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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Oct 03. 2019

주책맞게 눈물 터진 엄마의 관장

'부모의 잔소리도 자식의 짜증도 다 사랑이라는 사실'


엄마가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내일모레면 팔순이지만 건강에 늘 자신만만했던 엄마였다. 늘 바쁜 엄마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댄스 수업을 받고, 몸이 불편한 노인들 돌봤다. 그러다 원인 모를 다리 통증이 시작됐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자식들한테 알리지도 않고 동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삼 개월을 보냈다.


엄마 친구가 알려줘서 알게 됐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학병원에 모시고 갔다. 별 이상 없다고 일단 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2주를 보냈다. 무심했던 자식들 덕에 엄마 병은 커져버렸다. 걸을 수 없게 됐다. MRI를 찍었다. 작은 압력이 반복돼 일어난 스트레스 고관절 골절. 뼈가 부서져 있었다.


바로 입원했다. 온갖 검사를 다 받고 수술 날을 받았다. 움직일 수 없으니 소변줄을 꽂고 누웠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아들이 대변을 받게 할 수 없다고 꾸역꾸역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로 향했다.


가장 큰 관문은 수술 전 관장이었다. 당연히 내가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아들한테 그럴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부했다. 누나는 매형이 아파 올 수 없고, 아내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엄마가 간호사를 붙잡고 얘기했지만 패드를 깔고 기저귀 차는 것까지만 도와줬다. 그 와중에 엄마는 커튼을 치고 나한테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 한 밤중에 커튼 밖으로 쫓겨났다. 2~3mm 두께의 커튼을 두고 우리는 갈라졌다. 까만 밤 한가운데 가만히 서 있는데, 엄마랑 내가 처지가 너무 처량했다. 새까만 11시 반. 병실은 고요했고, 우리만 초조했다. 서글프단 생각에 울컥했다. 입을 삐쭉 내밀고 눈물을 삼켰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병원에 들어앉은 엄마가 더 속상할까 봐 커튼 뒤에 숨어 헛소리만 해댔다.


왜 꼭 이럴 때만 엄마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고, 엄마가 불쌍한지 모르겠다. 왜 평소에는 맘에도 없는 말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게 자식에게 주어지는 형벌 같다. 후회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들어진 자식이라는 인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비슷한 심경이었다. 그런데도 비슷한 짓을 반복하고 있는 한심한 인간이었다.


엄마는 최대한 내가 고생하지 않게 혼자 처리를 했다. 새벽 세시, 여섯 시에도 간헐적인 생리현상이 이어졌다. 그래도 우리 모자는 완벽한 호흡으로 미션을 완수했다. 엄마의 고군분투 덕에 큰 고생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갔다. 세 시간 이 조금 지난 뒤 회복실로 이동한다는 병원 문자를 받았다. 병원 침대에 누워 아들한테 못할 짓 한다며 한숨짓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주책맞게 눈물이 터졌다.


엄마의 회복을 기다리며 병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엄마가 다시 멀쩡하게 회복해 신나게 잔소리를 퍼부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짜증 안 낼 자신은 없다. 그런데 큰 고비를 넘기면서 엄마의 존재가 나에게는 여전히 너무 크다는 걸 깨달았다. 28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나, 불혹을 넘긴 지금의 나,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부모님 앞에서 나는 100살이 되어도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막내일 테니까.




엄마가 잠든 후, 글을 마무리하면서 방금 깨달은 게 있다.


'부모의 잔소리도 자식의 짜증도 다 사랑이라는 사실'


병실 여기저기서 엄마들 잔소리와 장성한 딸들의 구박이 화음을 이루고 있다. "엄마나 먹어 내가 이걸 왜 먹어?",  "내가 알아서 다 한다니까 그만 좀 해", "가만히 있어야 된다자나! 좀!" 모녀들이 경쟁적으로 사랑을 쏟아내는 중이다. 병실에는 나를 뺀 모두가 여자다. 엄마랑 딸들의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유난히 정겹게 들리는 밤이다. 나도 곧 엄마와 서로 사랑을 쏟아내겠지. 


아니,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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