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원에서 귀여운(?) 막내였다.
전공 전체에서 내가 나이가 제일 어렸다.
어째서인지 전공에 유일한 20대는 나 혼자였다.
동기 선생님들은 나를 포함해서 총 6명이었다.
가톨릭 학교여서 그랬는지 대부분 가톨릭 신자가 많았다.
나와 3살 차이가 나는 언니를 제외하고
전부 우리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의 선생님들이셨다.
교육대학원의 문화였는지 아니면 기수의 문화였는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는 통일된 호칭을 사용했다.
내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부모님 나이 뻘의 선생님들이 내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김춘수의 꽃처럼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지만
대학원 생활 내내,
대학원을 졸업하고 10년이 넘은 지금도
한 번도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신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체생활이 전부였던
대학시절에 비하면 대학원 생활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렇게 어렵거나 무리한 부분이 없었다.
그래도 손이 가고 살짝 번거로워 보이는 일이든
누구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먼저 솔선수범했다.
사회에서 예의 바른 사람이 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셨던 부모님의 여파였는 지
선후배의 위계질서가 익숙했던 경험 때문인지
나이가 있는 선생님들을 배려하는 것이 당연했고
막내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선생님들은 좋아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한테 물만 떠다 줘도
모든 효도를 다 했다는 느낌이었을까
별일 아닌데도 항상 고마워하셨다.
나는 그 고마움이 어색했다.
회사에서도 나는 늘 막내였었고 잡일이나 허드렛일을 도맡아서 했지만
그런 부분은 당연히 내 몫이어서 왜 이렇게 고마워하시는지
그들의 마음이 부담스러웠다.
어떤 일이었는지, 정확한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 행사에 준비가 필요했는데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회사를 다니고 계셨지만
그 당시에 나는 입학 초라서 딱히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았고
학교에서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 준비를 도맡아 하고 있었고
언제나처럼 내게 고마워하던 그들은 커피쿠폰이며 저녁이며
각자의 마음을 내게 표현했다.
그날은 서로의 자기소개서를 함께 보았던 동기 선생님이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커피를 내밀어 고마움을 표현했다.
"선생님,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데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
"이림샘, 그게 왜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막내잖아요."
"그건 당연한 게 아니에요. 우린 여기 동등하게 학생의 입장으로 온 거예요. 나이만 다를 뿐이에요."
"에이~ 제가 아니어도 누구든 그렇게 했을 거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선생님은 본인이 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지만,
누군가는 모른 척하고 다른 사람이 하길 바라면서 안 할 수도 있어요.
하지 않는다 해도 그 누구도 선생님을 뭐라 할 수 없어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에 나는 눈을 껌뻑인 채,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림샘은 나이 든 우리를 생각하고 배려해서 먼저 움직여줘요.
누구나 그렇게 배우고 머릿속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건 쉽지 않아요.
본인이 그렇게 배웠다고 했지만, 모두 다 그렇게 배워요.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렇게 행동하길 선택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선생님의 마음이 너무 예쁘고 고마워요."
내가 그녀의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신경이 못쓸 정도로 표정관리가 되질 않았다.
"... 그런데 선생님.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요.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얘기해요. 선생님은 반드시 그 연습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진리"와 같은 것이
나의 "선택"이라는 것이 왠지 살짝 억울했다.
모두가 나한테 당연했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세상이 하루아침에 뒤바뀐 기분이었다.
그 날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