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병신이라는 말 엄청 많이 나와. 형들이 축구할 때 쓰는 말이잖아. 근데 병신이 무슨 뜻이지?"
부모님과영화 <극한직업>을 본 아들 친구와 아들이 나눈 대화다. 곧바로 아들이 "아빠 '병신'이무슨 뜻이에요?"라고 물었다. 마음 같아선 '욕이니까 쓰지 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 교육을 위해 그럴 수는 없었다. 아내가 대신 대답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거야. 친구들끼리는 필요 없는 욕이니까 알아도 쓰지 않는 게 좋겠지?"
아내는 청소년 심리상담사라 아이들의 사소한 말에도 정성을 다해 설명해 준다. 옆에서 곁다리로 나도 배우고 있다.
아이가 욕을 하면 부모는 당황한다. 어디서 나쁜 말을 배웠냐며 화를 내는 데만 급급하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들이 나쁜 친구를 사귀어서 비속어, 은어, 욕을 배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언어 토대는 가장 오래 머무는 집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가족을 비롯해 주변 환경과 사람들 언행을따라 하고, TV, 영화, 유튜브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도 다양한 표현을 배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모 영향이 가장 크다고말한다. 좋지 않은 말을 자주 쓰는 아이는 가정에서 그런 말을 배우고 확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특히 장시간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의 언어가 중요하다. 아이를 옆에 두고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할 때, 아이가 듣건 말건 말을 거르지 않고 통화할 때도 아이는 그 말을 흡수한다.
누나에게 '나쁜 X', '꼴 보기 싫어'라고 하는 아이를 본 적 있다.
엄마가 화가 나면 아이에게 똑같은 말을 퍼부었다. 바르고 고운 말을 쓰면 아이들도 그대로 배운다. 아이에게 안 좋은 말이 익숙해져 뇌에 박히고 입에 붙어버리기 전에 긍정적인 언어 습관을 심어줘야 한다. 아이가 생기면 한번 더 어른이 되는 게 부모의 숙명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말실수를 줄이고 바른말을 좀 더 사용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바르고 좋은 말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 마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일일 것이다.
물론 자주 접하는 아이의 친구들 언어도 중요하다.유치원이나 학교, 학원에서 배우는 말은 부모 통제에 한계가 있다. 아이가 욕 배울 기회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욕을 사용할 기회를 줄여 줄 수는 있다. 좋지 않은 말을 사용했을 때 그것을 바로 인지시키고 한번이라도 덜 말하게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
6학년 때 부반장이었다. 학급회의 시간에 투서함을 열고 기겁했다. 투서 중 "부반장이 욕을 너무 잘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회의 시간에 망신을 당한 후 욕을 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욕과 거짓말을 최악의 행동으로 교육받았는데, 부반장이라고 센 척 치기를 부렸던 거 같다. 그때는 몰랐지만 부모님께 참 죄송스러운 일이었다. 선생님께 불려 갔는데, 아마 '가정교육'을 제일 먼저 떠올렸을 테니까.
언어는 누구나 조금만 신경 쓰면 고칠 수 있다. 오랫동안 욕을 하지 않으면 욕이 혀 위에 얹혀질 때 어색함이 느껴진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혼낼 때 '이 썩을 놈'이라는 말 대신 "이 성공할 놈!", "이 CEO 될 놈"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믿음에서였다.
언어는 사람의 인격과 품격을 담는 그릇이다.'짜증 나', '열 받아', '피곤해', '우울해', '죽고 싶다', '괴로워'라는 부정적인 말도 자주 쓰면 입에 붙어버린다. 반대로 바른말을 자주 쓰면 그 말 또한 입에 붙는다. 누군가의 애정 어린 지적으로 내 언어 습관이 좋지 않음을 알았다면 '그래, 너 잘났다. 넌 욕 안 하나 두고 보자'며 앙심만 품지 말고, 사소한 한마디로 인한 이미지 실추를 미연에 예방할 기회를 얻었다고 여기는 건 어떨까. 그래야 조금씩이라도 바른말이 뇌에 박히고 입에 붙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