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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pr 08. 2020

이중적인 어른이 사는 법

'못난 어른을 한 명이라도 덜 보게 하려는 노력'


출근길도로를 활보하며 여러 개의 횡단보도를 마주한다. 언제나 빨간불은 너무 오래 빛난다. 바쁠 때는 이성과 상관없이 몸이 그냥 튀어 나간다.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거나 누군가와 눈이 슬쩍 마주칠 때 선뜻 발이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다급한 순간에는 이성과 상관없이 몸이 알아서 반응한다. 누군가 먼저 발을 내밀어 위법을 조장하면 자석에 끌리듯 내  동참한. 요지는 바쁘다는 핑계로 신호 체계를 줏대 없이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이다. 대부분 출퇴근길에 자행하는 일이다. 변명을 살짝 보태면 너무 춥거나 화장실이 급해서 때도 있다.


"우리 반에 백점 는 모범생 남자애가 있는데, 등굣길에 제 앞에 걸어가더라고요. 근데 학교 근처에서 두리번거리더니 무단 횡단해서 후문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다 지켜보고 있으니 아빠도 조심하세요!'라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경각심을 심어준 말이다. 아이들은 모범생뿐만 아니라 선망과 존경의 사이쯤 있는 아빠 같은 사람에게 일정 수준 이상 기대 한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반자동으로 바른생활 아비 노릇을 하게 된다. 종종 길에 떨어진 휴지를 줍고, 아파트 계단에 몰상식한 사람이 내던진 담배꽁초를 치우기도 한다. 다섯 발자국 남짓이면 건너는 횡단보도 앞에서도 여유롭게 녹색불을 기다린다. 신호등이 다급하게 나를 부르며 깜빡여도 절대 뛰지 않는다. 아이들이 배우면 위험한 일이기에 조심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가 무단 횡단하거나, 신호를 무시하거나, 3초 남은 녹색불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제대하고 아빠와 동대문으로 쇼핑을 간 적 있다. 4차선 대함께 가로질렀다. 경찰이 마법사처럼 나타났다. 아빠는 당황했다. 한두 번 봐달라고 하다 이내 굴복했다. 다만 심스레 조건을 하나 내밀었다. '얘는 학생이니까 봐주세요' 부모의 작은 배려라는 걸 알기에 최대한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진 아빠 얼굴에는 아들 앞에서 망신당한 수치심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아빠가 돼 그때 상황에 나를 대입하니 아빠 마음이 보였다. 자식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불편한 심경이다. 아빠는 미안하다며 무단횡단을 후회했다. 부모 마음에는 자식이 기본을 잘 지키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깔려 있. 이 바른 마음이 아이들 앞에서 태도를 바꾸게 다. 그런데 이 곧은 은 순간의 본능에 의해 어김없이 깨지곤 다. 이중적인 삶으로 치닫는다. 매일 자각하고 하루살이처럼 반성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만의 작은 규칙을 만들었다. 아무리 바빠도 학생들이 횡단보도에 등장했을 때는 절대 빨간불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역에서 내려 회사로 가는 길에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가 나란히 있다. 3개의 횡단보도를 건넌다. 학생들이 많다. 새 시대 새싹들 앞에서 아빠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아이들이 못난 어른을 한 명이라도 덜 보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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