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완주가 아니라는 사실이, 여전히 걷게 한다

by 언어프로듀서


제주 올레 여행자 센터 완주 기념 포토존 앞에 섰다.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완주증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설 수 없었다. 대신, 완주할 그날을 잠시 그려보며 발걸음을 돌렸다.


4박 5일 일정으로 제주 올레를 찾았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남아 있던 세 개의 섬 코스를 모두 걷는 것이었다. 우도(1-1코스), 가파도(10-1코스), 추자도(18-1코스). 이 세 곳만 걸으면 올레 완주였다.


3년 전 ‘5년 안에 걸어서 제주 한 바퀴’라는 목표를 세웠을 때는 이 섬들이 이렇게 까다로울 줄 몰랐다. 육지의 올레는 그저 걷기만 하면 됐다. 비행기 예약하고, 숙소 잡고, 신발 끈 묶고 나서기만 하면 걸을 수 있었다. 섬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우도는 순조로웠다. 비가 조금 내렸지만 배는 떴다. 성산포항에서 우도까지는 단 15분. 바람은 거셌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첫 번째 섬을 마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좋아. 첫 번째는 끝났다.’


이틀째 아침,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가파도 역시 무사히 걸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운진항에 도착하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너울파도가 심해 오늘 가파도 배편은 모두 결항입니다.”

그제야 알았다. 날씨가 맑다고 해서 배가 뜨는 건 아니라는 걸. 섬으로 가는 길은 하늘만 보고 결정할 수 없다는 것도. 푸른 하늘 아래서 허탈하게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다음 날 바람이 잦아들었다. 하루를 기다린 끝에 만난 가파도의 풍경은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가파도의 배 운항을 경험하고 나서야 추자도 배편을 제대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제주항에서 배로 두 시간이 걸리고, 하루에 배편은 한두 번 뿐이었다. 성수기에는 예약 없이는 갈 수 없는 섬이었다.

행정구역상 제주도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깝게만 여겼던 나의 착각이었다. 추석 연휴, 추자도로 가는 배편은 모두 매진이었다.


‘왜 올레 코스에 이렇게 들어가기 어려운 섬을 넣어놨을까.’ 잠시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추자도에는 두 개의 코스가 있어 하루 만에 걷기엔 무리가 있었다. 날이 좋아 들어갔다가 다음 날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잦다고 했다.


올레의 복병은 추자도였다.

그제야 올레가 완주증은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창밖을 보았다. 제주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완주까지 한 걸음 남겨두고 돌아간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길도 결코 쉽지 않았다는. 비 맞으며 걸었던 날들, 더위에 헐떡이던 순간들, 몸이 따라주지 않아 주저앉았던 시간들. 그 모든 날들이 쌓여 여기까지 왔다는 것.


마지막에 남겨진 이 섬은 어쩌면 이 여정에 꼭 필요했던 관문인지도 모른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나를 걷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