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와 다른 디자이너, 디자이너와 다른 마케터
마케터가 사업 PM 이상으로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내부 디자인 팀 또는 대행사의 디자이너들이다. 같은 게임을 담당하며 오랜 시간을 함께 준비하다 보면 눈빛만 봐도 서로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는 달콤한 연인같은 사이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 눈도 마주치기 싫을 정도로 천하의 원수가 되는 사이가 바로 마케터와 디자이너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하면 마케터들은 디자이너들과 환상의 팀워크를 이루고 보다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
신입 시절 넘치는 아이디어와 의욕으로 디자이너들과 정말 많이도 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디자이너와의 회의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만든 기획안을 어떻게든 기필코 사수해야겠다는 각오로 중무장하며 마치 전쟁이라도 나가는 각오로 임했던 듯하다. 가능한 한 원하는 기획안대로 디자인을 해주기를 몇 번이고 요청하고, 디자이너가 만들어준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면 계속하여 찾아가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당시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시절이었기에 지금 돌아보면 당시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분들께 너무도 죄송스럽고, 이불킥을 날리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 그렇게 미련하게 일을 하다 보니 결국 필요 없는 기싸움을 너무도 많이 하며 아까운 시간을 쓸데없이 흘려보내기 십상이었다. 무엇보다 최악은 그렇게 고생고생 싸워가며 일을 해도 대부분 내가 원하는 기획과 퀄리티 높은 제작물을 받아 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몇 년을 일하면서 깨달은 것은 다름 아닌 디자이너와의 대화의 중요성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일을 쉽게 풀어갈 수 있는데, 그때는 그 단순한 진리를 왜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뻔한 소리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마케터와 디자이너는 근본적으로 서로가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과 목적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케터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퀄리티의 제작물을 만들고 싶어 하고,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업물을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부끄럽지 않은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고 싶어 한다.이렇게 서로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려면 마케터는 자신의 기획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확신을 바탕으로 디자이너와 가능한 한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이견을 좁히고, 공감을 얻어가는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따라서 마케터와 디자이너는 함께 일을 할 때 서로 가능한 한 많은 대화를 통해 어긋한 부분들을 세심하게 확인하고, 조율해 나가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서로가 원하는 결과물을 원하는 시간 내에 만들어 낼 수 있다.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울지 몰라도 일단 신뢰가 쌓이고, 팀워크가 한번 만들어지면 눈빛만 봐도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바빠 죽겠는데 디자이너와 매번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이야기하는 마케터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어도 이러한 작업들을 소홀히 넘길 경우 발생하는 전면 재수정 또는 재작업보다는 분명 나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들이 모여서 점차적으로 마케터와 디자이너 간의 팀워크가 만들어진다. 여전히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라 할지모르겠지만, 서로의 영역에 대한 충분한 관심과 설명 그리고 존중을 통한 이해만이 이 지난한 싸움을 끝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는 것을 수년 간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에 재차 강조한다.
마케터와 디자이너는 서로 무슨 생각들을 할까? 이 둘의 생각의 차이를 읽기위해서 그들이 현장에서 함께 크리에이티브를 제작할 때 가장 자주 발생하는 주요 이슈들을 한번 정리해보았다.
마케터와 디자이너 사이에서는 이처럼 늘 다양한 이슈들이 발생하고 또 충돌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마케터와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생각도 다르고, 마케팅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오히려 보다 나은 제작물을 위한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심해질 경우 서로의 의욕을 저하시켜 최악의 제작물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마케터와 디자이너는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서로의 생각들이 충분한 대화를 통해 잘 정리될 때 비로소 더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마케터가 명확히 인지하고, 함께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케터와 디자이너는 도대체 어떠한 대화들을 나눌까? 그들이 대화 중 가장 많이 주고받는 질문과답을 잠시 들여다봄으로서 실제 현장에서 서로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고자 한다.
Q. 디자이너. 설마 디자인 소스가 이게 다인가요? 이걸로는 여러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기엔 부족해요
A. 마케터. 모바일 게임의 경우 대용량, 빅사이즈 이미지가 없어서요. 그게 꼭 필요한 이미지만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부디 이해 좀...
Q. 디자이너. 캐릭터 이외 배경 소스가 하나도 없는데요?이러면 일일이 다 만들어야 해서 일정도 늦어지고, 손도 많이가요.
A. 마케터. 이 게임의 경우 중국 게임이라 소스가별로 없어요. 요청해도 너무 느리고 ㅠㅠ 심지어 게임 배경조차 공유받기가 쉽지 않네요.
Q. 디자이너. 각 배너 및 페이지에서 가장 중요하게노출되어야 할 카피를 알려주세요.
A. 마케터. 이 페이지의 목적은 결국 사전 모집이니까실질적으로 유저의 반응 및 액션을 유도하는 카피(?)를 강조해주세요!
Q. 디자이너. 경품 이미지는 도대체 언제 주실 거예요?
A. 마케터. 그게 경품을 저희도 고민 중이라 이미지찾는 대로 빨리 드릴게요. ㅠㅠ
Q. 디자이너. SB(Story Board)를 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이게 버튼인 거죠?
A. 마케터. 버튼 맞구요. 이건 딱 봐도 대표님이 좋아하지 않는 컨셉이라 수정이 필요할 듯 해요.
Q. 디자이너. 수정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A. 마케터. 그게 제가 요청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들 세세하고, 자잘한 수정 요청이 시도 때도 없이 많아서…
Q. 디자이너. 그래서 생각하는 게 정확히 뭐예요?
A. 마케터. 그게 참... 말로 하려니 명확하지가 않아서... 제작 요청 시 어떻게 드려야이해가 편하실까요?
Q. 디자이너. 꼭 제작물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야 해요?
A. 마케터. 효율을 위해서는 매체별로 상황별로 다양한 크리에이티브가필요해서요.
Q. 디자이너. 일정이 너무 빡빡한 것 같은데 어떻게조정 안 될까요?
A. 마케터. 아…사업에이야기해서 최대한 늦춰보도록 애써볼게요.
물론 나 역시 마케터이기에 이 대화는 다소 마케터 위주의 생각이 많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마케터와 디자이너 사이에는 참으로 많은 상황들이 기다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해 마케터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솔직함과 진실함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본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기가 막힌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