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알고 싶어서 언어를 배운다.
왜 나는 이렇게 언어를 놓지 못할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종종 던져왔다.
직업이니까, 외국 생활 때문이니까,
공부를 오래 해서일까?
아니다. 결국 나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고, 나 자신도 이해하고 싶기 때문에 언어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것 같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말이라는 건 결국 마음을 건네는 방식이기에
나는 계속해서 더 나은 방식으로 말하고, 듣고, 알아차리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언어를 배우고 또 가르치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내게 묻곤 한다.
“외국어를 그렇게 여러 개 하려면, 머리도 몸도 바쁘시겠어요.”
그러면 나는 그냥 웃는다.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언어는 머리로만 익히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도 배워야 해요.’라고.
정말 그렇다.
내가 언어를 배우며 어려움을 느꼈던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문법이 어렵고, 단어가 외워지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언어는 곧 나 자신을 꺼내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고, 조금 더 망설이게 되었던 것이다.
상대의 언어에서 우리는 ‘다름’을 느낀다.
말투, 억양, 표현, 침묵의 길이까지도 낯설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순간엔 놀랍도록 ‘같음’을 느낀다.
‘아, 나도 저런 생각을 해.’
‘이 말투, 익숙한 걸.’
그리고 우리는 점점 알게 된다.
상대의 언어는 그 사람의 전부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 말 안에 세계관이 담겨 있고,
그들의 정서와 감정이 들어 있으며,
때로는 역사가, 때로는 가족의 분위기마저 녹아 있다는 것을.
그 무게를 느끼고 나면, 언어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조심히 다루어야 할 하나의 ‘사람’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말을 뱉지 못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지는 느낌을 받는 것 아닐까.
영어를 배우며,
나는 ‘입’이 아니라 ‘몸’으로 말해야 했다
영어를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한 건 미국에 살면서였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영어는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아주 짧고 사소해 보이는 말들,
“Right?” “Oh my god!” “Seriously?” 같은 리액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몰랐다.
그 반응들이 없으면,
내가 아무리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도
대화는 그 자리에서 끝나버렸다.
그리고 몸짓.
웃는 얼굴, 고개를 끄덕이는 타이밍, 눈을 맞추는 방식—모두가 영어였다.
나는 영어를 ‘공식’처럼 외웠지만,
그들은 영어를 ‘사람처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어를 배우며,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일본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도쿄의 지하철 안에서, 식당에서, 회사 회의실에서
나는 그들의 언어만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공기 전체를 읽어야 했다.
그들에게 언어는 종종 ‘하지 않는 것’이었다.
명확히 말하지 않는 것,
직접 표현하지 않는 것,
그리고 분위기를 읽고 조용히 따라주는 것.
“空気を読む。”
‘공기를 읽다’는 말은 일본인들의 일상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나는 일본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단어보다는 공기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말하는 것,
그들의 틀에 맞추어 예의를 갖추는 것,
그 모든 것이 언어였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을 줄 아는 것’이 더 큰 미덕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일본어를 통해 처음 알았다.
중국어를 배우며,
뉘앙스는 문법보다 앞선다는 걸 알았다
중국어는 비교적 늦게 시작했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레슨을 1년 넘게 이어갔다.
그분은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문법보다 문화를 먼저 이야기했다.
“중국에서는 이 말을 이렇게 쓰면 조금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어요.”
“이 단어는 지방마다 느낌이 달라요.”
“여기선 가족끼리도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잘하고 싶은 것은 단지 중국어 문장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분위기에서 살아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부터는 문법 설명보다
그들이 쓰는 말투 안에 숨어 있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내 말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때 알았다.
언어가 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문법 문제를 맞힐 때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말투를, 거리감을
내가 흉내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었을 때라는 걸.
지금, 언어를 가르치면서도,
수업을 할 때마다 느낀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는 것을.
언어는 사람이다.
그리고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문화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일이다.
서로를 무안하게 만들지 않고,
배려하고,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먼저 있다면,
그 어떤 언어도 결국은 통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언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그건 이름일 뿐이다.
언어는 이름보다 훨씬 더 깊고,
사람보다 더 사람을 닮은 것이다.
오늘의 노트
언어는 단어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에서 시작된다.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따뜻했기를, 혹은 조용히 닿았기를 바라며.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나는 누군가의 언어에서 어떤 마음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나의 말투나 표현은, 타인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고 있을까요?
•내가 언어를 배우고 싶은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하고 싶은 나만의 언어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