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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Feb 02. 2022

식욕, 수면욕, 성욕

슬기로운 격리생활#1

밀접접촉자가 되었다. 


자택에서 격리를 하라고 한다.  식사가 큰일이다.


냉장고를 체크해본다. 샐러드 한팩, 닭가슴살 4개, 봉지 카레 한 개, 배 한 개, 맥주 3캔 정도가 전부다. 

다행인 것은 며칠 전 햇반과 참치캔을 여러 개 사놓은 것이다. 라면도 조금 있다. 그래서 약 9일 정도 사는데 크게 지장은 없을 듯하다. 이게 바로 듣기만 했던 냉장고 파먹기인가.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가 될 것 같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요즘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매일같이 가던 헬스장에 가지 못한다. 활동량이 극도로 줄어드니 기존과 동일하게 먹으면 살이 찔 것이다. 억지로 가둬놓으니 내가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이 된 느낌이다. 곰들은 이런 느낌이겠구나..


겨울잠을 자는 곰은 중간에 음식이라도 안 먹지만 나는 깨어있으니 배가 고프다. 

진짜 음식이 필요해서 배가 고픈 것인지 늘 먹던 시간이 되어서 습관적으로 배가 고픈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간에 9일 동안 버텨야 한다. 


배달음식을 억지로 시켜먹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배달음식으로 9일 치 먹으면 살도 찌고 먹고 배부르니 계속 누워있을 것 같다.


비자발적인 감금을 당하니 음식과 본능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에서 누리던 것이 없어지니 그 소중함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역시 사람은 없어져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


이때까지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샐러드를 꾸준히 먹었다. 덕분에 체중은 잘 유지되었다. 그런데 이제부터 먹는 루틴이 무너지면 일상 루틴도 무너질 것 같아 두렵다.


먹는 것이 무너지면 몸에 살이 찐다. 몸에 살이 찌면 둔해지고 움직이기 싫어진다. 게을러진다. 몸이 바뀐다. 몸이 바뀌면 정신도 무너진다. 굳이 뭔가에 집중해서 열심히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쉬고 싶다. 쉬기에는 너무 좋은 환경이다. 

출근도 안 해. 음식도 마음대로 먹어. 운동도 안 해. 침대도 있어. 게임도 할 수 있어. 유튜브에 볼거리는 얼마나 많은지..


먹는 것을 통제해야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단 남은 샐러드와 닭가슴살로 점심을 해결한다. 몸에 시작을 알리는 행위다.

먹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결국 인생이 무너질 것이다. 자명하다.



교도소 감금생활처럼 2평 남짓한 방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해야겠다. 팔 굽혀 펴기 100회, 복근 100회, 턱걸이 50회, 스쾃 100회 정도는 매일 해줘야겠다. 그래야 격리가 끝나고 바로 적응기간 없이 헬스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예측도 힘들다. 늘 계획과는 벗어나기 마련이다.


내가 밀접접촉자가 될 줄이야.


나의 소망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은 전 세계에 없을 것이다. 

대신 주어진 상황, 환경 속에서 나의 태도와 의지는 선택 가능하다. 

요정도 선택할 수 있는 것에 심히 만족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계획한다. 욕구를 통제해야 한다.


욕구를 통제한다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야 격리가 끝나고 쓸데없이 살 빼는 시간에 투자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식욕, 수면욕, 성욕처럼 인간의 본능과 가끔씩 싸워야 멋진 몸과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몸은 자연스럽게 퇴화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허리에 힘을 안 주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굽어지게 되어있다. 모든 자연물들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고 작아진다. 시간이 흘러도 강해지고 커지려면 본능과 조금은 싸워야 된다. 그렇다고 해서 4시간씩 자면서 공부하는 의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먹는 것을 통제하는 것으로 슬기로운 격리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부디 잘 유지되길 기도한다.


아참, 샤워와 면도는 매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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