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Apr 09. 2018

세상에 맞설 준비됐나요?

"우리에게는 그 어떤 것도 다 얘기해도 되는 거 알지?"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영화가 있다. 기사에서, 리뷰에서 '찬란한 첫사랑'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 첫사랑이란 말에 무뎌사십 대 가장에게 크게 와 닿지 않는 표현다. 비통하게도 첫사랑이란 게 내게도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까. 작금의 상황에서 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는 가족뿐다. 특히 하루에도 열두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만드는 아이들. 듬직한 아빠, 친구 같은 아빠, 현명한 아빠가 되고 싶은 욕심은 아이들이 커가는 속도 비례한다.


자식 사랑 이야기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엮는 게 좀 이상하기도 하겠지만, 영화를 보고 뭔가 끄적거리게 된 이유가 있다. 두 꽃미남 배우가 아닌 주인공(엘리오)의 아버지 '펄먼'에게 반했기 때문다.  


'좋은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쉬지 않고 하는 고민다. 정답 없는 문제를 들고 오랜 시간 씨름하다 보면 고민을 하고 있는지, 고민이 나를 먹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고민을 한다는 생각조차 희미해질 때도 있. 최근 본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다시  고민을 들추게 됐고, 이에 대한 힌트를 조금 찾은 거 같다. 주인공 아빠가 영화에서 보여준 담담한 모습에 현실 속 아빠(나)의 가슴이 먹먹했으니까.


첫사랑과 짧은 만남(여행)을 뒤로하고 좌절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아빠는 말다.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마음을 잔뜩 떼어내다간 서른쯤 되었을 땐 남는 게 없단다. 그럼 새로운 인연에게 내어줄 게 없지. 그런데 아프기 싫어서, 그 모든 감정을 버리겠다고? 너무 큰 낭비지."

"어떻게 살든 네 소관이지만 이것만 명심하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단 한 번 주어진단다. 그런데 너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닮아 해지고 몸도 그렇게 되지.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 시점이 오고 다가오는 이들이 훨씬 적어진단다."  

"지금은 그 슬픔 그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주인공 엘리오의 부모 아들과 조교의 관계를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둘의 감정을 존중하고 받아들. 아들과 깊은 우정(사랑)을 나눴던 올리버의 결혼 소식을 듣고 난 후 부부는 아무 말없이 서로를 바라다. 상당히 짧은 장면. 하지만 상처 받을 아들에 대한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을 넉넉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현실에서라면 '잘 됐다. 다행이다'라는 반응이 먼저 튀어나오는 게 일반 부모의 마음일 . 그 어떤 부모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아들을 대하는 부부의 모습에 코 끝이 찡했다. 오래전 주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이와 비슷한 관계가 등장한 적 있다. 주인공 부모 역시 이를 받아들였지만, 엄마는 아들 몰래 오열다. 어쩔 수 없는 부모의 감정이다.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다 지나간다. 시간이 약이다' 또는 '너 도대체 어쩌려고 그래'라며 등짝을 내려치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통해하는 게 우리 부모세대 정서라면, 펄먼이 보여준 모습은 이 시대 모든 부모가 갖추어야 할 현명함이 아닐까.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아들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였으니까. 아들의 아픔과 정면으로 부딪힌 펄먼의 모습이 빛나는 가장 큰 이유다.


친구에게 우유를 던져 반성문 쓴 사실을 아빠에게 들킬까 봐 불안해하던 아들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에게는 그 어떤 것도 다 얘기해도 되는 거 알지?"라고 말했던 엘리오 부모의 마음을 곱씹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좋은 부모는 타고나는 것일까'라고. 


그리고 깨달았다. 세상을 날카롭게 바라보는 역할도, 둥그스름하게 다듬는 역할도 모두 부모에게 주어진 어려운 숙제라는 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