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책에서는 ‘남을 위해서 살라’라고 말합니다. 왜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할까요?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기도 빠듯한 인생인데, 우리가 남을 돌아볼 여력이 어디 있습니까? 왜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책들은 착하게 살라고 하는 걸까요?
아들러의 의견을 살펴봅시다. 남을 위해서 살라는 아들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감각’이라는 단어를 이해해야 합니다. 공동체 감각이란 쉽게 말해 '한 사람은 세계의 한 일부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계의 일부로 존재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저녁에 치킨 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합니다. 내가 치킨을 시키면 배달해주시는 분, 치킨을 튀기시는 분, 그 치킨을 튀기는 기름을 공급하시는 분, 그 기름을 옮기시는 분... 말로 하면 무수히 많은 도움을 받고 우리는 치킨을 먹습니다.
왜 남을 도와야 하나요? 왜 그렇게 책에서는 남을 도우라고 강조할까요?
그렇다면 왜?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도대체 다른 모든 책들과 심지어 아들러조차 남들에게 도움을 주고 살라는 것일까요? 그 이유의 해답은 바로 ‘인간이 된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감각을 끌어올려 공동체의 헌신하는 삶은 인간 본래의 삶의 방식을 깨닫게 합니다. 좀 더 인생에 본질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나는 커다란 기쁨, 커다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느낌은 정말 스스로를 기분 좋게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남들을 도와주고 생기는 기쁨과 가슴 벅차오름을 느낀 적이 단 한 번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천입니다. 생각으로만 ‘도와줘야지, 도와주고 싶다’ 생각하고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공동체 감각 즉 선한 마음만 일어나고 행동하지 않으면 '회피자'가 됩니다. 공동체 감각은 높은데 실천력이 없으면 그저 평론가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동체 감각도 낮고 실천력과 활동성만 높으면 '꼰대, 독선자'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성격은 공동체 감각도 높고 활동성도 높은 ‘유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도움을 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 생각만으로도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를 통해서 인간이 된 기분을 느끼고, 좀 더 나를 위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밥은 더 맛있어질 것이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짜증과 욕 대신 매 순간순간을 기대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지쳐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저 또한 그러니까요. 야근을 풀로 당기고 잔 다음날 아침은 나도 모르게 욕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내 인생을 직장에 갈아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나’는 어디 있지, 도대체 내 삶은 어디 있는 거지?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끝이 없는 질문으로 더 우울해집니다. 거기다가 좀 늦어서 지하철에 사람까지 많으면 그 날은 하루 종일 짜증 납니다. 그날따라 우리 상사는 뭐가 그렇게 기분이 안 좋으신지.. 상사 얼굴에 침 안 뱉고 참는 제가 대견합니다.
단 한 번에 인생은 바뀌지 않습니다. 단 한 번에 인생이 바뀔 만큼 인생은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렇게 욕하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욕하는 삶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인간’ 답게 살고, 성공하고 나서도 공허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조금이나마 남을 배려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저 멀리서 오는 그녀를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잠시 멈춰준다던지, 문을 잡아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인생은 조금씩 바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도 ‘인간’ 답게 살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