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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Feb 20. 2019

선생님이 가슴에 새긴 지워지지 않는 상처

'자신의 편견을 너무 신뢰하지 않았으면'


딸아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은 '똥 도장'과 '포인트 도장'으로 아이들을 다스렸습니다. 잘못하면 똥 도장을 수백 개 찍고, 잘한 일이 있으면 포인트 몇 개를 찍어 줬어요. 포인트로 똥 도장을 지울 수 있고, 간식이나 학용품을 살 수 있었죠. 똥 도장에 민감한 딸을 보면서 '훈육'이라기보다는 '통제' 같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에게 선생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심고 싶지 않아 "선생님마다 교육 방식이 다 달라. 특별한 경험으로 생하자."라고 말해 줬습니다. 아이가 밥을 천천히 먹었다고 똥 도장 수백 개를 준 선생님 심경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보며 불현듯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 떠올랐습니다. 지울 수 있는 똥 도장이 아닌 가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서기였고, 장학금 받을 정도로 공부도 곧잘 했습니다. 나름 선생님들에게 예쁨 받는 모범생이었죠. 고교 비평준화 시절, 시험을 치르고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는 전교 50등까지 선별해 우수반을 운영했어요. 그 반에 들어감과 동시에 불행 시작되었죠.


  자부심을 가지고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디딘 등교 첫날. 교관 같은 모습의 담임이 등장했습니다. 험상궂은 얼굴과 까칠한 말투, 깡패를 연상케 하는 몸짓. 갓 부임한 27살 그의 첫인상이었죠. 백골단 출신이라며 첫 대면부터 폭력성을 드러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난폭함은 더욱 진화했어요. 칠판에서부터 사물함까지 친구들을 몰고 가면서 두들겨 팼고, 대걸레 자루 부러지는 건 일상이었습니다. 툭하면 인신공격과 부모님 운운하며 공개적인 모욕을 주기도 했죠.


  아름다웠던 중학교 시절과는 전혀 다른 군대 생활이 시작된 거죠. 무조건 대답은 '다, 나, 까'로. 군인처럼 복창하며 복종했습니다. 집이 먼 사람 외에는 예외 없이 등교 시간 6시 30분, 하교 시간 오후 10시.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 시키는 건 기본, 못 외우면 두들겨 패는 건 일상. 무자비한 교육 방침에 괴로웠습니다.


  남녀 공학이라 자연스럽게 여학생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았어요. 학기 초 학교 밖에서 여학생들과 길을 지나다 담임과 몇 번 마주쳤습니다. 담임은 그런 저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요. 탈선을 한 것도 아니고 같은 교회 다니는 초등학교 동창들과 어울렸을 뿐인데. 여학생과 어울리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지적 받음과 동시에 학교생활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완득이 스틸 컷>

  

  입학 후 첫 시험. 반에서 37등, 전교 47등. "여자들이랑 놀면서 공부할 시간이 있겠어? 부모님 고생하시는데, 잘하는 짓이다."라고 교단에 서서 말했습니다. 자극받아 공부했죠. 두 번째 시험에서 전교 11등. 성적 나온 날 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으라고 했어요. 그리고 "자기 성적에 만족하는 사람 손 들어!"라고 했죠. '누가 손 들겠어?'라고 생각하던 찰나 "장XX, 너 손 안 드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반 꼴찌인 J에게도 손을 들라고 했죠. 17살 어린 마음에 난도질을 시작했습니다. 평생 뽑히지 않 비수를 꽂았죠.


  "장XX 같은 애들은 결국에는 실패한다. 하지만 J 같은 애들은 대기만성형이라 결국 성공할 것이다."


  더욱 서러웠던 건 꼴등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어요. 밤낮도 모자라 쉬는 시간까지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인데, 성적은 늘 꼴등이었죠. J의 노력을 알기에 선생님은 격려와 사랑을 퍼부었습니다. 저는 만만한 재물이었어요. 여자애들이랑 어울리는 날라리 같은 제가 성적 오른 게 못마땅했던 거죠.


  살얼음판을 걷듯 일 년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헤어지는구나'라는 생각에 행복했죠. 그런데 소름 끼치는 일이 일어났어요. 담임 배정 전, 삼일절 행사로 학교에 모였습니다. 슬쩍 제게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너 어제 여자애들하고 지나가다 나 봤지?"라고 하더군요. '내가 또 네 담임이다'라는 말이었죠. 생애 최악의 2년을 보냈습니다.


  "가장 좋은 교사란 아이들과 함께 웃는 교사이다. 가장 좋지 않은 교사는 아이들을 우습게 보는 교사이다." 영국의 교육학자 알렉산더 닐의 명언을 선생님께 전해주고 싶습니다.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 우습게 무시당했던 순간순간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여린 싹을 무참히 짓밟은 그 말을, 그 사람을. 요즘 같은 세상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생님의 권위를 일명 사랑의 매라는 폭력으로 무심하게 표출했던 그때 그 시절. 물론 좋은 선생님도 많았습니다. 저는 다른 반 선생님, 다른 학년 선생님 덕분에 견딜 수 있었죠.


  편견에 희생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 하나로 평가받았으니까요.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은 자전거 뒷자리에 여자 동창을 태우고 지나는 제게 손을 흔들어 줬습니다. 같은 모습에 대한 상반된 평가인 셈이었죠. 고등학교 때 담임은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고, 저는 그저 그런 문제아 취급을 당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길을 가도록 애쓰는 사람이 아닐까요. 자신의 편견을 너무 신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초등학생 조카 담임은 공개적으로 학생에게 '사납다', '못됐다'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친구에게 들어도 서운할 말입니다. 아이들 마음을 조금만 더 헤아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누군가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지 않게, 학생들이 학교에서 좌절 아닌 꿈을 키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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