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 모범생에서 불량생이 되었다
'저 인간처럼 부족한 어른은 되지 말자'
엄마는 버릇처럼 말한다. "우리 애들은 속 한 번 안 썩였어"라고. 조금 왜곡된 면도 있지만 반이상은 동조한다. 누나는 모범생 그 자체였고, 나 또한 모범생 범주에 들었다. 물론 내 기준에서.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성격과 성향으로 주변에서 엇비슷한 평을 들으며 살고 있다. 한마디로 '저놈 저거 사람 됐네!' 정도의 큰 인격의 변화는 없는 삶이라는 말이다.
중학교 시절 이력은 조금 훈훈하다. 첫 시험, 전교에서 혼자 수학 만점을 받아 선생님 눈에 들었다. 학교를 대표해 수학경시대회 준비를 하기도 했다. 월등한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상위권을 유지했다. 백일장에서 상도 타고, 장학금도 받고, 모범학생 표창도 받았다. 서기를 했던 터라 교무실에서 선생님을 많이 접하며 예쁨 받는 시절을 보냈다. 입이 마르게 칭찬 해준 담임 덕에 모르는 선생님이 "네가 장X이구나?"라는 반가운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남학교를 다녔지만 학교 밖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절친인 여자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남녀 칠 세 부동석은 남일이었다. 여자 친구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지나는 모습을 중 3 때 담임이 보고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평탄한 내 삶에 얄궂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못 했다.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순식간에 불량품이 되었다. 나는 그대로였는데 담임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 시선이 바뀌니 많은 게 틀어졌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상위권을 뽑아 만든 우수반에 들어갔다. 애들을 깡패처럼 두들겨 패는 27살의 새파란 초임 담임을 만났다. 조교 같은 담임이 주둔하는 군대를 방불케 하는 고교생활이 시작됐다.
주말이면 학교에 공부하러 갔다. 초등학교 때 여자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때마침 운동장에 나타난 학생주임이 지나가다 나를 봤다. 인사를 했다. 화근이었다. 자기네 학교 학생인 걸 눈치챘다.
"너 내일 교무실로 와"
다음 날 교무실에서 오전 내내 엎드려뻗쳐있었다. 죄목은 '다른 학교 여학생들이랑 학교에서 어울림'이었다. 학주는 여자애들이 나시를 입고 반바지를 입었다며 혀를 찼다. 조선시대인가? 기가 찼다. 그때부터 담임한테 찍혔다. 그 뒤로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볼 때마다, 여자반 애들과 얘기를 해도 담임은 나를 불러댔다. '너 쟤랑 사귀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남녀공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못마땅해했다. 자기가 아끼는 학생이 좋아하는 여학생을 붙여주려는 뻘짓을 하면서도 나한테는 옹졸했다.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겉멋 든 몇몇 친구 덕분에 옷에 담배 냄새가 배었다. 운도 지지리도 없는 인생. 버스 정류장에서 담임을 만났다.
"이게 무슨 냄새지?"
"아... 저 아닌데요."
"내일 학교에서 보자"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담임의 낙인 효과 파급력은 진실을 가릴 만큼 컸다.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또 찍혔다. 시험을 못 보면 "여자애들하고 노느라 공부할 시간이나 있겠어?"라고 비아냥거렸다. 시험을 잘 봐도 갈궜다. 전교 상위권이었던 나와 반 꼴찌를 동시에 일으켜 세워 놓고 '너 같은 애는 결국 꼴찌보다도 잘될 수 없다'는 독설을 선사했다. 나와 꼴찌 모두가 망신과 상처를 가슴에 새겼다. 하늘도 무심하지. 저 인간과 2년을 함께 했다.
견디기 힘들었다. 일기장에는 원망과 분노가 넘쳤다.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했다. 힘겹고 괴로운 순간을 몸소 겪었지만, 한 순간도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변함없이 모범적인 '나'였다. 편견이라는 쌍안경을 쓴 사람이 나를 불량생으로 바라봤을 뿐이었다.
선생님에게, 아이들에게, 친구 부모님들에게 문제아로 찍혀 왕따 당하던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전학을 갔다. 그해 개교한 학교라 학생이 많지 않았다. 문제아 행동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데 담임은 학교 끝날 때마다 아이를 안아주며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라는 인사를 건넸다. 어느 날 아이는 선생님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그 뒤부터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들 친구 이야기다. 주변에서 아이를 문제아로 몰아세우기만 했을 뿐, 힘들고 외로운 마음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거다.
주위 사람의 삐딱한 시선 몰이가 멀쩡한 누군가를 이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고교시절 담임은 안정적이었던 내 학창 시절에 수시로 짱돌을 던졌다. 담임의 선동에 주변의 시선도 그렇게 물들까 봐 겁났다. 무심한 그의 총질에 내상을 심하게 입었다. 날카로운 시선과 언어폭력에 시달리니 자신감은 뚝뚝 떨어졌다. 한 번뿐인 고교 시절이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감사한 건 있다. 한 가지 평생 교훈을 얻었다는 거다. '저 인간처럼 부족한 어른은 되지 말자'라는 다짐.
"가장 좋은 교사란 아이들과 함께 웃는 교사이다. 가장 좋지 않은 교사란 아이들을 우습게 보는 교사이다." 영국의 교육학자 알렉산더 닐의 명언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섰을 때 아랫사람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덜 익은 어른이다.
졸업 후 담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폭력교사로 신문에 실렸다. 촌지 받는 교사로 유명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친한 친구가 그랬다. '너네 부모님이 돈 안 줘서 그랬을 걸?' 가끔 저 사람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검색해보니 여전히 선생질을 하고 있다. 천사 같은 표정의 사진에 만개의 악플을 달고 싶지만 참았다. 별로인 저 교사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