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만남은 크던 작던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람이 다녀갔다. 응대했다.
작가들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이성, 연륜, 상대를 감동시키는 감성의 힘, 겸손함속에 숨어있는 자신감 같은걸 느낄수 있었다. 괜히 유명해진게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중학생때 백일장에서 학교대표도하고 주변에 글가지고 장난쳤다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분들에 비하면 올챙이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를 하고 초대에 응한건 아마도 작가들에겐 순진한면이 있어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단순하고 순진한면이 서로 비슷했기 때문인것 같다. 순진하고 단순한 호감들은 나이와 직위와 여러 조건들을 어렵지않게 넘을수 있는 것이다. 가령 대자연앞에, 인생의 진리나 유의미 앞에 사람들의 명예나 직함이나 부귀같은건 한낱 바람에 날리는 먼지나 보푸라기, 혹은 아지랑이 같은것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람들의 삶과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얘기하고 풀어줄수 있어야한다는 원로작가의 연륜이깃든 말이 와닿았다. 몇마디 말을 들으며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었기에 따로 질문을 안했다.(사실 마음은 있었지만 바빠서 미리 미팅준비를 못했다. 사는것이 준비라면 유일한 준비였다) 나의 혈거나 폐칩과같은 생활에 대한 비판도들었다. 좀더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수 있는 길이있는 공간에 자주 머물러야한다는 것이다. 독자없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라고. 나로선 뼈아픈말들을 여러가지 하셨다.
까마귀들아 어떻게 생각하니 내가 정녕 그래야할까
아무튼 나이가 무색하게 총기 빛나는 말들에 감탄하고 있을무렵 아무리 대작가라도 아내분한테는 안된다는걸 알게되었다. 유창유수 물흐르듯 잘나가다가 역시 작가인 아내의 몇마디 핀잔에 내가 언제그랬냐며 당혹스러워하며 쩔쩔매셨다. 대작가보다 더 대단한게 아내란 존재였던 것이다. 두사람을 함께 초청한것이 신의한수였다는 생각이들었다
책을 두어권 선물받고 조만간 더 선물받기로 하였다.
오두막에서 촛불켜고 노는것 말고 전기가 들어와서 밝은 전등을켜고 책을볼수 있는 공간을 가을에 구해야할것같다. 작가를 한번 만났다는 이유로 올해안에 최소 30권이상책을 읽어야할것같다.
아무튼 그렇게 차도마시고 과일은 깎지않고 통째로먹는 과일을 몇개 내놓고 어색하게 사진도 두어장찍고 한두시간 차담후 헤어졌다. 먼길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선배작가들의 좋은말씀을 들은것도 좋았지만 그것보단 이성과 감성이 살아있는 멋진 작가님들과 함께 차를 마셨다는 사실 자체가 더 좋았다.
만남은 그렇게 나를 변화시켰건만 그분들도 나에의해 변화된점이 있으실까? 아마도 약간은 있을것 같다. 그분들은 예리한 인생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젊고 풋풋한 (브런치)작가의 단순함이라던가 태연함 겸손속에 숨어있는 호기같은데서 뭔가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유능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배우는 사람이니까. 연륜이라던가 지식과 노하우 모두 출중한 유명작가들이지만 까마귀의 엉뚱한 울음소리를 사랑하는 나에게 뭔가 느끼지않을수 없어서 굳이 초라한공간까지 찾아와본 것일거다.
그러나 아직 모른다. 현재가 파악되는건 보통 시간이 지나고 나서다. 우리가 한 말들이 무슨뜻인지 무슨의미를 갖는지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나서야 점차 알게될것이다.
만남은 그렇게 여운이 넘치면서 단순하지가 않은것이다.
들은말, 배운말들은 행동을 통해 비로소 이해가된다. 직접적인 실천과 행위가 따르지않는 말은 공허하고 무슨뜻인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용의 거꾸로난 비늘을 건드리듯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행동하는가운데 비로소 이해가 가는것이다. 손님들은 갔지만 미팅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정리가 잘안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