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눈에 비친 연예인 아줌마의 불편한 말과 행동이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씁쓸한 날이었다.
주말에 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했다. 동그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식이 시작할 때쯤 얼굴이 익숙한 연예인 한 명이 매니저와 함께 들어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당연한 일이라는 듯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XXX입니다. 같은 테이블이면 다 가족이니까"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사진을 찍을 때도 연신 친구에게 "웃어! 웃어~!"라고 소리치며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때만 해도 활기차고 좋은 기운을 느꼈다.
식이 끝나갈 무렵 식사가 시작됐다.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홀은 꽉 찼고, 수백 명을 위한 코스 메뉴가 허공에서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메인 메뉴인 스테이크를 먹을 때였다. 연예인이 서빙하는 여직원을 불렀다.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아가씨, 여기 단무지 있어요?"
"확인하고 말씀드릴게요."
여직원은 손에 든 음식 서빙을 급하게 마치고 부랴부랴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뒤 잊지 않고 찾아와 단무지가 없다는 소식을 공손하게 전했다. 바쁜데 그런 걸 뭐 하러 묻느냐는 일행의 말에 당사자는 "물어봐서 손해 볼 게 뭐 있어? 아니면 마는 거지"라고 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다시 그 여직원을 불렀다.
"아가씨, 여기 핫소스 좀 갖다 주세요."
누가 봐도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직원은 친절하게 답했다. 열일 하던 중이라 조금 늦게 핫소스를 가지고 왔다. 옅은 비웃음을 담아 피식거리며 "일찍도 가져오네. 이제 와서 이걸 먹으란다"라면서 일행들에게 핫소스를 보여 주고 테이블에 툭 던졌다. 물론 뚜껑도 열지 않았다.
분명 악의를 가진 행동이나 말투는 아니었다. 일면식 없는 같은 테이블 사람들에게 와인을 따라 주는 친절을 베푸는 건 계산적일 수 있어도, 사람들 많은 곳에서 대놓고 불편한 모습을 보일 리는 없으니까. 그저 모든 행동이 너무 자연스럽고 익숙해 보여 오히려 더 불편했다. 밝은 햇살과 먹구름을 동시에 머금은 그런 느낌이랄까. 비 맞은 듯 축 처진 여직원만 처량해 보였다.
누구에게나 때와 장소에 따라, 맡은 역할에 따라 지켜야 할 매너가 있다. 서빙하는 여직원은 자기가 맡은 임무를 훌륭하게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TV에서 완벽했던 그분은 결혼식장 손님 역할 소화에 미흡했다. 개인이 방문한 레스토랑도 아닌데 조금은 과한 요구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으니까.
왁자지껄 시끄러운 결혼식 자리라 많은 사람이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바로 앞에 앉은 나만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시청한 기분이랄까?
호텔에서 나와 가족과 함께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5학년 딸이 입을 열었다.
"엄마, 아까 서빙하던 언니 기억나요?"
"아니, 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끼어들었다.
"아빠는 기억나. 왜?"
"그 언니 너무 불쌍했어요. 식당도 아닌데 그 아줌마가 너무 시켜서…"
어른의 배려 없는 모습에 당황하던 언니가 딸아이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딸아이 가슴에 담긴 그 감정은 어른들이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던지는 무감각한 갑질이었다. 우리가 흔히 보아 온 갑질과는 또 다른 모습. 대놓고 소리 지르며 윽박지르는 행동만 갑질이 아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반복하다 보니 몸에 배어 버린 나쁜 습관. 나도 모르게 습득한 민폐인지 모르는 그 태연한 버릇이 상대에게 더더욱 큰 상처를 남기는 슈퍼 갑질 아닐까.
나도 모르게 후배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혹은 초면인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날카로움을 던지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본 차가운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