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쓰여, 마음을 쓰다

영화 <변호인>과 <택시운전사>를 보고

by 우주인

"미안합니다"


천만을 돌파한 두 영화 <변호인> 그리고 <택시운전사>를 보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고, 또 가장 아프게 가슴을 꾸욱 눌렀던 말이다.


<변호인>을 보고 같이 간 사람이 창피해할 정도로 참 많이도 울었다.


어떤 장면이 그렇게 나를 울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영화 <변호인>을 이야기할 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꼽는 것은 마지막 재판 장면일 것이다. '국가란 무엇이냐?'에 대해 격정적으로 설파하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송강호의 변론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호인>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프고, 또 짠하게 다가왔던 장면은 국밥집 아주머니와의 재회 장면이었다. 고시준비 중 돈이 없어 국밥집에서 밥값을 내지 않고 도망쳤던 송강호가 몇 년 뒤 변호사가 되어 찾아와 주인아주머니께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나는 그렇게 짠할 수가 없었다. 변호사가 된 송강호가 성공한 모습으로 식구들과 함께 국밥집을 찾아와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주인 아주머니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자, 국밥집 주인 아주머니는 송강호에게 무슨 그런 소리냐며 이렇게 다시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방금 나온 국밥만큼이나 따뜻하게 송강호를 안아준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이 장면에서 나는 정말 창피 할 정도로 한참을 소리 내 울었던 기억이난다.

얼마 전 본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도 나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몇 개월 째 밀린 월세를 벌겠다는 욕심으로 다른 사람의 일까지 무리하게 가로채 내려간 광주에서 송강호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저 손쉽게 10만 원을 벌어갈 생각만 했던 송강호는 광주에서 마주하게 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잖이 당황스러워하며, 급기야 함께 내려온 기자에게 화를 내며 원망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에서 벌어지는 무자비하고, 처참한 상황에 점점 마음이 쓰이게 되된 송강호는 어느 순간 광주의 사람들 속에 어울려 자신도 모르게 광주의 택시기사들과 함께 행동하게 된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서울에 두고 온 어린 딸이 못내 마음에 쓰여 광주의 택시기사들에게 인사를 나누며 서울을 향해 다시 택시에 올라타게 된다. 그 장면에서 송강호는 영화 <변호인>에서와 같이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광주의 택시기사들에게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한다. 도대체 무엇인 미안한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송강호는 연신 미안해하며 어렵게 어렵게 택시에 올라탄다. 순간 나는 <변호인>의 국밥집 장면의 데자뷔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고, 다시 한번 나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을 쏟아낼 수 밖에 없었다.

영화 속 주인공 송강호는 뭐가 그렇게 항상 미안한 걸까?


두 영화를 보면 <변호인>의 극악무도한 경찰이나, <택시운전사>의 악마같은 사복요원들은 아무렇지 않게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고, 괴롭힌다. 그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순간도 이렇다 할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는다. 영화 내내 자신보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잔인할 정도로 무섭고, 당당하다. 그에 비하여 송강호를 비롯한 주변의 보통 사람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기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늘 미안해하고, 마음을 쓰여한다. 도대체 그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뭐가 그렇게나 미안한 걸까?


마음이... 그냥 마음이 쓰인 거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인 우리를 상징하는 송강호는 몇 년 전 자신의 옳지 못한 행동이 계속 마음에 쓰였던 것이다. 그는 밥값을 내지 않고 도망친 자신의 그 아주 작은 잘못과 미안함을 쉽사리 잊거나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그 미안한마음을 수년간 마음에 품고 살아간 것이다. 그래서 <변호인>의 송강호는 몇 년이 지나도 마음에 새겨진 그 작은 흉터를 끝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다시 국밥집을 찾아가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이다. <택시운전사>의 송강호 또한 광주에서 갑작스레 겪게되는 상황에 비록 전에 한 번도 만나적 없는 사람들의 일이라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떠나는 자신의 처지에 마음이 쓰여 미안해하며 사과를 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마음이 어느새 너무도 각박해지고, 물질만능주의에 젖어버린 요즘 사람들에게는 그마저도 감동으로 다가온 것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비관적 일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러한 보통 사람들을 현실이 아닌 영화 속에서만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서글픈 현실이 더 사람들을 아니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그 잘난 머리만 쓰려한다


비관적인 이야기를 좀 더 하면 뉴스를 통해 본 소위 말해 잘났거나 혹은 잘 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보다 머리를 쓰는 것에 익숙하고, 통달한 듯 보인다. 마음이 없이 오직 머리만 쓰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나 남들에게나 마음에 긇힌 상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항상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티끌만 한 손해에 더 신경이 쓰이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기 위해 끊임없는 잔머리를 쓰고, 또 그렇게해서 얻는 것들을 자기들끼리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기준은 자신의 이익의 여부이며, 더 큰 이익을 위해서라면 대의라는 명분으로 무참히 사람들의 마음을 아무렇게 않게 짓밟아 버린다. 어릴 때는 그저 그러한 일들이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과장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세상을 알게되면서 현실에서도 그러한 일들이 아니 그 보다 더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임을 알게되었고, 매일같이 뉴스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있다.


머리보다 마음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고싶다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지금 영화 속 송강호만큼은 아니더라도 머리보다는 마음을 쓸 줄 아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이 되고싶다. 나이가 들수록 쓸데없는 생각도 많아지고, 걱정도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나도 모르게 마음에 쓰이는 것보다 머리를 쓰는 일이 더 익숙해진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인 사람이 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최면을 걸어보려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살아가면서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마음이 쓰이는 일은 하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조금은 내가 손해를 보는 일이라도 나로 인하여 누군가 행복해지고, 또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지금 갖고 있는 마음 씀씀이를 조금만 더 키워서라도 보다 과감하고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영화 속 송강호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날 위해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까워하지 않고 마음껏 마음을 쓰며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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