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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Nov 11. 2020

왜 자신 있게 '잘 살고 있다!'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땡볓이 머리를 태울 듯이 내리쬐던 여름에 국토대장정을 했었다. 대학생이던 그 당시에는 무슨 힘이 그렇게 남았는지 계획도 없이 무작정 친구랑 부산역에 내려서 북쪽으로 걸었다. 언젠가 서울에 도착하겠지.. 생각하면서..

하루에 몇 킬로를 걸어야 하는지, 이 속도로 걸으면 며칠 만에 서울에 도착하겠지라는 계회조차 없었다. 피곤하면 자러 갔고, 배고프면 식당에 갔다. 계곡이 보이면 옷을 벗고 들어가서 물장구를 쳤다. 그래서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비슷한 느낌으로 군대에서의 행군 훈련이 있다. 걷고 걸으며 하염없이 걸었을 때를 생각했다. 그리움도 있지만, 아쉬움이 더 크다. 그때처럼 체력이 남아돌지 않기 때문인가 보다. 행군 훈련때문에 억지로 걷고, 걷다 보니 '나는 잘 살고 있나?'라는 질문이 마음속으로 일었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왜 나는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나는 퇴근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생각은 꼬리를 물고, 앞사람 군화 뒤꿈치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내가 잘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외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첫 번째는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글도 잘 쓰고 싶고, 그림도 잘 그리고 싶고, 내 분야의 전문가도 되고 싶다. 가능하면 원하는 대학원도 가서 학벌도 업그레이드시키고 싶다. 영어도 신통치 않지만 제2외국어도 하나 마스터하고 싶다. 운동도 조금씩은 하고 있다. 재테크 공부도 해서 부자도 되고 싶다. 


이렇게 써보니 내가 봐도 욕심이 많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나름 열심히 삶을 꾸려가고 있다. 아침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고 있다. 6시에 일어난 지도 벌써 2년 가까이 된다. 퇴근하고 나서도 술자리에 가기보다는 책상에 앉아 차분히 할 것을 했다. 대신 문제는 책을 읽으면서도 그림 그릴 것을 걱정하고, 그림을 그리다가도 주식이나 부동산 공부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즉 똥싸면서 밥생각하고, 밥생각하면서 똥누는 생각하는 것이다. 


욕심이 많아지니 조바심이 생긴다. 나이는 한 살 한 살 들어가는데 이루어놓은 것은 많이 없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난다.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과 비교해서는(정확하게 누구와 비교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크게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 나름대로 이룬 것이 있다. 다섯 번째 시도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지만, 그 소리가 너무 작아 아직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나름 부동산, 주식공부도 열심히해서 귀여운 수익도 창출하고 있다. 또 글쓰기 공모전에서 시상도 했으며, 그림 인스타도 개설했다(이모티콘도 만들어 봤지만 광탈) 나름 잘 살고 있네!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비교'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익숙해진 우리는 '남들의 보여주기 식 행복'을 훔쳐본다. 그리고 자신도 좋아요를 위해 자기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게시물들을 올린다. 좋아요를 받으면 기분이 좋고, 평소보다 관심이 없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비교는 인간이기에 당연히 할 수밖에 없다. 주변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잘 나간다면 비교는 더 자주 발생하게 되며 더 큰 스트레스를 만든다. 나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느끼는 점은 '내가 남에게 관심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모님들도 다 큰 자식을 24시간 생각하지는 않는다. 본인들의 고민도 많고, 바쁘다. 



나이가 들어서도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기를 자초한 사람이고, 조금 어리석은 사람이다. 세상의 중심에 당신은 없다. 세상에 큰 획을 그은 사람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당신이 없다고 해서 세상이 멈추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저 왔다 갈 뿐이다. 왔을 때, 행복하게 잘 살고 가면 그 의무를 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만족이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계속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넣을 것인가.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을 깎아내릴 것인가. 이것은 선택의 문제다. 뜨겁다고 계속 소리치면서 컵을 놓지 않는 아이와 같다. 컵을 그냥 놓기만 하면 되는데, 엉엉 울면서 꼭 쥐고 있는 아이와 다를 게 없다. 




스스로 삶이 만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남들의 신경을 쓰되,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절대 세상을 미워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을 미워하면 세상도 나를 외면한다. 하지만, 내가 세상을 아름답다 여기면, 세상은 나를 위해 방긋 웃어준다. 뭐든지 마음먹기 나름이다. 나도 만족과 감사를 연습하지만 쉽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한가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남들의 인정보다는 나의 만족이 좀더 얻기 쉽고, 지속적인 행복이라는 것을.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30살 되면 뭐 크게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냥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무서운 이야기지만 40대가 되기 직전에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다. 조금 달라지는 점은 몸이 좀 무거워지고, 머리가 살짝 벗어졌겠지.. 

 조급해하지 말고, 목표를 잡을 거면 현실 가능하게 넉넉하게 두자. 성취하기로 계획된 날에 뭔가를 이룬다고 해서 꼭 행복하다는 보장도 없다. 



비교할 필요도 없다. 남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심지어 부모조차도 그렇다. 그러니 그냥 나를 좀 놓아주자. 실체 없는 허상이나 정말 잘 나가는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비교할 거면 나보다 힘든 사람들과 비교하자. 그래서 힘을 얻자. '그래, 저 사람들보다는 내가 그래도 잘 사는 것 같네' 한번 싱긋 웃자. 


일을 줄여 만족하고, 내 삶 한번 잘 살아보자. 욕심과 집착을 버리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자. 성공한 삶을 살지는 나도 모른다. 너도 모른다. 심지어 하늘도 모른다. 나는 그냥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대신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려고 한다. 대신 나 스스로에게 소심하게 칭찬은 날려준다.


한방이 없어도 좋다. 대신 잽으로 계속 때리련다. 그러면 언젠가 샌드백도 터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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