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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Oct 24. 2019

무관심 늪에서 눈빛 만이라도 지키자

'작은 태도라도 진심을 담으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다'


가끔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면 부아가 치민다. 그러나 표출하지 못하고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제부턴가 부당한 불편함을 불편하게 감수하면서 살고 있는 기분다.  


순간적으로는 화가 나고 '이해가 안 된다'라고 분노하지만 그뿐. 한 소리 내지르는 건 언감생심, 괜히 지적해 싸움을 걸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을 뜯어고칠 것도 아니니 넘어가는 게 상책이다. 분노를 잘 삭이고 그 순간만 무사히 넘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 남을 지적해 봐야 다툼만 생기는 세상이니까. 고등학생들에게 담배 피운다고 나무라다 구타당해 사망한 사건, 이런 사건 하나하나가 우리를 무관심의 늪으로 던져 버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입을 다물고 서로를 외면한다. 비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훈계나 조언은 누군가의 화 돋울 뿐 교화는 물 건너 간 현실이라고 본다.


엄마랑 아빠를 모신 납골당을 찾았다. 엄마가 3주 전에 고관절 수술을 한 터라 거동이 불편했다. 보조기구 없이 걸음마를 시작한 지 며칠 안 됐다. 그래서 최대한 이동 거리를 좁혀 주차를 하고 최소한의 움직임을 보장하는 계단을 찾다.


오랜만에 아빠한테 인사를 하고 나와 계단 쪽으로 향하는데, 사내아이 두 명이 갑자기 뒤에서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설마 했는데 한 아이가 속도를 줄이지 못해 엄마 엉덩이에 부딪혔다. "아야!" 짧은 엄마의 비명에 놀랐다. 그런데도 우리 엄마는 애들부터 챙겼다.


"조심해야지요. 다쳐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부리나케 계단을 뛰어올랐다. 혹시 몰라 엄마 에 바짝 붙어 엄마를 지켰다.


이쯤 되면 등장해야 할 부모의 기척이 들리지 않아 뒤를 힐끗 돌아봤다. 터벅터벅 부부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 이름을 한 번 불렀지만 그 소리는 아이들 귀에까지 미치지 못했다. 계단을 다 오른 아이들은 두꺼운 유리문을 양손으로 짚고 흔들어 댔다. 뒤에서 아이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손!"


손이 문에 낄 거 같아서 부모보다 앞서 있 내가 얼른 쫓아가 문을 열어줬다.


"손 조심해야지~"


아이들은 뛰어 나가 주차장을 내달렸다. 뒤이어 나온 아이들 엄마가 외쳤다.


"차!"


엄마는 그제야 애들을 쫓아가고 아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이들은 차들이 오가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신나게 뛰어갔다. 보는 내 심장이 쫄깃했다.


내면 깊은 곳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라왔다. 아이를 위험하게 방치하는 부모의 무기력한 모습에 화가 났다. 아이 엄마는 소리를 내기도 버거워 보였고, 멍하니 담배 물고 있는 남자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부모가 한 거라곤 "손!", "차!" 딱 두 음절 내뱉은 거 외에는 없었다.


이 불편한 모든 감정은 아픈 엄마에게 위험을 가한 아이들 대신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부모에 대한 무관심에서 기인했을 터. 하지만 사과를 꼭 듣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애들 잘 관리하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미안한 눈빛이라도 보내야 했다고 생각한다.


노키즈존 식당 앞에서 발길을 돌린적 있다. 아이가 아닌 무개념 부모에게 외치는 주인의 절규라는 걸 잘 안다. 이에 대해 '업주의 권한이다' VS '갑질이다'라는 의견이 맞선다. 부모의 입장에서 조차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모습에 미간이 구겨질 때가 많다. 하물며 동방예의지국 운운하며 아이를 키워본 어르신들이나 아이 없는 젊은 세대가 보기에는 더 가관일 거다. 겪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불편함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한번은 스타필드에서 한 여자아이가 달려와 홀에 있는 소파에 누우면서 내 다리를 발로 찼다. 바지에 선명한 발바닥 자국이 났다. 바지를 털면서 "에이그~ 조심해야지요~"라고 말했다. 뒤이어 온 아빠는 오히려 인상을 쓰고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5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키즈존 영업장 확대에 대한 국민 여론'에 따르면 '찬성한다'는 응답은 54.7%로 나타났다. '반대한다'는 사람은 36.2%였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불편함을 느낀 사람이 많다는 증거다.


분명 아이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부모의 문제고 태도의 문제다. 아이들을 괜히 기 죽이고, 남 눈치 보게 키울 수 없는 입장을 보이는 부모도 적지 않다. 어느 부모나 자식이 우선이겠지만 남에게 피해 가는 행동을 제지하지 않으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아이들이 자라, 또 다른 불편함을 양산하는 대물림을 되풀이할 것이다.


작은 태도라도 진심을 담으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춘다. 타인에게 피해를 줬다 싶으면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만으로도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아니면 자신의 아이에게 '조심해야지요!'라는 한마디만 해도 당사자는 사과받은 듯한 기분을 느다. 요즘처럼 차가운 세상에 굳이 사과다운 넉넉한 사과에 집착할 필요 없다. 마음이 느껴지는 눈짓 하나, 아이에게 내미는 작은 타이름 한마디면 충분하다. 부모의 감정 변화에 유독 민감한 아이들도 조금씩 눈치를 채며 배워나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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