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으로 채우는 마음의 곳간
남편의 오랜 벗들이 모이는 계모임이 있었다. 마침 모임 장소가 집 근처라 여느 때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내 손에는 동행할 두 친구 부인을 위해 정성껏 마련한 작은 선물이 들려 있었다. 누군가는 굳이 번거롭게 뭘 그런 걸 준비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안다. 대단한 외양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네는 순간의 그 몽글몽글한 행복이 얼마나 커다란 생의 에너지가 되는지를 말이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에게 베푸는 행위는 내게 유년 시절부터 이어진 오랜 습관과도 같았다. 타인의 손을 잡고 마음을 나누는 일에 유독 기쁨을 느꼈던 그 순수한 열망이, 오늘날 나를 복지와 상담이라는 숭고한 업(業)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내 작은 배려에 상대의 얼굴 위로 수줍게 피어나는 미소를 마주할 때면, 오히려 주는 이인 나의 내면이 더 깊고 투명한 충만함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닫고 입은 열라는 말을 한다. 세월의 무게만큼 삶에 인색해지는 이들을 볼 때면, 문득 나 또한 저물어가는 시간 속에서 마음의 문을 닫아걸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다잡는다. 더 많이 베풀고, 더 넓게 나누며, 무엇보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고. 진정한 어른의 품격은 움켜쥐는 손이 아니라 펼친 손바닥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지나오며 내가 배운 가장 값진 교훈은 역설적이게도 '상실'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외할머니와 시아버님을 마지막 길로 배웅하며 나는 보았다. 한 생애를 치열하게 일구었던 이들의 마지막은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채 떠나는 '공(空)'의 상태였다는 것을. 아등바등 모으고 쌓으려 애써도 결국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아끼지 않고 향유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음식을 맛보고, 고운 옷을 입으며, 사랑하는 이들과 눈을 맞추고 따스한 기억의 편린들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허무로 돌아갈 생의 유일한 전리품일 것이다.
저녁 무렵, 남편의 계모임에서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한 해 동안 정성껏 모인 회비가 넉넉해져 부인들에게도 예년보다 두툼한 정성을 나누어준다는 것이었다. 벌써 3년째 이어지는 이 다정한 전통이 올해는 유독 더 풍성하게 다가와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내가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건네는 '주는 환희'와, 예기치 않게 내게 돌아온 '받는 즐거움'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선물은 참으로 묘한 힘을 지녔다. 물건의 물리적 부피보다 그 속에 담긴 온기가 우리네 팍팍한 삶을 이토록 '흐뭇하게' 데워주니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 마음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 애쓰기보다, 기꺼이 그 문을 열어두어 누군가의 온기가 머물다 갈 수 있는 넉넉한 빈터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