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시절 악몽 같은 첫 회식 그 첫 번째 이야기
오늘은 내가 왜 이렇게 회사 이야기만 하면 병적으로 빡치는 여러가지 이유들 중 하나를 끄집어내어 이야기하려한다. 믿거나 말거나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나도 한 때는 나름 서울 소재의 대학에서 이런저런 몇 차례의 크고 작은 공모전 수상에 해외 어학연수까지 다녀 온 꿀리지 않을 정도의 스펙을 쌓은 꿈많고, 열정 가득한 청년이었다. 그 때는 정말 하고싶은 일도 많았고, 취직만 하면 드라마 속의 주인공 처럼 한강이 내다보이는 오피스텔에서 퇴근 후 야경을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들고 회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일을 잠시 마무리하기 위해, 돌비 서라운드로 틀어놓은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며 노트북을 켜는 비즈니스맨이 되는 줄 알았다.
현실은 어떠했을까? 비즈니스맨은 무슨 개뿔!
비좁은 자취방에 화장실이 너무 좁아 샤워할 때 마다 변기에 닿지 않기 위해 온신경을 곤두서며 몸을 구부려 씻어야했고, 신발장 옆에는 언제나 분리수거를 하지 못해 쌓여있는 패트병만 수북히 쌓여있었다. 매일 주말은 라면으로 삼시세끼를 채웠으며, 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달걀삶는 기계를 보고, 충동구매여 한 동안 매일 아침을 삶은달걀로 대신하며 몇 달을 보내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그정도 돈이 없거나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던듯한데 당시 너무 정신이 피폐해져서였는지 그냥 만사가 짜증나고, 귀찮았던 시절이었다.
나의 신입사원 시절은 어떠했냐고?
누가봐도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인 나는 신입시절부터 남다른 열정과 근면함으로 선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나름의 리즈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참 멍청했던건지 순진했던건지 선배들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가그리 좋아 일도 잘 할 줄 모르면서 밤새 혼자남아 이것저것 찾아가며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 아마도 당시 함께 입사한 동기들 중 늘 제일 일찍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했던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무슨 전설의 사원이 되어가는듯했다. 그 때는 주말 출근까지 하면서도 뭐가그리 좋았었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지금 그 동기들은 모두들 더 좋은 곳을 찾아 이직을 했거나 나보다 먼자 과장을 달고 다들 잘나가고있다.
어쨌든 그렇게 입사 후 한 두 달 정도 지나자 어느 순간부터 선배들은 은근 슬쩍 자신의 일까지 나에게 자연스레 넘기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밀려오는 업무에 신입이었던 나는 점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딱히 이 상황을 모면 할 방법도 모르겠고,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가슴 속 깊이 불만만 점점 키우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던듯하다.
얄밉게도 동기들은 사회초년생만이 누릴 수 있다는 다른 회사 신입사원들과의 직장인 미팅을 매일 밤 하러다녔고, 여친이 있던 친구들은 퇴근 시간만되면 매일 저녁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희희낙낙 회사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하루하루 일에 쩌들어가는 나와는 정말 너무도 다른 생활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3개월 정도 되었을까? 인사팀장이 신입들을 모아놓고, 갑작스레 격려차원의 회식을 한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아놔~그냥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갑자기 회식은 뭔 회식이야?'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회사에 들어온 후 이게 첫 회식인듯하다. 당시 팀장은 결혼준비로 나를 비롯하여 팀원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매일 매일 여자친구와 전화하며 싸우는게 하루 일과였다. 어쨌든 나야 그냥 회식이고 뭐고, 오직 빨리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간만에 이래저래 꿀꿀하고, 우울한 기분도 달래고, 맛난 고기와 함께 공짜 술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군침이 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업무가 끝나고 퇴근시간이 되자 동기들과 함께 모여 아파트 앞 유치원에서 따뜻한 오후 산책가는 병아리들처럼 졸졸졸 인사팀 김대리를 따라 회사 근처 회식 장소로 향하였다.
1차는 역시나 예상대로 회사 근처 자주 가는 고깃집이었다. 자취방에서 라면에 햇반만 먹다가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고기라 그런지 정말 냄새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인사팀에서 미리 예약해둔 자리에 앉자마자 내 영혼은 이미 상위에 놓인 새빨간 고기들과 함께하고 있었고, 당장에라도 불판위에 그 어여쁜 삼겹살들을 구워서 우걱우걱 한 입에 쓸어담고 싶었지만, 인사팀 누군가가 인사팀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란 소리에 이내 혼미해졌던 정신을 차리고 그저 시원한 물 한 잔 따라 벌컥벌컥 원샷만 거듭하였다. 얼마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동기들끼리 한참 동안 서로 얼굴만 보고있기 뻘쭘하여 요새 서로 뭐하고 지내는지? 하는 일은 재미있는지? 이것저것 그리 궁금하지 않은 근황들을 물어보며 정말 드럽게도 안오는 인사팀장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나는 매일 야근에 성격도 그래 활발한 편이 아니어서 동기들과도 썩 친한편이 아니었다.
어쨌든 간만에 수다를 너무 떨었는지 더욱 더 배는 고파지고, 참다못한 나는 결국 혼자 젓가락을 들고 미리 나온 야채들을 몇 번을 혼자 리필을 해가며 계속해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샐러드와 김치로 어느새 내 배가 꽉 채워질즈음 저 멀리 그 특유의 능글능글힌 웃음을 띤채로 인사팀장이 걸어들어왔다.
늦어서 미안, 먼저 먹지 그랬오?
'짜증 나게 저 말투는 뭐지?', ' 언제 봤다고 반말이지?' 참고로 우리 회사 인사팀 사람들은 유독 신입한테는 나이와 상관없이 어린 동생 취급을 하려한다. 반말은 기본이고, 툭하면 쓸데없이 불러서 이런저런 농담따먹기를 하려한다. 잠시 후 인사팀장이 방으로 들어오자 거기 모인 사람모두는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일어섰다. 난 왜 저 사람한테 모두들 일어서서까지 인사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갔지만 뭐 남들 다하니까 괜히 튀어보일까죄 같이 일어서 인사를하려했다. 문제는 아까부터 혼자서 야채를 넘 많이 먹어서인지 쉽게 몸이 일어나 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어나보려 아둥바둥거는 사이 인사는 이미 끝나버렸고, 인사팀장과 눈치 빠른 몇몇 인사팀 직원이 나를 무섭게 째려보는 것을 눈치 없는 나도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망했다! 이런 젠장'
그때부터 나의 첫 회식은 아니 회사생활은 꼬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인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일제히 젓가락을 들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보기와 다르게 외동으로 곱게 자란 나는 데이트할 때도 여자친구를 위해 고기 몇 번 구워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걸 어찌해야 하나 살짝 고민하며 쭈빗쭈빗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쁘고, 성격 좋은 여자 동기 하나가 집게를 들어 한 점 씩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나는 살짝 미안했지만 이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좀 전에 지난 주 만난 소개팅녀에게 온 카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죄송해요! 그냥 저랑 안맞는 것 같아요
짜증이 밀려오고, 술이 땡겼다. 이런 내 심정을 모르는 김대리의 공격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원래부터 신입 여사원에게만 한없이 친절한 재수 없는 김대리 녀석이 나를 보며 한 마디를 던졌다.
숙녀가 고기 굽는데 뭐 하고 있어?
이렇게 매너가 없어서야~여자 친구 없지?
딱 봐도 그래 보여! 흐흐흐
예상밖에 갑자기 훅들어 온 공격이었다.
'아니 고기 굽는데 여자 친구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생긴 건 원숭이 같은 게 매너는 무슨 매너 타령이야'
김대리는 이내 나를 보며 한 마디 더한다.
뭐해? 고기 안 굽고?
내가 구우면 맛이 없어서ㅋㅋㅋ
김대리의 확실한 추가 공격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다행히 난이도가 별로 어렵지 않은 삼겹살이었다. 전 여자 친구한테 삼겹살 굽는 법을 한 전 배운 적이 있어 조심스레 그대로 구워볼 참이었다. 당시 여자 친구 이야기로는 한쪽으로 굽다가 기름이 송골송골 올라오면 그때 뒤집으라 했다. 너무 자주 뒤집으면 맛이 없다나 뭐라나. 어찌 되었든 나는 그대로 한참을 고기만 굽기 시작했다. 내 눈은 온통 삼겹살 표면의 기포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고기 안 뒤집고 뭐해?
타잖아 지금! 채식주의자야? 농담이야! 하하하
김대리가 또 갑작스런 공격을 시작했다. 진짜 들고 있는 집게로 삼겹살을 왕창 집어 저 주둥이에 상추 한주먹과 함께 꽉꽉 쑤셔 넣어 입을 막아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김대리의 공격과 고기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 주위 동기들은 인사팀장 주위에 앉아서 뭔 얘기를 하든 "하하하하"웃으면서 뭔얘기를 해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나도 저 자리에 끼어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다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회식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역시나 김대리가 일어나 또 설치기 시작했다.
분위기도 살릴 겸
다 같이 폭탄주 한 잔 씩 하시죠?
여전히 삼겹살과 씨름 중이던 나는 저 인간이 뭐라고 짓거리는지 아니 시부리는지 아무 관심이 없었다. 어서 삼겹살이나 잘 구워 이 귀찮은 집게를 손에서 빨리 내려놓고만 싶었다. 갑자기 정적이 흐르고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폭탄주 탈 줄 알지?
맛있게 잘 한 번 말아줘용~
토할 것 같은 말투로 김대리가 나를 딱 집어 보며 이야기했다.
'응? 나보고 하는 소리인가?'
고개를 들어 분위기를 보니 나에게 하는 소리였다. 어느새 내 앞에 10여 개의 잔이 일렬로 헤쳐 모여서 한시라도 빨리 술을 채워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젠장, 한 번도 타본 적 없는데 저 인간 오늘 왜 저런데 정말'
일단 소주병을 들고 컵에 있는 상표까지 따르면 된다는 말은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 일단 그대로 따르기 시작했다. 의외로 같은 양을 여러 컵에 똑같이 따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아무 말 않고 조용히 나를 도와주는 새하얀 손이 쓱 나타났다. 누군지 궁금해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인사팀 정대리님이었다. 아까부터 어리버리 당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서였는지, 설마 나한테 관심이 있어서 그런건지 등 여러 생각이 스쳐갔지만 일단 폭탄주부터 만들고 봐야 했기에 망상은 잠시 접어두었다. 잠시 후 폭탄주가 완성되자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레 다 같이 한 잔 씩 손에 들고 인사팀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오직 이 순간만을 가다렸다는듯이 인사팀장이 일어나 한 마디 시작하였다.
여러분들은 행운아들이에요!
진짜 좋은 회사 온 거야!
다른 회사 간 친구들한테 물어봐!
지금 저 말을 들었더라면 면전에서 바로 쌍욕이 나갔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인사팀장의 한 마디가 끝나고, 다시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별로 먹는 사람도 없었는데 오기인지 반항인지 나는 계속해서 삼겹살만 굽기 시작했다. 김대리는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신입 동기 여자애에게 갖은 껄덕은 다 부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다시 인사팀 정대리 님을 바라보았다.
'이쁘다. 삼겹살에 마늘을 담아 깻잎과 함께 먹는 모습 까디 저리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인가?'
'나도 고기 먹을 때 상추 대신 깻잎을 먹는다. 인연인가?'
어쨌든 정대리 님이 있어서 나는 또 기분 좋게 삼겹살을 구웠다.
그럼 또 다음 시간에...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