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한창 어린 나이였는데
그때는 이 나이에 이런것도 못하나 싶어서 괜히 부끄러움만 가득했다.
대학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걱정이 앞섰다.
체육학을 전공했다는 것이 매번 면접에서 발목을 붙잡았던 것처럼
여기 너는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라고 얘기할 것 같았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어
계속 문 앞에서 서 있는 사람
나에게 취업은 그런 시간들이었다.
그런 지난 시간들이 익숙하다 못해 내 모습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밀려오는 불안감에 주변에서 대학원을 다녔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대부분 동 대학의 대학원이었고 전공이 달라서 조언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서 챗GPT 등 인공지능 챗봇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정보를 얻었을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웹 서칭이 최선이었다.
내가 가려는 대학원은 어쩐지 정보가 많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무식하고 무모했다.
원서에 제한이 있는것도 아닌데
원서를 여러 개 넣어도 됐는데 가고 싶은 대학원 한 곳만 넣었다.
평생교육사 실습을 받았던 기관은 해당 대학교에서 위탁운영을 맡겼었는데
왠지 그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면접 당일에 엄청나게 긴장하고 화장을 엄청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원은 보통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바로 가게 되는데
나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면접을 보니 거기서 나이가 제일 많을 것 같았다.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면접 볼 생각에 약간 주눅이 들었다.
왠지 꿀리기 싫은 마음에 화장을 엄청 진하게 하고 갔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교수님들께 감사한 일이다.
면접은 단정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줘야하는데
화장이 진한 얼굴로 잔뜩 긴장해서 단호한 표정으로 서있었으니
내가 얼마나 웃겼을까.
면접을 갔더니 나의 예상과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내가 나이가 제일 어렸다.
대부분 우리 부모님 나이 때거나 혹은 더 나이가 많아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상황은 왠지 또 그대로 또 꿀리는 느낌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드래곤도 아닌데 왜 이렇게 꿀리기 싫었을까.
다들 공부를 많이한 사람들일텐데 이 사람들이 뽑히면 난 입학을 못할텐데
어쩌나 라는 생각에 다시 또 긴장감이 엄습했다.
나름대로 준비한 예상 질문지와 자기소개를 적은 멘트를 보고있을 때,
한 여자 분이 말을 걸었다.
"선생님, 준비 많이하셨어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어쩌지 하고 머리속에서 3초동안 어버버했지만
당황하는 내색을 하면 상대방이 난처하진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고
어쩐지 여유로워 보이는 상대 선생님의 태도에 왠지 나도 여유롭게 대하고 싶었다.
나이를 답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준비한 거 한번 봐도 되요?"
대화를 나눌수록 뭔가 적대적인 마음보다 나도 궁금한 마음이 커져갔다.
"네네, 근데 저도 준비하신 거 봐도 되요?"
웃기게도 긴장이 풀려가고 있었다.
면접도 면접인데 부모님의 동년배로 보이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여기 왜 왔는지 궁금했다.
서로가 준비한 페이퍼를 나누어보았다.
"오, 저희 엄마랑 세살 차이에요."
"그래요? 어머니랑 나랑 세살 차이구나."
질문했던 그 분은 페이퍼를 돌려받고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시면서 크게 웃으셨다.
훗날, 그 선생님은 나의 동기 선생님이었는데 본인이 나이가 많아서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말을 걸으셨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예상과 달리 젊은 사람이 본인의 페이퍼도 보자고 해서
요즘 젊은이는 다르구나 라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그 와중에 본인 엄마랑 세살 차이라고 하니
이런 친구와 함께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니 현타가 와서 웃음이 나셨다고 했다.
선생님, 저도 궁금해서 그랬어요.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면 제가 죄송합니다.
면접장에 들어가니 두 분의 교수님이 계셨다.
두 분 다 나이가 많으셨는데 스타일이 극과 극이었다.
한 분은 신부님 같은 스타일에 의상이었고
한 분은 타이트한 정장에 세련되어 보이는 액세서리로 상당히 댄디한 스타일이었다.
신부님 같은 교수님은 지원해줘서 고맙다며 자기소개와 입학동기를 요청했다.
나는 체육학을 전공했지만 평생교육을 배우고 싶어서 왔다.
교육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나는 평생교육사로 일하고 싶은데
전공에 대한 부분이 계속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대학원에 입학하고 싶다며 얘기하는데
어쩐지 지난 날의 면접들이 생각나면서 나도 모르게 급발진하면서 멘트를 이어갔다.
나는 정말 열심히 할 수 있는데 학력 한줄 가지고
나의 가치를 알아봐주지 않는 것 같아서 세상에 조금 서운하다.
그 서운함 때문에 대학원에 입학한다니
학문을 더 연구하고 싶다던가 뭔가 그럴듯한 말도 많았을텐데
이미 뱉은 말은 주어담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대처하기보다
솔직함으로 정면 돌파하던 아직은 20대였다.
댄디한 교수님이 박장대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맞아요. 맞아. 그거 한줄 가지고 너무하네. 하하하하.
근데 여기 들어오면 기존에 본인이 하던 거랑은 달라서 공부를 많이 해야하는데 괜찮아요? "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는 아마 더 많이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다니던 회사는 그만 두었고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면 학문에 전념하겠다고 답했다.
생각해보니 대학원 면접 날,
내가 만난 사람들이 다 박장대소 했었는데
나중에 입학하고 나서 당사자들을 통해 하나 둘씩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교수님, 동기 선생님들 모두 죄송해요. 그땐 너무 어렸어요.
그렇게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