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Apr 27. 2020

결국 들켜버리는속마음

'팔순 노모에게 혼나면서 불현듯 깨달았다'


엄마가 고관절 골절 수술을 았다. 마 전 기 검진을 받으러 함께 병원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 집에 들다. 코로나19 예방 수칙 실천, 바로 보이는 싱크대에서 후다닥 손을 씻었다.


"그게 야. 30초 이상 씻어야지. 다시 씻어!"

"넵!"


불혹을 한참 넘긴 아들이 엄마한테 혼났다. 웃음이 터졌다. 내가 매번 아들에게 반복하는 말이었다. 똑같은 말을 팔순을 바라보는 엄마에게 들으니 정겨웠다. 좋았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도 부모 눈에 나는 여전히 불안 불안한 막내아.


부모가 되고 깨닫는 게 많다. 어릴 때 부모님께 그렇게 듣기 싫던 잔소리가 내 입에서 넘는 걸 자각할 때 그렇다. '내가 벌써 부모가 되었구나' 흠칫 놀랄 때도 왕왕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거대했던 잔소리 현실의 소한 목소리로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보이는 무심한 아이들의 행동에 자동으로 입이 열린다. 어릴 때 '공부해'보다 많이 들었던 잔소리다.


"방 좀 치워."

"사방에 왜 그렇게 불을 켜놓고 다녀."

"물 틀어놓고 양치하지 말고 양치 ."

"휴지 좀 아껴 쓰자."

"이 연필들 다 쓰고 새 연필 써라."


어릴 때 듣는 잔소리는 언제나 거대다. 순간의 기분화와 짜증이 뒤섞인 시커먼 감정이 점령다. 그런데 자식 역할을 벗어난 화자話者 입장이 돼 보니 마가, 아빠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떨 때는 코끝이 찡하다. 부모님께 너무 미안해서. 돌이켜 보면 '너희들이 낭비하는 것들이 다 돈이야!'라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절약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의도가 핵심이었다. 부모가 모범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배지만 아이들은 크게 의식하지 않는 건 쉽게 지나기도 한다. 우리가 그랬듯 '절약' 이론은 어른보다 잘 알만큼 배운다. 그렇지만 실천은 어렵다. 실제로 체감할 수 없으니 와 닿을 리 없다. 래서 부모님이 반복해서 말해주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니 간이 반전을 만들었다. 경험은 스승이고 세월은 주치다. 부모님 덕 미경험한 교훈이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에 어른이 되었을 때 쉽게 깨을 수 있다. 부모님 수시로 투약한 백신 덕이다. 


아빠가 밤늦게 치킨을 사 왔다. 기분 좋아 보였다. 그런데 아들은 치킨이 식어서 맛없다고 입에도 대지 않았다. 아빠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들에게 선물한 팬티를 촌스럽다는 이유로 거부당했을 때의 그 심경은 어땠을까. 퓨즈가 나갔던 기억 회로가 수시로 깜빡인다. 아빠 살아생전 헤아리지 못한 마음을 지금이라도 느끼라는 전갈 같다. 어쩌면 여전히 전하지 못한 사죄를 틈틈이 하라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아프니 자주 만난다. 애틋한 마음도 덩달아 커진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죄송스러운 마음만 품고 살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고 있다. 자식이 그렇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효자 된다는 말. 언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부모 자식 간 운명의 엇박자는 우리 삶을 아이러니하게 비튼다. 자식은 부모가 서야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그 심경을 헤아린다. 내 부모도 그랬을 터. 내 자식들도 비슷한 궤도를 돌고 있다. 세상에 처음 태어나 봐서, 처음 자식이었기 때문에, 부모는 처음이라 누구나 서툴 수밖에 없다.


후회로 점철되는 눈물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원망하는 것도 누구나 다 처음이라는 시험대를 거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은 매 순간이 시작이고, 매일이 연습다. 덕분에 모두가 세월에 배우고 시간이 치유하는 세상 이치를 깨달으며 살아간다.


오늘도 눈을 감고 떠올려 본다. 내가 처음 자식 역할을 맡았을 때 부모님 앞에서 NG 낸 컷들을. 그리고 처음 부모 배역을 따냈을 때 자식들에게 저지른 발연기를. 처음이라는 서툼에 시간이 더해지면 감사함이라는 결과물이 러난다. 자식 노릇이 처음인 나를 언제나 포근히 감싸준 초보 부모님께 감사한다. 부모 노릇이 처음인 나를 믿고 처음 맡은 자식 노릇을 무던히 해내는 아이들에게 감사다.


후회를 교훈 삼은 자식 노릇과 부모 노릇은 평생 반복된다. 이렇게 우리는 처음을 딛고 일어나 또 다른 처음으로 향하는 삶을 되풀이하며 살고 있다.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매 순간 시작이고 도전이다. 서툴기 때문에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절대로 아깝지 않은 모 자식 간 시작이라는 선물.


매거진의 이전글 주책맞게 눈물 터진 엄마의 관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