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어른의 안쓰러운 잘난 체
'타인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법'
'잘난 체'에서 잘난은 '얼굴이 잘생기거나 예쁘게 생기다' 또는 '능력이 남보다 앞서다'라는 뜻이다. 여기에 의존 명사 '체'나 '척'이 붙어 잘난 체(척)라는 말이 탄생한다. '체'와 '척'은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이다. 살다 보면 후자인 '척'을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내공이 있다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회사다.
상사라는, 선배라는 이름으로 팀원들을 수시로 불러 모은다. 회의라는 명목하에 잘난 체가 시작된다. 호기롭게 과거사를 읊는다. '라떼'를 먹으면서 듣는 '라떼'이야기다. 근거 없는 영웅담과 고생담을 들먹인다. 반복에 반복이 꼬리를 문다. 데자뷔가 펼쳐진다. 먹이 피라미드 하위 포식자들은 연신 입꼬리를 올리며 맞장구친다. 간혹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는 한쪽 입꼬리만 올리기도 한다. 누가 봐도 진심이 아니라는 진심을 알 수 있다.
"허위 의식은 사실 열등감의 표현입니다. 잘난 체, 있는 체, 예쁜 체하는 내 안에는 사실 엄청난 열등감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화나면 화내고 힘들 땐 쉬어>의 저자 홍성남 신부가 한 말이다. 잘난 체는 정말 열등감의 표출일까. 팀장에게 자주 깨지던 선배는 자신이 인류대를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일까. 선배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아내가 카이스트 출신이라고 말할 기회를 찾았다. 회의 때도 "카이스트 출신들은!"이라는 말을 수시로 들먹였다. SNS에는 외제차를 비롯해 값비싼 물건들을 뽐내는 사진이 가득했다. 주변에서는 '부럽다'라는 말보다 '내세울 게 저런 거밖에 없나?'라는 말을 더 많이 했다. 결국 회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회사는 자랑보다는 일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상사에게 매번 깨지던 이유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였을 뿐이었다.
아무리 혼자 잘난 체를 해도 검증되지 않는 말은 쉽게 부정당하고 무시당한다. 본인 입에서 나오는 백 마디보다 타인 입에서 나온 진심 어린 한마디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뉴스 기사에서 아무리 '감동을 주고 있다', '화제다', '눈길을 끌고 있다'라고 외쳐도 이제는 소용없다. 진짜라면, 진실이라면 저절로 눈길을 끌면서 감동을 주고 화제가 될 테니까.
동료들과 점심을 먹을 때 너무 선배들 만의 대화로 이어질 경우 일부러 후배에게 말을 건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자는 의도다. 그런데 소머즈만큼 귀 밝은 선배나 상사는 후배에게 던진 질문을 허공에서 가로 챈다. 그 소제에 자신을 대입해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과시용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진정한 어른이라면 섣부른 잘난 체를 자제하는 게 미덕이다. 아무리 '라떼'를 부르짖어도 고리타분한 잿빛 시절 이야기일 뿐이다. 초단위로 변하는 세상이다. 요즘에는 후배들이 훨씬 똑똑하다는 걸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 당당함을, 똑똑함을 거북하게 여겨 거부하면 안 된다. 어른은 이를 부정하지 않고 흡수해야 한다.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적재적소에 활용할 때 진정한 어른의 빛이 난다. 연륜이 주는 현명함이라는 선물이다. 억지스러운 잘난 체를 남발하는 이들보다는 지위와 상관없이 배우려는 자세의 사람이 존경받는다. 배움에는 나이도 때도 없다. 잘난 후배들을 이용할 때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억지 잘난 체는 넣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