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Is My True Self?
나는 드럼 강사이자 드럼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약 20년의 시간을 살아왔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학생들에게 드럼을 가르치고,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는 일을 해왔다. 학생들이 무대에 서고, 공연을 준비하고, 사람들 앞에서 리듬을 표현하도록 돕는 일은 늘 활기찬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을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음악을 통해 에너지를 나누는 삶이 내 모습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질문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과연 진짜 나였을까.
사람은 태어날 때 어떤 이름도, 어떤 직업도, 어떤 역할도 없이 세상에 나온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누구의 아들이고, 어떤 학교를 나왔고,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인지로 설명되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 속에서 수많은 역할을 맡는다.
그러면서 또 다른 나들이 만들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나.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의식하는 나.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에 맞춰 살아가는 나.
이렇게 여러 겹의 모습이 쌓이다 보면, 정작 그 안에 있는 본래의 나는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마치 여러 겹의 베일이 덮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신의학자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Carl Jung)은 인간의 이런 모습을 깊이 연구했다.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존재하는 원형(archetype)이 있으며,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페르소나(persona)라는 가면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페르소나는 사회적 관계를 위해 필요한 역할이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 가면을 가면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융은 또한 인간의 심리 유형을 설명하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사람의 성향을 크게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나누고,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방식을 감각, 직관, 사고, 감정이라는 네 가지 기능으로 설명했다.
이 심리 유형 이론은 이후에 발전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MBTI 성격 유형 이론의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이론을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곧바로 진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종종 그 유형마저도 또 하나의 이름처럼 붙잡고 살아간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정의하면서 또 다른 틀을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베일 속에 들어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가정이라는 환경,
학교라는 체계,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
종교나 공동체의 가치,
직업과 역할이 요구하는 모습.
그 안에서 우리는 점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고, 어느 순간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쌓여 만들어진 모습이 정말 나의 본래 모습일까.
나는 그 질문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바로 드럼을 가르치는 시간 속에서였다.
드럼을 가르치는 일은 단순히 리듬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다. 학생마다 배우는 속도도 다르고, 리듬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기술적으로는 빠르지만 마음이 조급하고, 어떤 사람은 느리지만 깊이 있게 배운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점점 사람의 내면의 힘을 보게 된다.
연습을 대하는 태도,
실수를 받아들이는 방식,
자신을 믿는 정도,
배움을 받아들이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이 리듬 속에 드러난다.
그래서 드럼 수업은 단순한 음악 수업이 아니라 어느 순간 사람과 사람의 깊은 소통이 된다.
나는 그 사람의 리듬을 듣고, 그 사람은 나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서로의 속도를 맞추며 연습을 이어가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교류와 연결감이 생겨난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로 기쁜 순간은 화려한 공연이나 큰 무대가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리듬을 발견하는 그 작은 순간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드럼을 두드리는 것조차 어색해하던 사람이 어느 날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기 시작하는 순간.
“선생님,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을 믿지 못하던 사람이 스스로를 믿기 시작하는 순간.
그때 나는 깊은 기쁨을 느낀다.
예전에는 그것을 단순한 직업적인 보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나는 그것이 단순한 보람이 아니라 내 삶의 진짜 에너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내면과 만나고,
누군가의 가능성을 함께 발견하고,
그 과정 속에서 서로가 조금 더 깊어지는 일.
아마 그것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짜 나는 거창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쓰고 있는 수많은 가면과 역할의 뒤에 조용히 숨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베일이 조금씩 걷히는 순간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진심으로 기쁨을 느끼는 순간.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하는 순간.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
그 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조금씩 본래의 나를 만나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내 진짜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그것은
내가 가장 자연스럽게 기뻐하는 순간에 있다.
아무 역할도 없이
내 안의 기쁨이 터져 나오는 그때,
그 순간이 바로
숨겨져 있던 진짜 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