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에서 마흔을 건너고 있다

by 언어프로듀서



마흔이 되자, ‘마흔’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 <마흔에 읽는 니체>,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도, 신간 코너에도, 도서관 서가에도 어디에나 마흔이 있었다.


‘왜 다들 마흔에 대해 이렇게 말이 많은 걸까.’


그 질문의 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이르면, 외부를 향해 있던 시선이 서서히 내부로 돌아온다. 그전까지는 남들이 원하는 것, 사회가 요구하는 것, 가족이 기대하는 것 등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런데 마흔을 지나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내 안에서 강하게 꿈틀거렸다. 내 안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을 무렵, 우연히 올레에 관한 책을 만났다. 제주 올레에 길을 낸 서명숙 작가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읽으며, 걸음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끝없는 길을 묵묵히 걸으며 고통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그 여정이 이상하게도 깊이 와닿았다.


‘나도 저렇게 걸어보고 싶다.’


걷는 행위를 통해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자유를 찾고 싶었다. 산티아고는 못 가더라도, 제주 올레는 꼭 걸어보자 다짐했고 이내 행동으로 옮겼다.


마흔에 만난 제주 올레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한 원동력이자, 내 안의 꿈을 다시 흐르게 해 준 운명 같은 길이었다. 걷고 또 걸으며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수없이 되물었다. 무용한 것과 마주했고, 존재의 본질에 질문을 던졌다. 그 길 위에서 마침내 나 자신과 마주했다.

먹고사는 일에 허덕이고, 시끄럽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다 보니 어느새 마흔에 다다라 있었다. 수많은 이름과 역할, 책임의 무게를 짊어진 채 안정과 불안을 동시에 품고 살아가면서 이 삶이 나를 위한 것인지, 타인을 위한 것인지 그 경계가 흐려지기도 했다.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모순 속에서 올레는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마흔이라는 시기에 만난 제주 올레를 통해 삶의 주체성을 회복했고, 동행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진짜 의미를 배웠다.


그렇게 올레길 위에서 지금도 주체적으로 걷고 있다.

그 걸음은 삶의 무늬가 되고, 인생의 방향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