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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an 07. 2020

유리 멘탈과 유리 심장 인간

'나처럼 멘탈 약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사소한 일에도 상처 받는 '상처 취약 특이 체질'이다. 남보다 모자라다고 여기는 열등감 때문 일수도 있다. 단순히 멘탈이 월등하게 나약해서 일지도 모른다.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늘 감사한다. 하지만 이렇게 형편없는 유리 멘탈을 물려준 것에 대해서는 원망을 아끼지 않는다. 내 친 혈육을 비롯한 가족 멘탈은 매우 탄탄하기 때문이다.


수능시험을 보다 기절했다. 2교시까지 양호실에서 시험을 치렀다. 아빠 손에 이끌려 대학병원에서 뇌 검사까지 받았다. 심전도기를 차고 며칠 생활하기도 했다. 상황 변화에 따른 심박수 변화를 측정했다. 서글프게도 아무 이상 없었다. 과한 욕심과 부담이 졸도로 이어졌거나, 그저 긴장 잘하는 성격이거나. 한마디로 약해빠진 성격. 아마 멘탈 강도가 전국 하위 1%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 뒤로 웬만한 시험을 앞뒀을 땐 어김없이 책상 위에 청심환이 올려져 있었다. 운전면허 도로주행 시험 날에도 엄마는 청심환을 잊지 않았다.


이런 나 자신이 싫었지만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꾸역꾸역 아닌 척하며 버텨왔다. 말 한마디, 무시 한 번에 심한 내상을 입고도 아닌 척, 아파도 안 아프다고 심장을 꾹꾹 누르면서 체면을 걸었다. 그래야 험난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어차피 세상은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같은 마음과 자기 체면이 만들어낸 멘탈 강도는 실체가 아니었다. 손에 넣을 수 없는 집착이자 현실이었다. 본래 나 자신을 살포시 둘러싼 유리막에 불과했다. 크리스털처럼 투명한 막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낡고 얇아졌다. 누군가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졌다. 마음을 추스르며 재건하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무너지는 시간은 찰나였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사소함에도 벌렁이는 내 심장이 싫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나를 점령하는 이 느낌도 싫다. 나는 이 기분을 고3 시절 일요일 밤마다 느꼈던 감정에 빗대어 표현한다. 아주 격렬한 불안감. 지금도 오롯이 내 안에 딱 붙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쿵쾅쿵쾅. 이러다  멈추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요동치는 심장은 주인을 잘못 만나 속절없는 삶을 살고 있다.


사회에 나와 십수 년간 버틴 내가 기특하다. 남 모르게 소심한 내가 싫고 가엾기도 하다. 그렇지만 못마땅한 감정 쪽으로 치우치는 건 어쩔 수 없다. 험난한 세상에서는 멘탈의 두께가 두껍고 쉽게 요동치지 않는 심장이 더 유리하니까. 그런 사람 삶은 내가 사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 테니까.


남들은 어떤지 궁금하다. 나처럼 멘탈 약한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얼마나 될까. 막말과 불편함이 폭주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새해를 맞아 아닌 척하는 걸 조금 내려놓고 싶어 유리 멘탈, 유리 심장 인간임을 고백해 본다. 쑥스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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