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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Nov 02. 2022

싯다르타...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대학생 때 참 행복이 뭔가 궁금했다. 그만큼 세상 만물과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세상 만물의 이치를 찾으려 매번 도서관에 찾았지만 실패하고 돌아왔다. 인간에 대한 이해도 찾으려 도서관에 갔지만 결국 인간을 더 잘 알게된 곳은 술자리였던 것 같다.




그래도 여러가지 책을 건드려는 보았다. 어느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행복은 '괴롭지 않은 상태!'라는 말이 참 기억에 남는다. 우리 대부분은 행복을 '짜릿하고, 즐거운 순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의 본질은 차분하고 조용한 상태를 말한다.



즐거움을 행복의 기준으로 잡는 순간 행복의 허들이 굉장히 높아진다. 즐겁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즐겁고 정말 기분 좋은 그런 순간은 하루에 몇 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라고 느끼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자주 행복한 비결은 행복의 허들을 확 낮추는 것이었다.




불교에서는 즐거움과 괴로움은 동면의 양면과 같이 붙어있다고 한다. 즐겁기 위해 술을 한 잔 두 잔 더 먹으면 다음날 숙취로 괴롭다. 재밌자고 운동시합이 무리하면 무리할수록 다음날 근육통으로 고통을 가져온다. 연인을 만나는 즐거움은 언젠가 맞이 할 이별의 괴로움을 의미한다.



우리들의 가장 큰 오해는 즐거움 한 쪽만 얻으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즐거움과 괴로움은 찰싹 달라붙어 있으므로 하나만 취할 수 없다. 그러니 즐거움이 행복이 되면 안 된다. 그저 괴롭지 않고 특별히 힘든 일이 없다면 그 자체로 행복하다고 봐야한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을 많이 바꾸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더 없이 행복하다. 행복한 사람이다.







싯다르타를 읽었다.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고, 자주 읽는 책 중에 하나라고 말이다. 읽어보니 왜 그런지 알겠다. 인생의 본질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다 제쳐놓고 가장 먼저 느낀 점은 '나도 다 경험해볼래!'이다. 책에서 말한다.


'필연적으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스스로 맛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고 말이다.



싯다르타는 술과 욕정에도 빠져보고, 큰 돈도 벌어보고, 도박도 해본다. 황금 새장 속의 새의 뻣뻣한 시체를 보고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느낀다. 유희는 윤회라 깨닫고,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훌쩍 떠난다. 더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책이나, 남이 해주는 말로 판단하지 않았다. 실제로 자신이 경험해보고, 맞다와 아니다를 결정했다. 큰 돈도 벌어본 사람만이 '돈은 행복에 큰 영향이 없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신적으로 성숙하신 분들께서 해보지 않고도 깨달은 것은 존중한다. 하지만, 신포도 이야기처럼 먹지 못하니 괜히 심술부리는 짓은 하지 않을테다. 멋이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조급할 필요가 없구나!'였다. 싯다르타도 중년의 나이에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른다. 그도 그런데, 내가 뭐라고 벌써 깨달음을 얻거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겠나. 절대 불가능하다.



나를 포함한 요즘 친구들은 빨리 성공하고, 빨리 돈 벌고, 빨리 은퇴하고, 뭐든지 빨리빨리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하고싶다고 해서 다 되지 않는 것이 또 사람 사는 세상아니겠는가. 부동산도 그렇고, 직업적 커리어도 굳이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 꾸준히는 해야한다. 부동산 세계에도 절대 발을 떼지 않고 꾸준히 책읽고, 꾸준히 복습하고, 꾸준히 임장하고,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조급해하지 않는다고 오늘 하루 헐렁헐렁하게 산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세번째는 '나에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건 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나 자신'에게 너무 집착하다 보면 내가 너무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할 것만 같다. 핵심은 뭐든지 내가 원하는대로 잘 풀리면 이게 아무 상관이 없지만,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들이 하나둘 생기면 스트레스로 변한다. 그 스트레스는 자존감을 갉아먹게 되고, 결국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조금 오바해서..^^)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본인도 스스로에 대한 집착을 탁! 놓게 된 계기가 있다. 그것은 유튜브의 한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적성과 진로는 어차피 평생 찾는거에요!'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지 30년밖에도 안되었는데 나는 이걸 잘하지. 나는 이게 맞지. 이 직업이 나에게 맞지 라는 말은 참 어불성설이다.



내가 뭘 잘하는 지는 해봐야 아는 거고, 내가 잘 하고 있는지는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자꾸 하면서 뒤돌아본다. '내가 잘 하고 있는게 맞나. 이 길이 아니면 이거 시간낭비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본인은 최근에 이런 생각을 많이 줄였다.



어차피 부자, 행복한 사람으로 되어가는 여정에 있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안과 걱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불안과 걱정때문에 갑자기 노선만 바꾸지말자.라고 항상 다짐한다. 가끔씩은 노트에도 쓴다.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도 결국 처음 시작은 '자아'로부터 출발해서 무아의 지경에 이르른다. 모든 것이 나였다. 세상 만사는 뭐든지 연결되어 있기에 모든 것이 나 아닌게 없는 것이었다.








네 번째는 전 재산을 돈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에 조금 충격이었다. 싯다르타는 말한다. 자신의 전 재산은 단식, 인내, 사고라고... 쉽게 말해, 자신은 안 먹고, 생각하고, 참는 것을 잘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성공한 사람들이 이 책을 자주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잘 하고 싶지만 잘 안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책을 보면서 많이 생각하고, 잘 판단하고, 운동해야할 때는 좀 참고 운동하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좀 참는 것이 어찌보면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단식, 인내, 사고'라고 말하는 것도 왜인지 모르게 참 멋졌다. 나도 나중에 써봐야겠다...



결국 싯다르타는 중년에 관능적 쾌락, 안락학 생활, 부귀를 모두 던져버리고, 다시 어린애가 되어서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강물을 보며 그는 이것을 깨닫는다. 이 강물이 어쩌면 헤르만 헤세가 싯다르타에서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 매개체로 보였다. 아마 핵심은 '강에는 오로지 현재만 있다'가 아닐까?



싯다르타도 강물을 보며 시간의 흐름, 인생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바데수바라고 뱃사공에게도 많이 배운다. 즉, 그는 강에게 모든 것을 배웠다. 주말에 한강에 한 번 가서 물끄러미 쳐다봐야겠다. 깨달음이 올까...?





싯다르타는 산스크리트어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리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불교의 끝은 해탈이다.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괴로움과 즐거움의 굴레에서 벗어나 지극하게 안정되고 평화로운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수행해도 그 정도 경지는 이르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욱 하는 면도 많고, 절제심을 잃고 즐거움과 쾌락을 좇기도 한다. 하지만, 싯다르타를 읽었기에 이제는 자기 통제에 조금 더 신경을 쓸까 한다. 먹고 싶어도 조금 참고, 책을 보고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운동하기 싫어도 1회만 더 해보기..



대학생 때 한 번 읽고, 두 번째 읽었지만 아직 싯다르타에서 하고 싶은 말이 뭔지도 모르겠다. 솔직한 심정이다. 책은 얇은데 뭔가 많이 가지고 있다. 확실하다. 내년 겨울즈음에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40살이 되어도 꼭 읽어봐야겠다. 아마 꽂히는 문구가 달라지고, 이해의 폭도 달라질거라 믿는다.



싯다르타.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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