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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an 28. 2022

간병인도 다 돈이다. 결국 돈이다.

할머니가 넘어지셨다.


무조건의 사랑을 나에게 보여주신 할머니가 다치셨다. 

집에서 넘어지셨고, 병원에서 큰 수술을 하셨다. 

예전 증조할머니께서 넘어지시고 나서 기력이 굉장히 쇠하셨다. 

그걸 옆에서 본 나로서는 불안해졌다. 


할머니는 한 달 동안 입원했고, 요양병원에 가시는걸 극도로 싫어하셔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입원 동안 어머니는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으시고, 같이 시간을 보내셨다. 

요즘 병원은 면회도 안되어서 어머니도 강제로 한 달 동안 감금되었다.


퇴원을 하시고, 이제 처음으로 외래진료를 가는 날이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 할머니는 대구, 나는 경남에 있기에 내가 모시고 간다고 하였다.

2시간가량 달려서 할머니 집으로 들어간다. 


- 할머니, 손자 왔습니다

- 왔나. 아이고 우리 꿀단지 왔나.


언제나 나를 한없이 무한한 사랑으로 반겨주신다. 자존감이 떨이질 때 할머니, 할아버지만 보고 오면 나는 그래도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진심으로 조건 없는, 무조건의 사랑이 느껴진다. 

강아지도 자기 이뻐해 주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느낀다. 나도 동물이기에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아, 나는 그래도 사랑받는 사람이다.


오랜만에 뵌 할머니는 흰머리가 많이 올라왔다. 

건강하실 때는 부지런히 염색도 하셨지만 한두 달 누워만 계셨기에 흰머리가 눈치 없이 올라온다. 내가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면 꿀밤이라도 때려 없애고 싶다.


'시간은 무섭게 흐르고. 세월이 무상하다'라는 표현이 오랜만에 와닿는다.

평소에 하루하루 살다 보면 하루는 참 길다. 그런데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가 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며 투덜댄다. 정작 하루하루는 느리게 가지만 열심히 살지 않는다.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할머니는 화장실 가는 게 어려워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오랜만에 할머니 집에 가니 낯선 사람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간병인인가 보다. 

싹싹하니 일도 잘하게 보이신다. 

그런데 고개를 계속 갸우뚱하고 계신다. 허리나 목 쪽이 안 좋으신가 보다. 계속 저렇게 계시면 근육통도 있으실 텐데... 


몸이 조금 불편하신 분이 몸이 많이 불편하신 분을 돌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돈이 야속했다.

저분도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 혹은 자신의 부양자를 책임지려 저렇게 일하시는구나. 

돈을 벌려고 이렇게 궂은일까지 하시는구나.. 괜히 내 마음이 저민다. 

갑자기 텔레비전 속 정치인들이 생각난다. 자기 잇속을 챙기기보다 사회의 약자들에게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말로만 하지 말고 제도와 환경을 바꿔주셨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물론 그들도 초심은 이런 경험 때문이었겠지. 어려우신 분들을 보고 힘 있는 정치인이 되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으셨겠지. 씁쓸하다. 


만약 부모님이 잘 벌지 못해서 간병일을 쓰지 못했다면 할머니는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요양원으로 가셨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돈의 소중함을 느낀다. 가난은 죄다. 명백해졌다. 가난은 죄다. 능력이 필요할 때 능력이 없음은 죄다. 범죄까지는 아니지만 마음의 빚, 마음의 죄책감을 남긴다.


나는 내 가족을 책임질 힘이 있나. 

나는 내 가족을 책임질 돈이 있나. 생각해본다.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간다. 

병원 주차부터 쉽지 않다. 병원은 큰데 주차장 입구는 코딱지 만하다. 병원장도 밉다. 본인들은 사람 없을 때 와서 주차하니 이런 불편을 모르겠지. 또 씁쓸하다. 


할머니는 휠체어에 타셔야 한다. 아예 발을 못쓰시니 차에서 내리시려면 내가 업거나 들어야 한다. 다행히 차가 SUV라 다행이다. 높다.


병원에서 여러 진료를 본다. 대기시간이 길다. 내가 돈이 많았더라면 이렇게 안기 다릴 텐데.. 돈이 더 많았다면 더 시설이 좋은 병원 VIP로 갔을 텐데... 돈 많은 재벌이나 연예인들이 이렇게 외래진료를 받으러 휠체어에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은 내 아직 평생에 못 봤다.


돈이 많더라면 이런 불편함과 수고스러움은 안 겪어도 될 텐데... 괜히 내가 죄송스러웠다. 돈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 진짜 부자가 되고 싶다.


어리석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수준이 나의 한계임은 인정한다. 그래도 이 생각은 떨치기 힘들다.



다시 할머니를 차에 모신다. 이번에는 업어서 차에 앉힐 계획이다. 

마음이 앞섰다. 휠체어 발부분을 안 접고 그냥 들어 올리는 바람에 할머니가 넘어지실 뻔했다. 발을 디딜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픈데도 내색을 안 하신다. 그게 더 슬프다. 차라리 아프다고 짜증을 내셨다면 그래도 마음이 덜 불편할 텐데... 


할머니는 온통 손주 생각뿐이다. 내가 힘들 것을 걱정하신다. 또 죄송스럽다.. 내가 이런 일 봉사라도 해봤으면 이런 실수는 안 할 텐데. 스스로를 자책한다.


차에서 내리고 이제 곧장 할머니 침대까지 업어드렸다. 할머니 집은 계단이 많다. 입구도 계단이고 1층까지 올라가는 것도 계단이다. 할머니를 엎어드린다.


-할머니 가볍네!


할머니가 무거워서 미안해하실까 봐 괜히 으스댄다. 근데 정말 가볍다..

할머니를 침대에 눕게 해 드린다. 할머니는 성인용 기저귀를 사용하신다. 나는 이제 눈치껏 가봐야 할 것 같다. 일처리도 하시고, 간병인이 식사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괜히 나까지 밥 얻어먹고 가면 실례다.


- 할머니 다음번에 진료 갈 때도 내가 올게요. 잘 계세요. 

- 아이고, 오지 마라 너희 아빠 오면 되지. 너 바쁘다 아이가.

- 괜찮아요. 저 휴가 쓰면 돼요. 저 가요~

- 잠시만 일로 와보이라.


할머니는 지갑에서 연신 현금을 꺼내신다. 있는 현금은 다 주신다. 그리고 옆에 고모들이 주고 간 것으로 보이는 봉투에서도 오만 원짜리를 집히는 대로 꺼내신다. 


- 할머니, 안 주셔도 돼요.

- 어허, 받아라 오늘 너무 고맙데이


할머니는 그냥 내가 힘들까 봐 미안하신 거다. 고마움을 말로도 표현한 것으로 모자라 돈까지 주신다. 


돈은 뭘까. 돈이 뭘까. 돈은 뭘까. 

생각하며 고속도로에 차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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