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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y Today Jan 27. 2020

봉쁘앙이란 무엇인가


"선물 받은 거 교환하러 왔는데요."

"네. 고객님. 가격 확인하겠습니다. 원피스는 25만 9천 원이고 토끼 인형은 저희 매장에 없어서 확인이 안 되네요."


이것은 두 뼘 짜리
아기 여름 원피스 가격이다.


그렇다고 뭔가 엄청난 게 달린 것도 아니고 소매도 없는 그냥 민소매 원피스다.


가격을 듣고 순간 놀라서 멈춘 내게 점원이 하얀색 카디건을 보여주며 비슷한 가격대라고 권한다.

빨간 앵두가 있는 손바닥 만한 하얀 카디건.


앵두 개수만큼 숨을 몰아 쉬고 옷걸이와 진열대 위에 놓인 옷들을 훑어본다.


"저희 시그니처가 자수랑 앞에 이 무늬거든요. 구입하신 원피스랑 비슥한 느낌이고 이건 37만 5천 원이네요."


소매 있는 원피스도 바꾸려면 10만 원을 더 내야 한다. 10만 원은 한 달 분유 값.


많이 큰 사이즈로 바꿔서 오래 입히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예정에 없는 큰 지출을 할 수 없어서 딱 한 사이즈만 더 큰 게 있다는 선물 받은 것과 똑같은 원피스를 가져왔다.


3번 입으면 입을 때마다
8만 원을 쓰는 건가


돌 까지는 정말 식물처럼 무럭무럭 자라는 시기라서 어지간한 옷은 한 달 넘게 입기가 어렵다. 그래서 물려받거나 두 세 치수 큰걸 사서 입힌다. 지금까지는 선물 받고 친구랑 가족들한테 물려받은 걸로 충분해서 내가 직접 아기 옷을 살 일이 없었다.


때문에 아기 옷 브랜드라고 해봐야 나 어릴 적에도 있던 아가방 정도만 알고 그것도 어느 정도 가격인지 감이 없었다. 막연히 아기 옷은 게다가 백화점 아기 옷은 비싸지라는 감만 있었는데 이번에 선물 받은 옷들이 다 딱 맞아서 날 잡고 모두 바꾸러 온 덕에 세상 물정을 알 게 됐다.


같이 온 동생이 주차를 하는 동안 교환을 모두 마쳤다. 봉쁘앙은 한 치수 크게 나머지 브랜드 옷들은 두 살까지 입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것으로 바꿨다. 다른 옷들도 충분히 비싼 가격이지만 봉쁘앙 덕분에 이 정도면 합리적인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며 동생과 만나서 백화점 꼭대기 밀탑에 갔다.


"너 봉쁘앙 알아?"

"응. 제일 비싼 아기 옷이잖아. 프랑스 거."

"나만 몰랐나 봐. 가격 듣고 놀랐는데 더 놀란 건 그 매장만 사람이 제일 많더라."


식품 매장 말고 백화점에 온 게 언제인지 기억이 없다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도대체가 다들 이런 비싼 옷을 그것도 몇 번 입히지도 못할 걸 산 단 말인가 놀라다가 그래도 팥빙수 집은 알 던 그대로라서 왠지 위안이 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남편한테 이렇게 비싼 걸 그냥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선물 준 남편 친구가 워낙 잘 살기도 하고 그 집 아이들은 벌써 중학생이라고 해서

우선 부자라니 좋겠구나 그리고

우리도 같은 걸로 선물해줘야 하는 일은 없겠구나 싶어서 다행이구나 생각했다.


오늘의 다행은 고마운 친구가 이미 백일도 돌도 지난 학부모라는 것, 오늘의 불행은 아기 원피스에서 아파트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높은 차이를 느낀 것.


차라리 모르고 지나갔으면 좋았겠다 싶지만 언제나 그렇듯 충격은 포문을 열 뿐. 이게 아마도 시작이 되어 차이가 계속 높아질 것이다. 오히려 봉쁘앙은 생활비로 크게 무리하면 한 번쯤 이벤트로 경험할 수 있는 일이겠지.


이제부터 영어 유치원, 영어 캠프, 사립학교, 사교육, 유학......


그런 거 상관없이 봉쁘앙도 몰랐던 시절처럼 앞으로도 모르는 채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안만큼 보인다고 이제 나도 보면 얼만지 알아버리는 눈을 갖게 되었다.


할 수 없는 거라면 알지 못하고 싶다
들어갈 수 없는 거라면 들어보고 싶지 않다


가끔씩 고르고 골라 아가방에서 산 두 사이즈 큰 아기 옷을 입히고 또 입히다 물려주고 물려받으며


봉쁘앙인지 봉피양인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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