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브랜드 스토리
SEHWA, 바닷마을 이야기

더 나은 삶을 위한 '잘 살기'

by 단어의집

사람들이 세화에 사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원하는 것은 대부분 같다. 잘 살아가는 것. 마을에서 경제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들이 바라는 '더 나은 삶'은 단순하다. 경쟁에서 쟁취하거나 자본이 자본을 낳는 부자되기가 아니라 삶의 터전인 마을에서 즐겁게 일하고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여가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터득한 것이 삶에서 날마다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래 농사지으려면 토양이 건강해야 하므로 농부는 친환경에 관심을 두고, 서핑패들보드팀은 일터가 바다이므로 부지런히 바다를 청소하고, 할머니의 방앗간 옆에서 일하는 손녀는 같은 상품을 찍어내는 방식이 아닌 옛 방법의 소중함(진정한 레트로의 힘)을 깨닫는다. 그들은 자기 일이 지속가능하려면 '나와 내 동네'가 건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잘 사는 일'이 환경과 이웃과 동네, 나아가 이곳을 찾는 여행자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화'라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일하는지 이야기 들어보자. witer 단어


인터뷰1 마을에 진심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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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마을PD #로컬크리에이터 #로컬여행 #세화일꾼

양군모는 2018년 제주관광공사와 함께한 삼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

해 세화와 인연을 맺었다. 현재는 세화마을협동조합에서 일한다. 로컬여행

기획자, 카페지기, 마을 어르신의 말벗 등 마을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한

다. 세화에서 재미있는 일을 기획하는 데 빠질 리 없는, 마을에 진심인 사람

이다.


마을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인지 궁금합니다.


세화마을협동조합 설립부터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고요. 마을리사무소 2층에 있 는 카페 477+에서 마을 일을 기획해요. 주민과 함께 로컬여행 루트도 짜고 카페에 서 일하기도 하고요. 마을 홍보부터 협력업체 발굴까지 다양한 일을 하는데요. 마을 공동체의 선순환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찾아내고 만들 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저는 마을에서 재밌는 걸 해보고 싶거든요. 그래서 관 광객이 많이 오고 그로 인해서 주민 소득이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세화로 이사까지 왔는데, 본인에게 세화는 어떤 마을이에요?


제주에 처음 이주했을 땐 남원읍 위미리에 정착했는데요. 예쁜 마을이지만, 집이 감귤밭에 파묻혀 있어서 거기선 외롭더라고요. 그런데 세화에는 소소하게 예쁜 곳 이 많고 곳곳에 마을 주민이 살아서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시골이라 한 적한데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그런 곳이에요, 또 살면서 누려야 할 인프라가 잘 갖 춰져 있어서 몸과 마음이 다 살기 좋은 곳이죠.


여름문구사 사장님이 세화에 뚜벅이 여행자가 많다고 하던데, 그 이유 때문일까요?


101번 급행 버스가 세화에 정차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고요. 해변이 예뻐서 찾아오 기도 하는데요. 뚜벅이 여행자의 특징이 있어요. 딱 보면 ‘이분은 세화를 마스터하 려고 온 뚜벅이 여행자’라는 걸 파악할 수 있는데요. 일단 한 손에 캐리어가 있고 다른 한 손에 카카오패밀리 봉투와 여름문구사 봉투 등을 들고 있어요. 세화에 들 르면 무조건 가야 하는 로컬가게를 하나씩 거쳐온 흔적이죠. 카페 477+는 당근주 스를 드시러 오는 마지막 코스인데요. 거기서 봉투를 한곳에 모으는 작업을 하세 요. 그러면 마을에 대한 자연, 문화, 역사 자료가 담긴 마을 책자를 하나씩 나눠주 면서 한번 찾아가 보세요, 라고 권해요.


카페 477+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2015년에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에 선정돼서 최근 세화리사무소를 리모델링했는 데요. 그러면서 카페와 여행사나 숙박 사업을 하려고 보니 마을이 자체적으로 운영 하기 어려운 거죠. 마을을 함께 만들 적합한 공동체 형태가 협동조합이라고 판단하 고 조합원을 모집했어요. 마을에는 협동조합 조직체가 무엇인지, 법인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분이 계셨어요. 게다가 조합원이 되려면 돈을 출자해야 한다는데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하는 질문이 솟구쳤죠. 그때 이장님이 집마다 다니면서 협 동조합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만들려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지를 일일이 설 명하셨어요. 그때 마음이 움직여서 출자한 분이 최초 477명이고 지금은 500명 가 까이 늘었습니다. 카페 477 뒤에 붙은 플러스는 추가로 들어오는 조합원과 세화에 쉬러 오는 여행자를 뜻합니다. 세화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질그랭이 주민여행사 이야기도 궁금해요. 2018년부터 주민이 주체가 되는 로컬여행을 기획했어요. 주민이 해설사가 되고 여행 기획자가 될 수 있게 로컬여행 전문가를 모셔와서 강의도 열고 우리끼리 밤새 로컬여행이란 무엇인가를 논하기도 했어요. 2년 동안의 교육 과정 후에 지금은 7명 의 로컬여행 기획자가 남았고요. 그분들과 함께 해녀 투어, 밭담 투어, 오름 투어 등 지역 주민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서 로컬여행 시리즈를 만들고 있어요. 주민이 운영하는 여행사와 일반 여행사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주민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사랑하는 마을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서 만든 여행사가 주민여행사예요. 구성원이 마을 주인이니까 식당이나 숙박 등에 서 수수료를 받지 않아요. 세화마을협동조합 여행사 사업 중 하나가 숙박 예약인데 요. 이장님은 여행사로 돈을 벌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고, 모든 수익이 주민에게 돌 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세요. 질그랭이 주민여행사로 인해서 주민이 온 전한 혜택을 받다 보면 그 혜택이 다시 관광객에게 하나 더 주려는 마음으로 돌아 갈 것이고, 그 관광객은 주변에 세화 마을에서의 따뜻한 경험을 알려줄 테니까요. 서로에게 베푸는 마음이 전달되고 전달되어서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주민여행사 의 특징이고, 일반 여행사와의 차별점입니다. 앞으로 세화가 어떤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을 사업을 하다 보니까 다른 마을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는데요. 조용히 얘기를 들어보면 마을 내 분란이 있는 곳이 더러 있더라고요. 그리고 마을 사업 추진 조직 체 간에 갈라서는 예도 있고요. 세화는 지금 이장님을 중심으로 마을이 똘똘 뭉쳐 있어요. 외지에서 오셔서 장사하는 대표님들에게도 마을회에 주기적으로 오시라고 권유해서 마을 사업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설명해드리고 있고요. 마을 사업 추진하 는 분들이 그분들 가게 다니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하시고요. 원주민과 정착주민 그 리고 이곳에 들어와서 장사하시는 분들 모두가 지금처럼 화목하게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먼 미래에 세화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먼 미래니까 드리는 말씀이에요. 제주에는 전통 집을 개조해서 자기만의 공간으로 꾸리는 독특한 분이 많은데요. 저도 세화에 그런 곳을 마련해서 예술가가 머물고 창작하게끔 장을 만들고 싶어요. 오래된 공간인데 3년 동안 누구도 들어가거나 손 대는 걸 본 적이 없는데요. 그런 공간을 고쳐서 사랑방을 만들어보고 싶고요. 또 앞 으로 수익이 늘면 세화 고등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싶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가정 형편 때문에 장학금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건강한 사회

세화에는 아침마다 같은 길로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이 있고 같은 시 간 가게 문을 여는 사람이 있다. 한갓진 시골 마을에서 그들은 회사에 다니거나 엄격한 규율이 정해진 시스템에 놓여있지 않지만, 자신만의 규칙을 지킨다. 낮에 일하고 느지막이 쉴 때는 세화 마을에 있는 서점 에서 주민이 모여 읽은 책을 논한다. 삶의 중요한 문제를 두고 서로 다 른 시선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 당면한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없 다고 해서 생각하는 일을 멈추면 안 된다는 듯, 그들은 진지하게 건강 한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마을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뛰어놀고 추억을 만든다. 이들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훗날 물으면 어른이 된 아이는 바닷마을 세화라고 하겠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가게 옆에서 자신만의 가게를 열고, 어른이 되어 제주를 떠났던 아이는 아이에게 고향을 만 들어주려고 엄마가 되어 돌아온다.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된 그는 고향 이라 생각한 이곳에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한다. 세화 사람이 만들고자 하는 건강한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 들어보자.


인터뷰

카카오패밀리, 제주의 바람이 이국의 카카오나무에 분다


#로컬경제의 선순환 #공정무역 #바람공장 카카오패밀리는 제주를 고향 삼아 살아가는 김정아·이인욱 부부와 그들의 다섯 아이의 ‘삶 이야기’가 담긴 브랜드다. 한때 과테말라에 살았던 그들은 원주민이 생산한 카카오로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주곤 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남미에서 발효·건조된 카카오생두를 손수 골라 현지 농민에게 직수입한다. 직접 제작한 전용 맷돌로 생두를 48시간 그라인딩하여 굳히면 카카오 100퍼센트의 초콜릿 커버춰가 탄생한다. 이 까다로운 공정 과정은 카카오패밀리가 건강한 먹거리 제공에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보여주는 예 이다. 하지만 그들이 카카오 제품을 생산하는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네 이밍에서 ‘패밀리’가 그들 가족을 상징하지만, 그 개념은 더욱 포괄적이다. 그들에게 농민도, 생산자도, 소비자도, 모두가 한 가족이다. 초콜릿 산업에 가려진 카카오 농부의 삶을 알리고, 건강한 먹거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 하여 농부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바다 건너 가난한 농부에게 도움이 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카카오패밀리가 원하는 바다. 제주에서 시작된 그 바람 이 머나먼 나라의 카카오나무와 농부에게 전해지기 바라며, 퍼즐처럼 흩어 진 가족의 여정을 김정아 대표에게 들어보자.


카카오패밀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과테말라에 시동생네와 시부모님이 사업하면서 같이 살았어요. 한국에서 각자 일 을 하던 우리 부부도 함께할 사업 아이템을 준비해 그곳으로 이사했고요. 그런데 3 개월 만에 사업이 망했어요. 이유가 매니저로 둔 현지인이 배신해서예요. 남편이 사장인 줄 알았는데, 서류상 실질적인 사장이 그분이었던 거죠. 그는 돈을 주면 서 류에서 이름을 빼겠다고 했어요. 달라는 돈은 다 줘야 한다고 시아버님이 말씀하셨 죠. 과테말라에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돈 문제가 생기면 생명까지 위험해요. 우리 는 그가 원하는 만큼 돈을 주고 사업을 이어가지 못했어요.


그때 일이 카카오패밀리와 연관이 있는 건가요?


그렇죠. 매니저였던 그분은 법무사 직원이면서 시동생 아이를 5년이나 가르쳤는데 요. 과테말라에는 직업이 서너 개인 경우가 많고, 그가 굉장히 똑똑하고 성실해서 우리가 무척 신뢰했어요. 도대체 어떤 나라길래 오랜 시간 신뢰를 맺은 관계가 돈 때문에 깨질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그 나라 사람들은 인건비가 낮아서 돈을 조금 밖에 못 버는데 그 반 이상을 백화점에서 디저트를 사 먹는 데 써요. 가난해도 먹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고요. 행복도가 엄청 높아요. 좋은 자원이 많은데 상위 1퍼센 트만 부유하고 나머지는 정말 가난하고요. 우리에게 힘든 상황을 안겨준 그 나라와 그곳 사람이 점점 궁금해졌죠.


카카오처럼 좋은 자원이 많은데 가난한 이유가 궁금했군요?


결국, 궁금증이 풀렸 나요? 시간이 필요했는데요. 그 후 NGO 단체에서 파송 받아서 멕시코에 자원봉사를 떠 났어요. 남편은 공정무역 커피를 담당하고, 저는 현지 아이들 150명에게 음악을 가르쳤어요. 원주민을 밀접하게 만나게 되었죠. 우리가 만난 현지 친구들은 다들 너무 선해요. 과테말라에서 배신한 현지인 친구만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지만, 원래 이곳 현지인에게 전해져온 성품은 굉장히 온화하고 좋아요. 그런데 사회경제 시스템 때문에 늘 가난이 대물림되는 게 아쉽더라고요. 우리가 뭔가 도 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어요. 그곳에서 남편은 맡은 일 외에 중국어와 컴퓨터를, 저는 계속 음악을 가르쳤어요. 그러다가 출산 때문에 한국에 오게 됐어요.


그때 한국으로 아예 오신 거예요?


제주도에 1년 살다가 과테말라에 다시 가려고 이삿짐도 안 가져왔어요. 그런 상황 98 로컬브랜드 2 에서 다섯째가 태어났고요. 아이들에게 과테말라에서 가져온 카카오로 간식을 만 들어주긴 했지만 바로 카카오패밀리를 세운 건 아니에요. 카카오패밀리 전에 ‘바 람공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남편이 법인 대표인 바람공장은 의식주 에너 지에 대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하는 회사예요. 우리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가 치관을 사회에 전달하고 싶어서 세웠고요. 의식주에서 ‘식’에 해당하는 커피, 설탕, 카카오에 대해 알려주면서 공정무역 교육을 했어요. 그때 사람들이 카카오에 반응 을 보였죠.


과테말라에서의 삶이 바람공장에 영향을 줬어요?


남편은 부모님 뜻에 따라 공대에 갔고 회사 취업해서 계획대로 삶을 꾸려왔어요. 그런데 과테말라에서 사업이 망해서 충격을 받았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가 함께 멕시코에 갔는데요. 막연히 현지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꿈꾸면 서 갔어요. 그런데 일주일 지나서 남편이 그래요.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것 같아.” 이유를 물었더니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기가 안 들어와서 할 수 있 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같이 갔던 분이 한국에서 트럭을 타고 야채 장사하던 분인데, 현지인 집에 들어서자마자 “환풍기가 없으니 연기가 집안에 차 지” 그러면서 환풍기를 설치하고, 우물을 파고, 화장실이 불편하니까 정화조를 설 치한 거예요. 생활에 필요한 것을 뚝딱뚝딱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 사람이 살아갈 때 필요한 의식주에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죠. 우리는 돈 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삶을 살았던 거예요. 사람이 자립하는 교육보다 사회 시스템 에 적합해지는 교육을 받았던 거죠. 남편이 내게 그랬죠. “정아야, 우리가 이곳을 떠나서 다시 한국에 가면 그때는 의식주에서 자립할 수 있는 삶을 준비하자.” 바람 공장은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바람공장과 카카오패밀리는 어떤 연관이 있나요?


바람공장은 가치를 전달하는 가치 중심적인 회사로, 예비 사회적 기업이었어요. 그 런데 바람공장을 통해서 돈을 벌려고 하니 가치와 비즈니스모델이 상충하는 거예 요. 마음을 움직이는 일과 돈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았죠. 바람공장을 마음껏 뒷 받침할 재원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꾸린 기업이 카카오패밀리고요.


카카오를 가지고 사업화하는 것을 바로 결정 내리진 않았을 텐데요?


그 사이에 초콜릿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경제교육을 시키려고 벨롱장에서 팔았는 99 데, 반응이 좋았어요. 계속 완판하던 중, 두 시간 만에 180만 원 매출을 내고 바람 공장을 뒷받침할 사업으로 카카오패밀리를 꾸리기로 했어요. 카카오패밀리는 수익 창출에 앞서 또다른 목적을 가진 기업이군요? 우리는 카카오라는 콘텐츠를 통해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카카오 패밀리를 설립했어요. 고객에게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한 기업이죠. 브랜드 마다 카카오를 만지는 손에 대한 이야기, 즉 농부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해요.


그렇게 만들어진 카카오패밀리의 브랜드는 어떤 것이 있어요?


예전엔 모든 제품에 카카오패밀리 로고를 표시하다가 브랜드를 세분화했어요. 첫 번째 브랜드가 ‘로이 인 더 정글’로, 로이는 저희 남편이에요. 이국에서 그는 현지 인에게 외국인이죠. 그런데 현지인의 문화를 그대로 흡수하고 가족처럼 지냈어요. 현지인은 화장실이 불편하고 전기가 안 들어오는 요만한 방에서 돼지, 소, 닭이랑 열 식구가 같이 살아요. 가난해서 하루 한두끼밖에 못 먹고요. 남편은 식사부터 잠 까지 그들과 모두 함께했어요. 그간 마을에 봉사하러 왔던 외국인은 자기 먹을 것 을 싸갔고 현지인과 별개로 생활하고 잠도 센터에서 잤는데, 남편은 그들과 생활 하면서 봉사했어요. ‘로이 인 더 정글’ 제품에는 재규어가 로이의 모자를 쓰고 있는 데, 이 재규어는 과테말라를 상징하는 동물이에요. 로이가 정글을 다니면서 좋은 원재료를 찾는데요. 여기에 담긴 이야기는 농부의 손에서 만들어진 원재료에 관한 거예요. 그래서 원재료에 가까운 먹거리가 로이 인 더 정글이란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카카오 껍질밖에 안 들어가는 카카오티 같은 경우 원재료로 분류합니다.


다음 브랜드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세계 티 시장 고객이 여성인데요. 우리도 여성을 겨냥한 브랜드를 고민했어요. 그 런데 우리가 만드는 먹거리는 맛이 부드럽더라도 100퍼센트 카카오가 들어가기 때문에 그 정체성이 굉장히 거칠어요. 현지의 투박함과 거침 그리고 건강함을 그대 로 표현한 것이 ‘로이 인 더 정글’이고요. 로이가 좋은 재료를 가져오면 저는 마법 사가 되어서 먹거리를 뚝딱뚝딱 가공해요. 그래서 ‘카밀라의 레시피’가 만들어졌 요. 여기에 머리띠를 낀 여자가 카카오 열매로 마법을 부리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카밀라의 시크릿 레시피로 만든 가공된 상품이 카밀라의 레시피 브랜드에 속해요. 세 번째 브랜드는 ‘카밀라의 카라멜’이에요. ‘마법사의 아이’이자 ‘독수리 오남매’인 우리 아이를 향한 마음이 담긴 상품이에요. 아빠(로이)가 가져다준 재료를 엄마(카밀라) 는 뚝딱뚝딱 마법을 부려서 맛있는 먹거리로 만들어요. 아이들은 밤마다 빗자루를 타 고 날아다니는 꿈을 꿔요. 꿈에 대해 써놓은 아이들의 글에는 ‘나도 마법사가 되고 싶어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어릴 적 모두가 우주와 지구를 지키는 그런 꿈 을 가지지만 현실을 직면하고 커가면서 그 꿈이 점점 작아져요. 카밀라의 카라멜에 는 ‘어릴 적 품었던 꿈을 통해 우리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요’라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카밀라의 카라멜까지 합쳐진 카카오패밀리는 바로 대표님의 가족이네요?

맞아요. 한 가족이지만 서로 다 달라요. 브랜드 디자인과 담긴 메시지가 다르듯이. 왜 모든 가족이 비슷해 보여도 성격이 다 제각각이잖아요. 튼튼한 반석(지구) 위에 카카오패밀리(가정)가 있는데요. 여기에는 카카오패밀리가 주변 가정을 받쳐 주는 역할을 하자, 그래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자,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그런데 ’카밀라‘에 담긴 뜻이 더 있다고요? ‘카밀라’는 카카오패밀리의 제주 라이프의 줄임말이에요. 카카오패밀리는 ‘카카오’ 에 집중된 네이밍이에요. 카카오는 주인공이 아니고 도구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카밀라라는 캐릭터가 탄생했어요. 바람공장에서 의식주를 기반으로 한 라이프스타 일을 가르쳐왔고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 카카오패밀리를 설립했어요. 우리가 집 중하는 일은 ‘삶’이에요. 그래서 카밀라는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담은 캐릭터 이고 브랜드예요.


카카오패밀리를 포괄할 수 있는 네이밍이 카밀라군요. 그렇다면 카카오패밀리는 왜 ‘제주’를 선택했어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제주도로 이사 왔고요. 남편이 저한 테 너 고향이 어디야 그러면 나는 제주도라고 해요. 남편은 서울에서 태어나서 쭉 자랐어요. 고향이 어디야 물으면 고향이 없다고 하죠. 고향에 가도 아는 사람이 없 고 공동체도 없고 공간도 달라졌기 때문에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 고 싶어서 여기에 정착했어요.


카카오패밀리가 고향으로 삼은 제주에서 카카오 고향까지 알려주는 역할도 하는 거네요?

요즘은 무슨 커피 좋아하냐고 물으면 예가체프, 과테말라라고들 답하잖아요. 커피 의 고향이 되찾아졌어요. 마찬가지로 카카오에게도 고향이 있어요. 다국적 기업에 서 만들어진 초콜릿은 여기저기서 가져온 카카오를 블랜딩해 알칼리처리해요. 그러면 본연의 맛이 빠지고 쓴맛만 남죠. 그래서 설탕을 엄청나게 넣어요. 저희가 경 험한 카카오는 쓰지 않거든요. 쓴맛, 매콤한 맛, 새콤한 과일 맛, 그리고 끝에 약간 단맛이 있고 시나몬 향도 나고요. 다양한 맛이 나는데요. 그동안 왜 그 맛이 가려졌 는지 봤더니, 중남미 마야인이 카카오를 처음 재배했지만, 유럽인이 갖고 가서 초 콜릿을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카카오의 고향은 사라지고 유럽인에 의해 여기저기 합쳐진 초콜릿이 우리나라에 전달됐어요. 마야인은 초콜릿을 몰랐고, 자기 지역의 카카오를 먹었죠. 우리가 카카오의 본질을 이야기하려면 카카오 고향 이야기를 해 야 해요. 그래서 제주를 고향으로 삼은 카카오패밀리는 고향을 잃은 카카오에게도 고향을 되찾아주는 일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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