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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May 31. 2024

작품으로 살 것인가, 제품으로 살 것인가

결국 언젠가 한 번은 선택할 때가 온다.

작품은 세상에 하나 뿐이다. 

제품은 모양만 똑같은 것이 셀 수 없이 복제 된다.



작품은 영혼과 감동이 느껴지지만

제품으로 얻은 감동과 여운은 채 한 달이 가지 않는다. 



작품은 다른 작품과 비교할 수가 없다. 애초에 비교 자체를 하기가 힘들다.

제품은 쉽게 비교당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도태된다. 새로운 것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작품은 유행을 만든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면 유행을 만들 때가 있다.

제품은 유행을 따라간다. 인기 있고, 사람들이 좋아라 하는 것을 우루루 따라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고유한 작품 같은 삶을 살 것인지.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삶을 살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이 또한 정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인생에 떳떳하고, 공허하거나 허무하지 않다면 좋은 선택인 것이다.

단,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동은 금물이다.




나는 이때까지 제품의 삶을 갈망했었다.

제품의 삶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전문직, 사업.. 돈 많고, 시간도 많고, 명예도 있고, 다른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벌고, 남들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남들보다 더 주말에 멋진 음식점을 가고, 남들보다 더 비싼 음식을 먹고, 남들보다 더 고급스러운 숙소에서 쉬고.. 

내가 뭘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일단 이정도는 해야지, 남들이랑 비슷하게 혹은 더 잘살아야지. 그래야 열심히 사는 것이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완벽하게 제품의 삶이다. 지금도 제품의 삶이 부러울 때가 많다. 나는 마트에서 스시 먹을 때 오마카세 간 친구가 부럽긴 하다. 하지만, 나는 마트 스시에도 충분히 만족한다. 구질구질하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강남의 스시집도 좋지만, 쿠우쿠우로도 충분하달까. 궁상이라해도 어쩔 수 없다. 


제품의 삶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공허함이 온다고 생각한다. 일생에 한 번은 온다고 생각한다. 나도 제품의 길은 지금은 좋아보이지만 종국에는 '내가 뭐하러 이렇게 열심히 살았지'라는 포인트가 올거라 생각한다. 인간은 결국에는 죽고, 애초에 취향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 속에 하나씩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해보고 싶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다. 생업으로 인해 발현이 안되었다면 빅터모지스 할머니처럼 70세에 붓을 들고 100세까지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작품은 작가의 진심이 들어가있다. 작품은 진심일 때 작뭎이 되기 때문이다. 연습도 많이 필요하다. 수 많은 연습장에 연습을 하고 나서야 작품이 만들어진다. 작품은 본인만 만족하면 된다. 남들이 인정해주면 때댕큐다. 죽고나서 인정받는 작품도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정 못받으면 어떤가. 내가 그걸 하는동안 즐겼으면 됐다. 그거면 반은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삶을 꿈꾼다. 제품의 삶을 욕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작품의 길로 가고 싶을 뿐이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제품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욕먹을 수도 있고, 비아냥대는 것을 견뎌야 할 수도 있다. 상관 없다. 그들은 불안해서 그러는거니까... 나는 하는데 왜 너는 나랑 같이 안하는게 불안해서 그런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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