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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Sep 27. 2022

친구 군대 선임썰


그는 고려대 공대를 졸업했다.


흔히 말하는 '은수저'정도의 가정환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시고고, 어머니는 대학교수다.


키는 180을 훌쩍 넘고, 외모도 준수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우울했다. 뭔가 남들과 비교해서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의 취미는 사진찍기다. 남들에게 인정도 받았다. 공모전에서 입상도 했다. 유수한 가정 환경 탓인지, 본인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도전'하기를 꺼렸다. 남들과 비슷하게 살고 싶어했다.



그는 군대를 공익으로 나왔다. 갈팡질팡하다가 20대 중반이 넘어 군대를 갔고, 28살이 되서야 사회에 나왔다.



성균관대 공대를 같이 다니던 동기들은 유수의 대기업에 입사한다. 하지만, 그는 잘 풀리지 않는다. 이상하다. 뭐 하나 달리는 것이 없는데 잘 안풀린다.



1년 2년 시간은 간다. '이게 내 길이 맞나'고민하는 사이 시간만 성실하게 흘렀다.


결국 그는 전공과 조금은 무관한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 이후 그의 인생은 급격하게 무너진다. 정신과 상담도 받았다. 그의 마음 속 한 켠에는 '하루종일 사진만 찍고 싶다'라는 생각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게 최고이기 때문에...



정신과에서 '우울증 약'을 준다. 먹으면 졸리다. 피곤하다.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축 쳐진다. 얼굴은 잿빛이다. 솔직히 잠도 잘 안온다.



잠을 못 자면 운동이라도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야속하다. 속상하다.


나도 남들처럼 당당하게 대기업에 들어가서 사원증을 목에 걸고 싶다. 내가 제일 속상한데 부모님은 모른다.


사실 우울증 약을 먹는 것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조금 쪽팔리다.



스스로가 바닥의 무수한 타일 중 모난 타일이라고 느껴진다. 부모님께서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그는 자신의 집안 수준에 자신이 안어울리다고 생각이 든다.



고민이다. 때려치울까.



취직 전에도 스트레스인데 실제로 취직을 하고 나니 더 힘들다. 스트레스가 더 커진다. 취직 준비할 때는 대인관계 스트레스는 없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나니 사람관계가 제일 힘들다.



짬짬이 쉬는시간에는 블로그 이웃들이 찍은 사진을 본다. 풍경이 아름답다.


- 이분은 이번주에도 출사나가시네. 너무 부럽다.



그는 생각한다. '내가 찍으면 더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은 연기처럼 금방 흩어지고, 다시 일하러 간다. 퇴근후에는 아무것도 안 한다. 할 힘도 없고, 의욕도 없다. 약을 입에 털어넣는다.



블로그에서 우연히 글을 봤다.


제주도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다. 자신의 제자 한 명을 뽑는 글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뛴다. 이내 진정시키려하지만 계속 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때려치울 수 있을까. 벌써 1년 정도 했잖아. 이렇게 살다가 결혼하면 되지 않을까? 부모님에게는 뭐라고 말하지? 별의 별 생각이 든다. 또 이러다 말겠지.



다음 날 일어나도 생각난다. 제주도에서 즐겁게 사진 찍는 자신이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미치겠다.


아무리 억눌러도 눌리지 않는다. 한 번 폭발한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일단 지원서를 넣어본다. 자신이 대학 때 만든 포트폴리오도 제출한다. 오라고 한다. 대신 제주도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이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데? 걱정이 된다. 그래도 이번에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이제 우울증 약을 먹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회사에 퇴사를 알린다. 부모님께도 이야기한다. 펑펑 울면서 다 이야기 한다. 부모님도 우시고, 그도 운다. 우울증 약을 먹는 것까지 이번 기회에 속 시원하게 말한다.



부모님은 몰랐다면서 미안해하신다. 큰 반대가 있을 줄 알았지만 허락하신다.



며칠 뒤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짐이 많지도 않다. 예전에 샀던 카메라와 옷가지들이 전부다.


막상 가려고하니 조금 두렵다. 그래도 잘되겠지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눈을 감아본다.





몇 달 후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제주도에 간지 한 달만에 우울증 약부터 끊었다. 끊었다기보다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우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에는 생기가 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재밌다.



요즘 그는 제주도에서 '웨딩사진'을 주로 찍는다. 주말에는 풍경을 찍으러 제주도 전역을 누빈다. 행복하다. 진짜 행복을 찾았다. 사실 돈은 대기업에서 받던 것의 반 정도다. 그래도 행복하다. 살 맛이 난다.









친구 군대 선임 썰을 글로 써보았습니다. 그냥 평문으로 쓰는 것보다는 약간의 소설처럼 한 번 써봤습니다.


최근에 친구가 그 분을 봤는데 정말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친구는 너무 부러워했습니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뵙고 싶네요.



자기 일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쫄딱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최근에 본 유튜브에서도 '기상청'을 다니다가 일이 맞지 않아서 식당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민과 얼마나 많은 방황을 했을까요.



그 결단력 또한 본받고 싶어집니다. 일은 우리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 일이 일로 안느껴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예전에는 막연하고 헛된 희망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이따금씩 보입니다. 그들은 지쳐보여도 눈빛만큼은 초롱초롱합니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만큼 매력적인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매력적인 사람인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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