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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an 21. 2019

결혼 안 한 후배의 날카로운 지적

'아빠에 대한 기억이 다른 남매'


결혼도 안 한 후배에게 큰 가르침을 받은 날이다.


남녀 후배와 퇴근 후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했다. 남자 후배 아내가 임신 초기였다. 후배는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요즘에는 딸이 대세라며 딸바보 아빠들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다소 씁쓸한 말도 오갔다.


"요즘에는 6학년만 돼도 아빠가 건드리는  싫어한대요."

"뽀뽀라도 하면 변태라고 짜증 낸다나..."


딸 가진 아빠의 절절한 심경으로 나는 "다 아빠 하기 나름 아닐까? 딸내미랑 오래오래 데이트도 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라는 아쉬움을 전했다. 가만히 듣던 여자 후배가 불쑥 한마디 던졌니다.


"맞아요. 다 아빠 하기 나름이에요. 엄마한테 잘하면 딸도 아빠 좋아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많은 순간이 뇌리를 스쳤다. 드라마나 책에서 본 각색된 내용이 아닌 내가 겪은 과거였다. 바로 '누나가 아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pixabay.com/>

 

나에게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가장 큰 기억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늘 재치 있고 자상하고, 친구들에게도 살갑게 대하는. 하지만 엄마와 누나가 기억하는 아빠는 다르다. 30여 년 넘게 살아온 부부의 헤아릴 수 없는 우여곡절을 속속들이 알 수 없지만, 엄마에게 아빠는 자상한 남편이 아니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의 일부는 누나의 기억이다. 대놓고 아빠가 싫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빠에 대한 누나와 나의 기억은 매우 다르다. 철부지 막내였던 나는 '해 달라는 거 다 해주는 아빠'로, 장녀인 누나에게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로 남았다는 걸 성인이 돼서 느낄 수 있었다. 한 공간에서 함께 살면서 서로 다르게 저장한 기억 공유를 통해서.

  

누나가 대학생 때 한 심리 검사에서 '엄마 마인드'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걸 스치듯 들은 적 있다. 엄마에게 자신을 투영해 아빠를 바라봤던 게 아닐까 싶다. 함께 자랄 땐 몰랐는데, 아빠에게 웃고 까부는 나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누나는 아빠를 대했던 거 같다. 자신만의 보호막을 만들어 어느 정도 거리를 뒀다고나 할까. 나만 빼고 둘이 영화를 보러 간 기억이 떠오르는 걸 봐서, 아빠와 누나 사이가 그리 나빴던 건 아닐 게다. 다만 내가 딸과 공유하고 싶은 그런 낭만적인 모습은 단연코 아니었다. 물론 내가 잘 모르는 둘만의 추억은 존재하겠지만.


<이미지 출처 : pixabay>


누나 결혼식 날 집으로 돌아와 뜬금없이 걸레로 방바닥을 훔치며 눈물 흘리던 아버지 모습, 함께 사는 동안 전하지 못한 누나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약해진다고 한다. 아빠는 잠시 건강이 안 좋아 새벽녘 구토하던 엄마에게 '당신 평생 지켜 줄게'라는 말을 전했다. 아빠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갑자기 떠났지만, 누나가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알았다면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을 한 조각이라도 더 간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후배에게 말했다.


"너무 당연한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날카롭고도 완벽한 명언이야."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지금 한 데 뭉쳐 지지고 볶는 가족을 떠올렸다. 아내와 싸우면 아이들이 나를 꺼렸던 게 생각났다. 특히 첫째인 딸내미가 중간에서 난처해했던 기억. 이런 파편들이 모이고 모이면 아빠에 대한 기억도 결국 찌그러져 버리겠지.


성인이 된 딸내미와 팔짱 끼고 데이트하는 아빠의 바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결혼도 안 한 후배에게 배웠다. 아빠 이야기를 하며 생글생글 웃는 후배 모습만 봐도 아빠와의 관계 그리고 집안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날 이후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에 변화가 일었다. '그동안 너무 편하게, 쉽게 그리고 모질게 대하지는 않았나...' 지난 과오를 떠올리면서. 부족한 남편 지금까지 내치지 않고 살아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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