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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17. 2019

모녀에게 각별했던 물 젖은 김치

'96살 노모와 71살 딸을 이어준 사랑의 메신저'


기구한 운명의 어머니. 제가 중3 때 몸이 불편하신 외할머니가 저집에 오셨어요. 그때부터 한집에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동거가 시작됐습니다. 어머니는 시어머니에게 그다지 사랑받는 며느리가 아니었어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눈치와 시련을 현실에서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죠.


  어머니는 음식 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맞벌이에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시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는 요리 실력은 할머니가 아 음식을 직접 만드는 충분한 구실이 되었죠. 때문에 외할머니는 취향과 상관없이 할머니가 만든 음식을 묵묵히 들어야 했어요.


  유난히 매운 음식을 좋아했던 아버지. 할머니 요리는 장남의 미각 만족을 위한 정성 덩어리였죠. 낮에 몸이 불편한 친정어머니를 맡기고 일 나가는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외로운 두 노인이 서로를 벗 삼아 끼니를 챙겼지만, 가끔 외할머니는 매운 반찬 때문에 물에 밥을 말아 드시곤 하셨죠.


  더 기구한 운명의 외할머니. 매운 음식을 입에도 못 대던 외할머니는 일본인이었어요.


<외할머니와 엄마>


  만주 벌판에서 외할아버지를 만나 제 어머니를 낳고 1945년 해방되던 해 한국에 들어오셨죠. 그리고 몇 년 뒤 6.25 사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외할아버지는 연기처럼 사라졌어요. 주변에서는 외국인 과부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자식들 때문에 연고 없는 한국에 홀로 남았습니다. 가족과 연락이 끊 채 수십 년을 한국 사람으로 살았어요. 그 누가 봐도 한국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 하지만 입맛은 뼛속까지 일본인이었습니다. 매콤한 걸 전혀 드시지 못하으니까요.


  맞벌이에 바쁜 어머니가 친정어머니를 위해 내줄 수 있는 시간, 해줄 수 있는 음식많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꾸준히 제공한 음식이 있어요. 바로 물에 씻은 하얀 김치입니다. 물김치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아버지 입맛에 맞춘 칼칼한 물김치는 외할머니에게 금지 음식일 뿐이었죠. 어머니는 시어머니 눈치에 외할머니를 위한 백김치를 따로 만들 수 없었다고 해요. 식사를 할 때면 어머니는 항상 외할머니에게 물에 살짝 씻은 김치를 놓아 드렸어요. 참 낯선 풍경이었지만 금세 익숙한 장면이 되었죠.


  제가 고3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안 살림을 도맡으면서 반찬이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매운 김치와 덜 매운 김치, 물김치, 백김치가 등장했죠. 어머니의 어머니를 위한 특별식이었지만, 외할머니는 별로 즐기지 않으셨어요. 여전히 물에 젖은 김치를 찾으셨죠.


  제가 28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저는 몇 년 뒤 결혼해 출가했습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단둘이 사셨어요. 아이들과 함께 찾은 어머니 집 밥상에는 여전히 친숙한 하얀 김치가 놓여있었죠. 그 많은 반찬 중에서도 외할머니는 물에 젖은 김치를 즐겨 드셨습니다.


  6년 전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어요. 96살까지 어머니와 함께 사셨죠. 그때 제 나이 37살. 어머니는 꼬박 21년 친정어머니를 모셨어요. 강산이 두 번은 훌쩍 변하고도 남는 세월. 시어머니와 남편을 차례로 떠나보내고, 딸과 아들을 출가시키고 나니 곁에는 친정어머니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그 모진 세월에도 변치 않은 물에 젖은 하얀 김치와 함께. 어린 시절 두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게 전혀 낯설지 않았던 거처럼 물에 젖은 김치도 제게는 평범한 음식이었습니다.


  외할머니가 떠난 어느 날부터 어머니의 집 밥상에서 물에 젖은 김치가 사라졌다는 걸 알았어요. 낯선 밥상을 접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왜 외할머니가 물김치와 백김치를 외면했는지, 왜 하고 많은 반찬 중에서도 그렇게 물에 젖은 김치만 좋아했는지, 왜 어머니가 맛도 없는 김치를 끊임없이 만들 내놨는지를. 가슴으로 깊이 느꼈습니다.


  그것은 아흔여섯 살의 노모와 일흔 살 넘은 딸이 평생 주고받은 사랑이었다는 걸.


  그 덕에 몸이 불편한 외할머니가 오래오래 딸 곁을 지킬 수 있었나 봅니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 외할머니는 평생 부르지 않았던 일본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그리고 딸을 "엄마!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평생 가슴에 묻어야 했던 고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일순간에 터져 나 걸까요. 그날 외할머니는 딸이 지켜보는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아마 수십 년 동안 자신을 위해 김치를 씻어준 딸의 모습에서 평생 꿈에서만 그리던 자신의 진짜 엄마를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한창이네요. 선량한 서민들이 더 이상 피해 보지 않도록 일본 정부가 부당한 조치를 거둬들이고, 이성적인 대화와 양국의 지혜를 통해 조속히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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