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쉽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직 아빠 품을 파고드는 5학년 딸. 가끔씩 아빠랑 자겠다며 자리를 잡고 눕습니다. 도란도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잠들곤 합니다.
뜬금없는 말. 대수롭지 않게 "그치? 아이스크림 푸는 거 힘들겠지? 아빠도 해봤거든"이라고 대꾸했습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손님들이 화내고 그러면 무서울 거 같아요"라고 하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며칠 전 경험담을 들려주었어요. 교회 예배를 마치고 친구랑 친구 아빠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왔습니다.
"아이스크림 먹고 있는데, 어떤 아빠랑 꼬마가 들어왔어요. 아이가 모형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조르니까, 아빠도 웃고 아르바이트생 언니도 귀엽다며 웃었거든요."
훈훈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미간이 접힐 만큼 씁쓸한 일이 바로 벌어졌습니다. 꼬마가 고른 아이스크림을 아르바이트생이 콘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먹기 싫다고 했고, 아빠는 포장을 요구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콘은 포장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아빠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다는 줄거리였죠.
"꼬마는 울고, 아르바이트생 언니도 무서워하는 거 같았어요."
콘 용기가 따로 없어 포장할 수 없다는 말에 계속해서 왜 안 되냐고 소리를 쳤고, 아르바이트생은 궁여지책으로 커피잔에 넣어서 포장해 줬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딸아이도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어른의 불필요한 갑질을 날 것 그대로 목격한 거죠. 손님의 권리가 아닌 그저 약한 사람을 몰아 치는 흉한 모습을 말입니다. 씁쓸했습니다. 아직 갑질이 뭔지 아직 모르는 딸내미는 아르바이트생 언니에게 감정 이입을 했고,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보탠 것입니다.
예전 한 리조트 로비에서 아이의 위험한 행동을 제지하는 직원에게 아빠가 '왜 애한테 다 못하게 참견하냐'고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지만, 아빠는 아이보다는 자신의 화를 푸는 데 더 열중했습니다. 아이들 눈에도 그 직원 잘못으로 보였을까요? 아마 딸아이가 느낀 것처럼 '저 아저씨 일하기 힘들고 무섭겠다'라는 생각을 더 품지 않았을까요.
어른은 나이가 만들지 않는다는 걸, 성인이 되어서, 결혼을 하고서, 부모가 되어서 깨달았습니다. 불혹을 넘기고도 여전히 스스로 진정한 어른이라고 느끼지 못하거든요.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아이들 앞에서 아내와 싸운 적 있습니다. 싸웠다기보단 일방적인 갑질이었죠. 초등학교 3학년이던 딸아이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낀 순간이었어요.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입힌 거 같아 아이들 앞에서는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합니다.
회사에서, 인생에서 후배에게 모범을 보일 때, 아이 앞에서 낯선 갑질을 보이지 않을 때, 아이를 혼낼 때 분노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을 때, 아이가 자신(부모) 행동을 따라 해도 안심이 될 때. 즉 모든 감정조절에 매번 성공할 만큼 스스로에게 당당할 때, 누군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요.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 단순히 행동을 조심하라는 게 아닙니다. 인격까지 투명하게 비추니 더더욱 주의하라는 말 아닐까요. 부모가 감정 조절에 성공할 때, 아이에게도 똑같이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거죠. 아이 앞에서 너무 쉽게 갑질을 보이진 않았는지 슬쩍슬쩍 돌아봐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