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동안의 기록이다.
친구 가게를 도와주었다.
친구 가게는 분식을 만들지만 월 매출 5000만원.
그는 나의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했고,
나는 돈이 필요했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과
'훗날 내 사업, 내 장사를 하게 될 수도 있으니(?) 좋은 경험을 쌓아보자'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 사업하려면 '알바'부터 시작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 집은 분식을 다루는 집이었다.
나의 역할은 여섯 일곱 시간 내내 서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첫 날이 기억난다.
'아, 그냥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집에 갈까'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계속 튀김도 튀겨야했기에 손에 기름에 저려졌고,
가스와 열기 때문에 가끔씩 어지러워지기도 했다.
새벽 1시에 퇴근을 하는데
집에 갈 때 가끔씩 어지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회사를 퇴근하고 알바를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했나 싶기도 하다.
친구집은 10평 남짓한 곳에서 월 매출 5천만원을 올리는 곳이었다.
말 다했다. 쉴새없이 주문이 들어온다.
지금은 일을 하지 않지만
가끔식 '배달의 민족 주문! 요기요 포장! 땡겨요 포장! 쿠팡 잇츠' 등
각종 배달 알림음이 환청처럼 들린다(조금 오바...)
사실 시작은 '송과장님' 덕분이었다.
송과장님은 평일과 주말에 퇴근하고 알바를 2년동안 했다고 한다.
심지어 주말에는 새벽 2~ 3시까지 재즈바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새벽4시에 일어나서 아침에 출근을 했다고 한다.
그는 심지어 대기업에 다니지만 알바를 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지금 100억대 자산가가 되었다.
실제로 해보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글로도 느꼈지만 해보면 더욱 절절하게 알 수 있다.
그 생활이 얼마나 빡세고 힘든지...
결국 나도 따라했고, 일단은 지금 소강상태다.
지금부터는 이제 30대에 분식을 만들면서 느낀 소회다.
목표는 힘든 걸 잊제 만든다.
나는 급하게 돈이 필요했고, 그렇게 친구를 도와주게 되었다.
출퇴근 거리가 멀다. 약 50km정도 남짓이다.
차를 타고 가면 1시간이고, 버스를 타고 가면 두 번 갈아타서 1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지각 하지 않으려면 7시에 광역버스를 타야한다.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근데 알바를 수목토일을 했다. 그래 토요일은 그렇다고 치자.
수목일은 다음날도 출근을 해야했다.
1시에 퇴근하면 씻지않고 자도 1시 30분이다. 4시간 좀 넘게 잔다.
물론 버스에서 좀 더 잔다. 직장에서 눈치도 보면서 낮잠을 잔다.
하루종일 조금 멍한 느낌이다.
그래도, 단 하루도 직장과 알바에 지각한 적은 없다.
심지어 주말에는 시간 될 때 임장도 했다.
그렇게 송파, 위례, 구성남, 판교, 분당, 용인 등을 임장했다.
조금 빡셌다. 피곤했다.
그래도 전국 임장이라는 목표가 있으니,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니 하루하루 걸어나갔다.
목표는 중요했다.
내가 왜 움직여야하는지,
내가 왜 지금 6시에 일어나야 하는지,
내가 왜 지금 여기서 떡볶이를 만들고 있는지,
말해준다.
부자로 가는 길은 거친 파도 위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파도와 바람에 이리저리 휘청이는게 당연하다.
부자로 가는 길에 걱정과 불안이 있는 것과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불안과 걱정때문에 가던 길을 갑자기 바꾸고는 한다.
내가 가는 길에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가보자.
처음에 잘 안되는 거야 당연하지.. 그래도 조금 버티고 해보자!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알바를 한다는 것은 내가 '레버리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장은 직원을 통해 레버리지를 한다.
내가 일하는 동안 사장은 쉬고,
나와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강도로 일하지만
더 많은 돈을 가져간다.
알바를 하면서 피부로 느낀 것은
내가 '레버리지'를 하지 않으면 내가 '레버리지'를 당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부분은 오늘도 '레버리지'당하고 있다.
그럼 내가 대표가 되고, 사장이 되면 되지 않는가.
누가 칼 들고 협박하면서 '직원 해라!'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장과 직원의 본질적인 차이는 뭘까.
정답은 '용기'다.
사장과 대표들은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 용기는 때로 책임을 요구한다. 이 집도 장사가 안 될 때는 월 천만원 매출도 못올렸고, 힘들 때는 4개월 정도 적자를 봤다고 한다. 즉 일을 해도 마이너스였던 것이다.
그래도 월세는 내야 하고, 수도세와 전기세 등 공과금은 내야 하고, 자기가 사는 집 월세는 내야 하고, 밥은 먹어야 하고,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한다. 이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말이 쉽지 실제로 겪으면 머리가 뭉텅뭉텅 빠질 수도 있다.
그 친구도 실제로 그 때 때려치울까 말까 진지하게 매일 고민하고
밤을 새운적도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버티고 버텨 지금 월 매출 5000만원까지 찍는 요식업 대표가 되었다.
일단 나는 반 년만 일하고 그만한다고 했다.
3월 4월은 직장이 바쁠 때이기 때문이다.
조금 안정이 되면 다시 일을 알아봐야 한다.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만 벌면 안 된다. 젊음이 아깝다.
뭐라도 배우고 싶고,
놀 때는 열심히 놀고 싶고,
부동산 투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다.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은 '자동화, 시스템화'를 하는 것이다.
사업으로 자동화를 시키던지
투자로 자동수익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을 하지 않고도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게 부동산 월세수익 될 수도 있고,
달러 투자가 될 수도 있고,
배당주가 될 수도 있고,
나만의 사업이 될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
알바를 하면서 두 번째로 느낀 것은 '대체가능성'이다.
내가 그만둔다고 하고 나서 새로운 알바들이 지원했다.
결국 두 명을 뽑았는데 한 명은 42살, 한 명은 18살이다.
내가 하던 일은 이틀만에 그들로 대체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그 누군가에 의해서 가볍게 대체될 수 있는 그런 자리였고,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특별하게 가진 기술이 없다면 특별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요즘은 경험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나를 다른 사람과 차이를 만든다.
내가 가진 경험은 부동산 매수 경험, 폭락장 경험, 부동산 전국 임장 경험 등이다.
나만의 컨텐츠가 되는 것이다.
훗날 이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다.
똑같은 실수를 하는 것을 막아주고 싶고,
초보자들은 부동산 투자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도와주고 싶고,
좀 더 좋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누군가에게 대체되지 않으려면 나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나의 무기는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인생 전체에 걸쳐서 내가 갈고 닦아야 하는 나만의 한, 두개의 무기는 뭘까.
부동산
글
그림
대학원...
다양한 생각이 든다. 다양한 생각도 중요하지만, 잘 계획해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번주 임장은 어디로 갈지 얼른 정하고, 빨리 전화 임장도 돌려봐야겠다.
사실 '저 고생한 썰 풀어요'라는 글을 쓰기보다
반 년동안 고생해서 얻은 나의 인사이트를 나누고자 쓴 글이다.
솔직히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아직 더 가야 한다.
이 글은 중간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그래도 자부심을 느끼는 포인트는
고민을 방구석에서만 하지 않고, 일단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깨지고, 깨지고, 깨지면서 배웠다.
확실히 몸으로 배운 건 오래간다.
사실 고생은 안 하는게 제일 좋다. 안 하고 깨닫는게 똑똑한 사람이다.
적당하고, 감당 가능한 고생이 그 다음으로 좋다. 평균은 하는 사람이다.
나는 조금 모자라기에 오늘도 몸으로 깨지면서 배운다.
또 까먹을 것 같아 글로 남겨본다.
끝났지만 후련하지는 않다.
끝이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은 계속 새로운 시작의 연속이다.
하루하루가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도 든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서 가지 못하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에 이르지 못한다.
결국 지금을 사는 것이 정답이다. 요새 많이 느낀다.
지금 좀 웃고, 지금 즐겁게 사는 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다. 아니 우리 모두가 가야할 길이다.
지금 경제적으로 힘든 분들이 많다. 특히 나처럼 영끌족들은 쉽지 않다.
그래도 뚜벅뚜벅 가야한다.
완벽한 때는 오지 않고, 혼란은 우리 삶과 평생 따라다닐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한다.
오늘도 ! 내일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