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된, 사람의 결

by 언어프로듀서


마흔이 넘어서며 자주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결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결이 다르다는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독서 챌린지에 참여한 적이 있다. 운영자는 꽤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해야 할 말의 핵심만 간결하게 전했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진행했다. 불필요한 말로 채팅방을 채우지 않았다.

그 방식이 나는 좋았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할 일을 분명히 하는 태도가 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같은 상황을 겪은 친구는 상처를 받았다. “조금만 더 부드럽게 말해줄 수는 없을까? 너무 차갑잖아.” 친구에게 그 운영자는 마음을 살피지 않는 사람이었다.


전달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온도가 달랐을 뿐이다. 같은 말을 듣고도 누군가는 효율적이라 느끼고, 누군가는 차갑다고 느낀다. 누군가에게 배려인 침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이 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결의 차이다.



어릴 때는 그걸 몰랐다. 관계란 맞춰야 하는 것이라 여겼고,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이 미덕이라고 믿었다. 친구가 많아야 잘 사는 줄 알았고, 채팅창을 가득 채워 떠들어야만 우리의 우정이 증명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마흔을 넘기며 달라졌다. 소통하는 친구가 많다는 사실보다, 내 안의 에너지가 유한하다는 걸 먼저 알게 됐다. 모든 관계에 같은 힘을 쏟을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그래서 관계를 선택하게 됐다. 결이 맞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어 졌고, 마음이 맞지 않는데도 애써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는 관계를 분별하는 일이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안다.


물론 결이 맞는다고 해서 한 사람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수는 없다. 자라온 환경도, 기질도, 사고방식도 다르다. 늘 깊이 공감하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아주 가끔, 몇 마디만 꺼냈을 뿐인데 맥락과 행간까지 짚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 그럴 때면 반갑다. 흔치 않은 만남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척박한 직장 안에도 그런 선배가 한 사람 있다.

어제 점심시간, 카페에 앉아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놓았다. 회사 일이 많아지며 읽고 쓰는 시간이 줄어들고, 그 균형을 붙잡으려 애쓰다 보니 몸이 아프고 마음이 부정적으로 기울어졌다는 이야기, 친구와 풀리지 않은 감정까지 겹쳐 더 힘들어졌다는 이야기였다.


말을 꺼내고 나서야 후회가 스쳤다. 괜히 약한 소리를 한 건 아닐까 싶어서다. 하지만 선배는 내 말을 끊지 않았다. 조용히 눈을 맞추며 끝까지 듣고는 말했다.

“그 감정, 이상한 거 아니야. 지금 상황에서 그 정도 흔들리는 건 너무 정상적이야.”

그 한 문장에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가 사라졌다.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왜 힘든지를 증명할 필요도 없어졌다. 이어진 말도 단순했다.

“그건 네가 이기적이어서도, 부족해서도 아니야.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모든 이야기를 다 하지 않았는데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생각은 정리됐다. 무엇보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서 산다. 말해봤자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에 입을 닫고, 혼자 삼키고, 혼자 견딘다. 그래서 더 외롭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세상에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감각, 누군가는 내 편이라는 안도감이다.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많은 사람보다 진짜로 통하는 단 한 사람이 삶의 버팀목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관계는 더 어려워지고, 만나는 사람을 정리할수록 그런 사람은 더 희귀해진다.


그러니 지금 곁에 결이 맞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관계는 이미 충분히 귀하다. 이런 인연은 생각보다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어쩌면 이 글도 그런 한 사람을 이미 곁에 두고 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 쓴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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