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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18. 2017

여행에 대한 꿈을 나눈 이색 송년회

'앞으로 할 수 없을 것 같기에 더욱 간절해지는 당신의 꿈은?'



입사 이후 수년간 폭음만이 난무했던 송년회를 보내왔고, 올해 역시 몇 건의 술자리가 남아 있다. 송년회에서 음주가무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매년 심심치 않게 접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자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역시 술로 지새울 듯한 송년회들을 앞두고 문득, 몇 년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한 팀원들과의 따듯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당시의 팀장, 팀원들과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소통과 공감으로 하나 되었던 감동적인 그 순간은 아마 여전히 모두의 기억 속에남아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러하듯 말이다.



술 없는 송년회 ,

모두가 공감했던 단 한 가지

<사진 출처 : http://namsieon.com/2423>


  팀원 7명이서 와인 딱! 한 병을 나눠 마시며, 조용한 공간에서 여유로운 송년회를 즐겼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모두가 들뜬 기분으로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직장생활을 하면서 '꼭 해보고 싶은 일'에 관한 주제가 나왔다. 고속승진, 자격증, 외국어 공부, 대학원, MBA 진학 등 현실적인 의견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만장일치로 꼭 해보고 싶은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앞으로도 쉬울 것 같지 않은, 직장생활 중 불가능할 것만 같은) 혼자 떠나는 (배낭) 여행이었다.


  팀에는 유부남 5명, 미혼 여사원 2명이 있었다. 한 명은 입사 4년 차였는데, 입사 후 필리핀, 싱가포르, 중국, 태국, 홍콩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1년 늦게 입사한 후배도 필리핀, 태국, 두바이, 중국을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온 것에 대한 부러움은 아니었다. '솔로'의 자유로운 여행이 탐났을 뿐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혼행'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눈치코치 백단인 직장인들 그리고 기혼자에게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사십 대 중반이었던 팀장은 혼자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젊은 시절 꿈이었던 디렉터(영화, 연극)가 되기 위한 공부도 하고, 세계를 누비며 죽기 전에 세상 구경 좀 더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의 상황, 가족, 직장 등 현실적으로 볼 때 이 모든 것이 단지 꿈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꿈을 가슴속에 만이라도 남겨두겠다는 말도 전했다. 남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더욱 짠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얼마 뒤 팀장의 이런 바람이 전해졌는지 해외 지사로 발령을 받아 미국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여행을 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 구경에 대한 꿈'을 조금이나마 있기를 바란다.


>> 현실 : 작년에 팀장은 임원이 되어 다시 한국에 복귀했다.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현업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차장은 마흔이 넘었고, 결혼한지도 꽤 됐지만,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이다. 덕분에 그 해 여름에는 아내와 이집트와 요르단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아이 없이 살면서 평생 아내와 틈틈이 세계 여행을 다닐 거라고 했다. 그래도 가끔은 젊은 시절에 해보지 못한 나 혼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유부남이 가족을 빼고 여행을 생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은 그런 일종의 꿈이랄까.

 

>> 현실 : 몇 년 뒤 차장은 아들을 낳았다. '평생 아이 없이 살 거야'라고 했던 말은 이미 까맣게 잊었다. 아내와 단 둘만의 세계 여행도 아마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대학시절 외국에서 잠시 공부한 적이 있는 과장. 대학교를 2년 다니다가 한국이 너무너무 그리워서 무작정 돌아왔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한이되는 순간이라고 했다. 그 좋은 시절,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과장은 항상 형수에게 하는 말이 있다. '퇴직금은 평생 처자식 위해 일한 보상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쓰겠다는 것'이다. 물론 가능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퇴직 후 자유롭게 여행할 그 날을 기대하며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기부여는 되지 않을까?  



같은 팀 동갑내기 친구는 벌써 30개국 이상 여행을 다녀왔다. 군대를 안 가서 그 기간 동안 세계 여행을 했다. 목표는 50여 개국을 채우는 것이지만, 이제 혼자는 어려울 것 같다. 현실은 두 아이를 둔 가장이니까. 그래도 친구는 열심히 새로운 여행 계획을 세우고, 가끔 실천도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 그것이 알고 싶다.

 


>> 현실 : 친구는 이제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불가능. 대신 그동안의 화려한 여행 경력을 바탕으로 가족들에게 멋진 여행 가이드가 되어 준다고 한다. 혼자 여행했던 곳을 가족과 다시 가보는 것도 남다른 여정이 될 테니까.



그리고 내 오래된 꿈은 혼자 유럽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베니스에 가서 리알토 다리 위에서 야경을 즐기고, 카사노바가 한숨짓던 탄식의 다리에서 카사노바 흉내도 내보고 싶다. 또한 곤돌라에 올라 낭만과 감동을 만끽하는 꿈.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헤밍웨이가 즐겨 찾던 헤리스 바르에서 술 한잔 기울이는 내 모습을 오래전부터 그려왔다. (이때 팀장이 한 마디 거들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많아가지구….")


그런데 난 이미 두 아이의 아빠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꿈이다. 단지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자식들이 크면 함께 도전해 보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 현실 : 아이들이 이제는 많이 컸다. 그래도 아내의 배려로 최근 2년에 걸쳐 혼자 일본 여행을 두 번 다녀왔다. 그 거면 됐다. 더 이상 안 바란다. 충분하다.



  한 번쯤은 해봤기에 더욱 해보고 싶은 것, 앞으로 할 수 없을 것 같기에 더욱 간절해지는 것. 팀원들의 꿈,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 훌훌 털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혼행'이 아닐까.


  송년회의 결론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해내는 직장인으로 살고 있으니까. 빠듯함에 치여 사는 직장인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저 가슴 깊숙히 자리한 꿈으로 막을 내릴 것이란 것도 어느 정도는 눈치챘다.


  하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팀원들이 가슴은 벅찼다. 여행 이야기 꽃이 웃음꽃과 함께 만개했었다.  비현실적인 우리들의 바람이었지만 팀장부터 막내까지 모두가 함께 소통하고 공감을 공유했던 소중한 자리였다.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소중한 송년회였기에, 연말만 되면 자꾸자꾸 떠오르고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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