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대학교 홍보팀에서 기사를 스크랩하고 총장의 동정사진을 찍는 일을 했었다.
그리고 직원들이 요구하는 간단한 심부름을 해주는 업무였다.
업무 자체가 간단하기 때문에 한 달에 용돈을 버는 정도였다.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남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졸업한 지 거의 5년이 다되었던 시점이었는데
확실히 좋은 대학교라서 그런지 학생들의 모습은 사뭇 달라있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취업난에 대한 부분을 계속 야기되어 왔었지만
1-2학년 때는 대부분 놀던 기억 밖에 없었다. 동아리방에서 술을 마시거나
연애를 하거나 놀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던 것 같다.
시험기간이라는 명목하에 도서관에 가끔씩 자리하고 있었고
3-4학년쯤이 돼서야 성큼 다가온 취업의 문턱에서 고민하고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고 자격증 공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홍보팀에서 교내 기자단을 운영하면서 사진을 잘 찍는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 친구와 학생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식당에서 만난 친구와 서로 주말에 안부를 묻는데,
한국사 시험을 보았다. 토익 시험을 보았다는 등의 대화를 나누었다.
사뭇 치열한 그들의 대화에서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너희는 같이 술 마시고 동아리실에서 놀고 이런 것 없어?"
"그런 건 저희를 취업시켜 주지 않아요."
역시 좋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한 편으로는 이제 막 대학 입시에서 해방되었을 텐데 다시 취업준비라니
마치 퀘스트를 해나가야 하는 정의의 용사와 같은 그들의 모습에서
함께 사회에 나갔다면, 나는 틀림없이 그들에게 밟혀있었겠지.
조금 더 먼저 사회에 나가서 경력이라도 쌓은 스스로가
차라리 다행이었을까 그런데 이 경력이 그들을 막을 수 있는 방패가 될 순 있을까
한참이나 어린 동생들에게 왠지 모를 패배감에 휩싸이는 게
그 시절의 나는 더 자존심이 상했는지
애초에 퀘스트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패배감을 치워버렸다.
서울에 있는 모 구청에서 평생교육 분야의 계약직을 뽑는 공고가 올라왔다.
시간선택제 라급 상당으로 9시-5시까지 근무하는 주 35시간제였다.
나는 공무원 체계에 대해서 잘 몰랐다.
해당 직무분야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교육회사에서 근무했던 경력으로 면접을 볼 수 있는 요건이 가능했다.
나는 평생교육 실습을 했던 평생학습원을 떠올리며
교육 콘텐츠를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기업에 있으면서 항상 기획하는 것보다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것들로 고민했었는데
공교육은 조금 더 교육 자체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면접이 궁금했다.
사기업은 면접을 볼 때 어떤 것을 물어보는지 몇 차례의 경험이 있었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어떻게 면접을 보는지 궁금했다.
서류조차 통과가 안될 줄 알았는데 서류가 통과되고 면접 날이 다가왔다.
면접장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이전에 기업에서 면접 볼 때는 항상 1:1로 면접을 봤던 것 같은데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이렇게 앉아있다는 것에 긴장감은 더욱더 고조되었다.
어떤 걸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준비했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인구, 현황, 교육시설 등을 외웠고
언제 평생학습도시가 되었는지
어떤 사업이 이슈인지 어떤 사업을 할 예정인지 나름 정리해서 갔다.
잘 정리해 두었던 것 같은데 긴장감에 자꾸 머릿속이 하얘졌다.
벼락치기 공부하던 사람처럼 면접장 앞에서 정리한 페이퍼를 급하게 외워갔다.
공공기관의 면접은 예의가 중요하다고 해서
폴더폰처럼 면접장 입구에서부터 꾸벅꾸벅 접히며 들어갔었다.
"OO구는 언제 평생학습도시가 됐죠?"
"2006년에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인구는 얼마죠?"
"53만 명입니다."
"OO구의 캐치프레이즈를 아시나요?"
"아... 죄송합니다. 입사하게 되면 그것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예상했던 몇 가지 질문에 차분히 답변하고,
잘못 답변하거나 답하지 못한 부분에서 입사해서 다시 공부하고
더 전념하겠다는 패기 넘치고 이상한 답변을 했다.
"우리 구에서 어떤 사업을 추진하고 싶나요?"
"평생교육백서에서 봤던 저출산 관련 사업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현재 교육 기조와 지역의 특성을 맞춘 사업을 추진하고 싶습니다. "
말 좀 차분하게 해 볼걸, 좀 더 스마트한 대답을 할 걸 그랬나,
발음은 왜 그렇게 씹었나
면접이 망했구나라고 생각하며 긴장감에 얼굴이 붉어진 채 나왔다.
공공기관은 이런 식으로 면접을 보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태이림씨, OO구청 총무과입니다.
이번 계약직 채용 공고에 합격하셨습니다.
추후에 임용 관련 서류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떨어졌을 거라는 생각에 쳐다보지도 않았던 합격 공고문을 그제서야 확인했다.
오. 이게 되네?
궁금해서 본 면접이 합격해서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