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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지원

by 까마귀의발

개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수백만명이 대규모 사회적기아인 기근을 맞고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두개의 경로로 식비를 보내고있다. 며칠새 개이스라엘군대는 어느 국제단체의 지원식량 500톤?을 불태웠는데 그건 현재 몇달사이에 굶어죽을 가능성이 UN분류기준 5단계로 가장높은 가자지구의 50만명의 어린이들이 몇주이상 먹을수 있는 양이었다. 이렇게 국제단체들을 통한 원조 또한 쉽지않기 때문에 지원루트를 몇개로 분산해서 산발적으로 지원금을 보내고 있다.

지원금을 한번에 안보내는건 모금을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십명의 지인들을 상대로 일주일간 팔레스타인 지원모금을 시작했다. 전쟁과 기근.기아를 맞고있는 현지인들의 사정은 모든 학살전쟁이 그렇듯 비참하고 수많은 생명들이 생사기로에서 지푸라기라도 필요한 상황이기에 SNS에서 이곳에서만큼 다소 조용히 지내고있는, 하지만 줄곧 팔레스타인을 응원하는 메세지를 내고있는 나에게도 여러건의 지원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돕기엔 나의 생활비는 한정되어있기에 50~100달러씩 20번에 걸쳐 지원하자는 생각에 모금을 시작했다. 이미 몇몇 지인들이 모금에 응했고 난 그들의 선의에 감사하고 내 지인들의 순수함과 생명을 존중하는 숭고함에 감탄하며 모금액 사용내역과 계획을 답장으로 준비중이다.


전쟁에 대해 말하자면 사람들끼리 죽고 죽이는 일이라 슬프고 비극 아닌 내용이 없겠지만 이번 개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보며 20세기 한국이 겪었던 독립군들의 전쟁과 625 남북전쟁이 생각났다. 안중근 의사가 당시 일본의 천황을 제외한 실질적 최고권력자였던 이토히로부미를 각고끝에 사살하고 윤봉길 의사가 일본의 현대로치면 합동참모총장과 해군참모총장 등 수장들을 폭탄으로 사살한것 등 임시정부와 독립군들의 독립활동 노력은 한국의 독립을 실질적으로 앞당겼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개일본이 핵맞고 무조건 항복했더라도 당시의 열강인 미국과 소련은 한국의 자치독립을 인정안하고 미국이나 연합국의 휘하에 두려고 했을수도 있다. 그들은 독립군이나 임시정부의 활동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자기들도 일본에 침략당해 나름 독립운동을 하긴했지만 당시 강대국이었던 일본의 군대를 뚫고 그 핵심수장들을 총살하거나 폭탄으로 사살한다는건 엄두도 못냈었기에 한국의 독립군과 임시정부 특히 안중근과 윤봉길에 커다란 감동을 받은이들이 있었고 당시 미국에 대해서도 목소리가 있던 중국이 개일본이 무조건항복 당시 한국의 독립을 인정해줘야한다 말을해서 쉽게 독립이 인정되었던 것이다.

나는 고딩때 국사점수가 100점만점에 10점이나 20점대였지만 지금와서보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나만큼 잘 아이들에게 가르쳐줄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는것 같다. 비록 한국의 역사가 고조선 단군왕검까지 거슬러올라가면 수천년으로 유구하긴 하지만 현재 체제의 대한민국이 건국된날은 몇년 몇월 며칠가?

이 사실에대해 우매화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1948년8월15일로 잘못 알고있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완전히 잘못알고 있는거다. 사실 현재의 대한민국은 1919년 4월11일에 수립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 그날인 것이다.

한국을 이해하려면 625전쟁 또한 알아야하는데 한국사회는 최근까지도 사회주의에 대한 제대로된 평가나 이해가 매우 어려웠던것이 가령 내가 아는 작가님은 사회주의에 대해 긍정은 아니더라도 역사적 관점에서 일부 따뜻한 시선으로 글을 썼다가 십수년이상 검찰과 경찰에 불려다니셨다. 아무튼 사회주의의 평등사상은 젊은날의 이상을 가진 누구에게나 매혹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고 그 이상의 다름과 관련된 이념전쟁으로 인해 서로를 죽고 죽였던 슬픈 세계대전이 바로 625이다. 지금도 625때 격전지였지만 국립공원으로 묶여있어 개발이 되지않은 원형보존된 현장을 간혹 지나다보면 사회주의 영웅과 국군 영웅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던 비극이 전해져오며 어딘가 우울하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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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새 아침과 밤에 날이 선선해지고 있다. 위와 같은 전쟁비극으로 인한 우울함과 쓸쓸함 말고 호젓한 가을달밤의 한적함과 쓸쓸함은 요샌 잘 느끼지 못하는것 같다.

나는 어느새 너무 많이 컸다. 사회위기에 대응하여 모금을 진행하여 성공시킬 정도로 1020때는 없던 사회적위치가 생겼고 그만큼 부담이되기도 한다. 선구독을 눌러주시는 작가님들께는 죄송하지만 난 이미 20여분 이상 이곳에서 (이곳에서 글을)아는 작가님이 생겼다는것도 충분히 많은것처럼 느껴지는 상태다. 처음 계획은 좋아요 10미만이었는데 요새들어 종종 처음의 계획을 초과한 것이다.


102030때 피어오르는 뭉게구름같던 심리는 요새는 강우형태로 변하고 있는것 같다. 될수있으면 안알려지고 가능하면 최소의 사람만 알고 내가 가졌던 어설픈 성공과 지능과 능력, 호기는 빗방울로 변환시키고 싶다. 아마도 가을이 다가와서인지 철들고 있는것 같다.


주어진 것들, 일어났던 현실들에 만족하거나 최소한 받아들이고 거품을 최대한 빼고 나아가기로 밤에 한번더 다짐해본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여야하는 가자지구의 수백만 사람들도 있는데 난 그보단 훨씬더 낫지않은가. 아무튼 다짐을 핑계로 술한잔하며 소리내서 시낭송하고 자야겠다.

이전에 모의법정 모임같은건 몇개월사이에 하기가 싫어졌다. 모임을 하게된다면 시낭송회나 별똥별보기모임같은걸 하고싶다.(낭송회는 새들과 함께 별보기모임은 들개나 들냥이들과 함께 하게될 가능성이 크다.)


낙화-이형기

낙화- 이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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