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행색은 초라했다. 빛이 바랜 감색 점퍼를 슬쩍 걸치고 펑퍼짐한 바지를 질질 끌며 걸어오는 모습이 남루하게만 보였다. 내 시선은 잠시 그에게 머물렀지만 이내 다른 승객들을 맞이하고 좌석을 안내하는 데 정신을 뺏겼다.
탑승 시간에 승무원들의 눈동자가 얼마나 휘황찬란하게 굴러가는지 한 번 살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승무원에게 가장 관찰력이 요구되는 순간이 승객들의 탑승 시간이기 때문이다. 좌석 안내 및 짐 수납을 도와드려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승객 중에서 수상한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나 위험해 보이는 물건은 없는지를 단박에 감지해야 한다.
우리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탑승하는 승객들을 유심히 살피는 와중에 승객들에게 호감 가는 첫인상을 주려고 다감하게 웃으며 승객들을 맞이한다. 그래서 모든 승객의 탑승을 완료하고 이륙 준비를 한 다음 최종적으로 승무원 좌석에 착석하면, 아직 비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이미 지쳐있기 일쑤다.
피곤한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비행기는 이륙했고, 그날따라 이륙 후 안전벨트 착용 사인등도 빨리 꺼져 자리에서 금방 일어서야 했다. 조금만 더 앉아서 한숨 돌리고 싶었던 나는, 우리 승무원들 속도 모른다며 애꿎은 기장님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앞치마를 둘러맸다. 장거리 노선인지라 쉴 틈 없는 두 시간의 서비스가 이어졌고, 승객들은 우리가 제공하는 기내식과 차와 커피 및 아이스크림을 유유히 즐겼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식욕이나 식탐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두 시간 남짓 다른 사람이 먹는 모습을 보고만 있으면 허기가 지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그날은 비행 전에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은 날이었다. 나는 얼른 서비스를 끝내고 남은 기내식을 모두 입속에 처넣고 싶은 욕구에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어찌어찌 입맛을 다셔가며 주린 배를 움켜잡고는 풀 서비스를 끝마쳤다. 나는 빨리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나 있었다. 그래도 사무장님에게는 열심히 일하는 승무원으로 보이고자 시치미 뚝 떼고 갤리에서 마저 뒷정리하는 척했다. 사무장님이 내게 다가와 "너무 고생 많았어. 이제 얼른 식사하자. 먼저 먹어."라고 말해주시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이윽고 사무장님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너무 고생 많았어. 이제 얼른 식사하자. 다만, 먹기 전에 오늘 생일인 승객 먼저 챙겨주고 먹도록 하자."
내 뱃속에는 며칠 굶은 거지가 들어찬 것처럼 속이 헛헛했지만, 나는 사무장님에게 깍듯한 태도로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장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일개 승무원에게 배고픔 따위는 마땅히 고개를 숙여야 했다. 나는 사무장님으로부터 생일인 승객의 좌석 번호를 넘겨받았고, 그 승객의 얼굴을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무겁고도 배 아픈 걸음을 뗐다.
생일인 승객은 탑승할 때 보았던 초라한 행색의 그 사내였다. 건조한 기내 탓이라 그런지 얼굴 가죽이 한층 더 까칠해 보였다. 그는 무표정으로 좌석 앞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스카이 맵이 상영되고 있었다. 비행기의 경로와 도착지까지 남은 시각 및 거리, 비행기의 속도 등이 번갈아 반복되는 지루한 장면이었는데도 그는 뭔가 중요한 것을 보기라도 하듯이 화면만을 응시했다.
원래 나는 승객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챙겨주기 이전에 해당 승객과 짧은 대화라도 나눈다. 그 대화에서 특정한 사연이나 정보를 얻어낸 다음, 생일 카드에 그와 관련된 문구를 작성한다. 하지만 그날 나는 배가 고파 눈이 뒤집히기 직전이었기에,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그 사내를 일별하고 곧장 생일상을 차리러 갤리로 향했다. 워낙 많이 해봤던지라 자동적인 빠른 손놀림에도 어느 정도 그럴듯하게 생일상이 차려졌다. 생일 카드에는 형식적인 축하 글귀를 휘갈겨 썼다. 사무장은 준비가 다 된 생일상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는 생일을 맞이한 그 승객을 갤리로 데리고 왔다. 우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며, 생일상으로 특별히 준비한 디저트 음식과 샴페인, 여행용품 세트가 담긴 선물을 선보였다. 담담했던 표정의 사람이 이렇게까지 미소 지을 수 있나 싶을 만큼 그는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배고픔의 아우성도 잊은 채, 그와 함께 웃으며 다시 한번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제가 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거든요. 타지에서 혼자 살며 일하느라 그간 생일 한 번 제대로 챙겨 본 적이 없었는데...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나는 대뜸 자기 생일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나무랐다. 예전에 아부지 생신을 아주 대놓고 깜빡해서 그냥 지나간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아부지 생신날이었다. 나와 엄마는 천호동 쭈꾸미 골목으로 외식을 하러 나가기 위해 채비 중이었다. 엄마랑 내가 가는 집은 저녁 시간에 대기까지 있을 정도라 우리는 오후 일찍 집을 나설 작정이었다. 우리가 집에서 막 나가려는 참에 마침 아부지가 일터에서 돌아오셨다. 우리는 평소보다 이르게 집에 오신 아부지에게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일이 일찍 끝났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엄마와 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우리는 가뿐하게 말했다.
"아부지. 그럼 일도 일찍 끝났는데 집에서 쉬고 있어요. 우리 쭈꾸미 먹으러 나가는 길인데, 아부지 매운 거 잘 못 먹으니까 우리끼리 다녀올게. 된장찌개 있으니까 그거랑 밥 챙겨 먹어요."
아부지는 그렇게 집에서 혼자 저녁을 드셨고, 엄마랑 나는 쭈꾸미와 함께 맥주를 거나하게 먹고 얼큰한 속을 부여잡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이 아부지의 생일이었다는 건 며칠 뒤에나 알았다. 나는 엉엉 울며 아부지께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왜 사람을 이렇게 미안하게 만드냐고 되레 화를 냈다. 아부지는 생일이 뭐 별거냐며 허허 웃기만 하셨다.
사람이 태어난 건 축복할 일인데, 매일매일 축하받기는 어려우니까 생일이라는 날을 정해서 그날이라도 제대로 된 축하를 받는 건데, 왜 일만 하다 늙어버린 우리 아부지는 생일에 축하받는 일조차 그리도 겸연쩍어하는 지. 가끔 생일날마저도 쪼그라들고 위축된 아부지 모습에 답답했다.
6년간 타지 생활을 하며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생일이라곤 없었던 승객. 당신 생일날 내심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에 일찍 왔을 텐데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모녀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했던 아부지. 자식들 눈치 보느라 황급히 괜찮다고만 말하는 그 모습들에 내 속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온다.
나는 서두르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생일은 챙기셔요. 생일 축하드리고요. 정말 오랜만에 가족들 만나는 것일 텐데, 돌아가셔서 가족분들과 행복한 생일 저녁 보내세요.”
그는 뼈마디가 굵은 손등 언저리로 코끝을 훑으며 웃는 듯 우는 듯 기이하고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생일상을 받아 들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좌석 앞 화면에서는 여전히 스카이 맵 화면이 반복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무장님은 내게 인제 그만 식사를 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분명 배가 너무나 고팠는데, 기내식이 가득히 남은 오븐을 열어 재꼈는데도 무덤덤했다. 진작 가라앉은 기분 탓에 기내식을 꾸역꾸역 위 속에 밀어 넣었다. 식사를 마치고 갤리에서 나와, 객실 제일 뒷문의 창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막막한 어둠 아래에 노란빛들이 점점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창을 닫곤 가슴팍을 크게 부풀려 숨을 모은 뒤 초를 향해 훅 입김을 불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스카이 맵이 돌아가고 있는 화면을 응시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비행기의 경로와 도착지까지 남은 시간 및 거리, 비행기의 속도를 나타내는 화면이 일정한 간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으로부터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아부지 생일날에 엄마랑 둘이 쭈꾸미를 먹었잖아요? 놀랍게도 그다음 해에 저희는 아부지 생일을 또 지나쳤답니다. 2년 연속 놓친 이후로 저는 이제 1월 1일이 되면 아부지 생일부터 휴대전화 알림 설정을 해놓아요. 근데, 저는 그렇다고 해도 저희 엄마 너무하지 않나요? (엄마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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