니라는 식으로 남은 한 놈을 잡기 위해 몸을 휙 돌렸다.

그새 종적을 감춘 놈을 몰아내기 위해 승객들이 바닥을 발이나 책으로 쿵쿵 찧었다. 비상구 좌석 옆으로 놈이 나타나 비상구 좌석에 앉아있던 승객이 놀란 나머지 펄쩍 뛰어올랐다. 바퀴를 잡았던 승객은 큰 걸음으로 비상구까지 걸어가 나머지 놈도 한 방에 처리했다.


바퀴벌레를 때려잡은 승객은 아이 엄마 승객이었다. 바퀴가 등장하기 전까지 별다른 특징 없이 평범한 아이 엄마 모습이었다. 나는 서비스하면서 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아이에게 소곤소곤 속삭이는 모습이 다정하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이가 승무원에게 서비스 물품을 받았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하지 않으면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엄마 승객은 휴지로 바퀴들을 똘똘 싸서 화장실 변기로 흘려보내는 사후 작업까지 완벽히 해주었다. 몇몇 승객은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 많은 승객이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아이 옆에 다시 앉았다. 나와 동료 승무원은 그녀에게 다가가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사건이 일단락되자 피신했던 승객들은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나는 갤리로 돌아가 냉수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비행기의 모든 구석과 가장자리가 달리 보였다. 앞으로 살충제를 들고 다녀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갤리 바깥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어 기내를 살폈다. 차분해 보였지만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바퀴새끼들 때문에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듯했다.


나는 초콜릿과 스낵 몇 봉지를 준비해서 우리의 영웅에게 다가갔다. 아이가 그녀 옆에서 곤히 자고 있기에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 손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드릴 것은 마땅히 없지만 간식거리라도 챙겨드리고 싶어서요.."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저도 비행기에서 바퀴벌레는 처음 보네요."

"저도요!! 벌레는 정말이지 곳곳에 다 있나 보아요. 그런데 손님께서 정말 날렵하게 잘 때려잡으시더라고요... 손님 아니었으면 기내가 아수라장이 될 뻔했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내 말에 영웅이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결혼해서 애 낳기 전에는 벌레 한 마리 제 손으로 못 죽였어요. 그런데 하루는 애가 바닥에서 자고 있는데 엄지손가락보다 큰 바퀴가 나타난 거예요. 아까보다 더 큰 놈이었죠. 샤샤샥 기어가는 방향을 보니 자칫하면 우리 애한테로 가겠더라고요. 어떡하겠어요...

그냥 닥치는 대로 손에 집히는 거 잡아다가 내려쳤죠. 집에 애기랑 둘만 있으면 제가 잡아야죠 뭐. 벌레가 우리 애 몸 위로 기어 올라가게 둘 수는 없잖아요."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흔히 말한다. 밴쿠버 비행에서 바퀴벌레를 때려잡은 엄마 승객은 내게 그 말을 몸소 보여줬다. 나는 내 앞에 앉은 승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줌마가 되어간 일련의 과정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에서 아줌마라는 말이 주는 유형화된 질감과 티는 완연하게 존재한다. 고집스럽고 악착스러운데다 억세 보이는 모습. 과연 그 모습들은 저 혼자서 잘 먹고 잘 살아 보자고 갖추게 된 모습은 아닐 터이다.


우리 엄마도 요리나 청소를 하다가 또는 밥을 같이 먹을 때 몇 번인가 말했다. "너도 네 자식 낳아보면 안다. 낳기 전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지, 암암." 엄마가 흘러가는 말처럼 대수롭지 않게 했기에 나도 흘려들었다.


바퀴벌레 비행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해 공항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비행 내내 별일 없었냐고 물었다. 나는 할 말이 많았지만 일단 무탈한 비행이었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수고했다며 저녁에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여느 때라면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라던가 순두부찌개 따위를 말했을 거다. 나는 한숨 고르고 쉬었다가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나가서 사 먹자. 내가 쏠게."

전화기 너머로 엄마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저녁을 먹으며 엄마에게 툭하니 말할 요량이었다. 우리 엄마 참 곱다고, 이렇게 아직도.


모기조차 못 잡는 저도 엄마가 되면 아이를 위해 벌레를 죽일 수 있을까요. 괜찮겠죠? 세스코가 있잖아요...


비행기 창문 사진 출처 : dribbble.com

승무원 웹툰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flyingwoop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